"버텨야 산다"…본업 대신 돈 되는 사업 찾아 나선 보험사

이지스자산운용 인수 경쟁 2파전…한화·흥국생명 경쟁 치열
IFRS17 도입 3년만에 투자이익, 보험이익 앞서…새 이익 창구 찾는다

한화생명, 흥국생명 본사/사진제공=각 사

(서울=뉴스1) 박재찬 보험전문기자 = 최근 보험사들이 본업을 대신할 새로운 이익 창구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보험사가 해외진출, 자회사 인수합병(M&A)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IFRS17 체제에서 보험 본업으로 당장의 이익 확대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 본입찰에 한화생명, 흥국생명과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가 최종적으로 인수제안서를 제출했다. 매각 주관은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맡았다.

매각 대상은 이지스자산운용의 창업주 고(故) 김대영 회장의 배우자 손화자 씨가 보유한 지분 12.4%와 재무적 투자자의 보유 물량 등을 합친 지분 60% 이상이다. 여기에 대신파이낸셜그룹과 조갑주 전 신사업추진단장 측 등의 지분이 포함되면서 경우 매각 범위는 최대 98% 수준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의 기업가치는 8000억 원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은 사실상 흥국생명과 한화생명의 2파전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흥국생명은 지난달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에 위치한 본사 건물을 흥국코어리츠에 7193억 원에 매각하며 인수 재원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흥국생명의 모회사인 태광그룹은 M&A를 통해 기존 석화 위주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 나서고 있다. 태광그룹은 공격적인 M&A로 최근 애경산업 인수에 성공했다.

흥국생명은 이지스자산운용 본입찰에서 1조 원을 크게 넘는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흥국생명은 "오버페이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최근 M&A 시장에서 적극적이었던 태광그룹의 기조가 흥국생명의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에도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화생명은 예비입찰 때부터 1조 원 안팎의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에 적극적이었다. 한화생명은 대부분의 인수 자금을 자기자본으로 조달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다 앞서 한화생명은 미국 증권사 '벨로시티(Velocity Clearing, LLC)'의 지분 75% 인수를 성공했고, 인도네시아 노부은행 지분 40%를 매입하며 해외진출 및 M&A 등 신사업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 결과 지난 3분기 한화생명의 해외법인 순이익은 총 490억 원을 기록했다. 벨로시티 240억 원, 인니법인, 노부은행 리포손보 등 인도네시아에서 110억 원, 베트남 법인 등에서 140억 원 수준이다. 한화생명의 3분기 순이익은 3074억 원으로 이 중 해외 자회사, 한화손해보험, 한화생명금융서비스, 한화자산운용, 한화투자증권 등의 순이익이 전체 순이익의 56%의 비중을 차지한다. 보험업 순이익보다 자회사 순이익이 더 높은 것이다.

보험 말고 돈 되는 다른 사업 찾는다…IFRS17 도입 3년차 투자이익, 보험이익 추월

한화생명뿐만 아니라 다른 보험사들도 해외진출 등 새로운 이익 창구 찾기에 적극적이다. DB손해보험은 미국 특화보험사인 '포테그라' 지분 100%를 약 2조 3000억 원(16억 5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또 삼성화재는 영국 글로벌 보험사 로이즈 캐노피우스(Canopius)에 약 8000억 원(5억 8000달러) 규모의 추가 지분 인수를 완료했다. 이는 지난 2019년과 2020년에 이은 세번째로 이번 투자로, 삼성생명은 캐노피우스 지분 21%를 추가 확보해 총지분 40%로 2대 주주 지위를 공고히 했다. 또 교보생명은 지난 4월 SBI홀딩스로부터 SBI저축은행 지분 30%를 우선 취득한 데 이어 내년 10월까지는 지분 50%+1주를 순차적으로 취득할 계획이다.

이처럼 보험사가 새로운 이익 창구에 투자를 늘리는 이유는 보험 본업이 부진하기 때문이다. 보험산업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장포화와 고령화, 저출산, 불황 장기화 등의 영향으로 보험영업에서 부진을 겪고 있다. 여기에 지난 2023년 도입된 IFRS17 및 지급여력비율(K-ICS)로 인한 제도개편으로 건전성 관리 등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험사 순이익은 보험 본업의 이익보다 투자이익 및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올해 3분기 삼성·한화·교보·신한라이프와 삼성·메리츠·DB·현대해상 등 주요 8개 생명·손해보험사의 순이익은 7조 566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 감소했고, 같은 기간 보험손익은 6조 2533억 원으로 27.5% 감소했다. 반면 투자이익은 8조 6236억 원으로 41% 증가했다. 올해 3분기 주요 보험사 매출액 중 투자이익의 비중은 57.7%로 전년 동기 대비 16.2%p 늘어났고, IFRS17 도입 이후 처음으로 투자이익이 보험손익을 앞질렀다.

보험손익이 감소한 이유는 생손보 업권별, 각 사별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예실차가 크게 악화된 영향이 크다. 예실차는 예상 보험금·사업비와 실제 발생 보험금·사업비 사이의 차이로, IFRS17에서 계리적 가정의 정확성을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예실차 악화 원인은 의료파업으로 인해 지연됐던 의료 수요가 원복하면서 전년 대비 손해율이 상승한 영향이다. 하지만 이는 일회성 요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예실차 악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IFRS17 도입 이후 보험업계 전체에서 펼쳐진 과당 출혈 경쟁 탓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IFRS17 도입 이후 보험사는 상품 가격 인하와 적자 상품 판매 경쟁이 치열했고, 이로 인한 손해가 당초 예상보다 크게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주요 보험사들은 3분기 실적발표에서 "손해율 개선을 위해 포트폴리오 개선에 나서겠다"며 "고수익의 장기 상품 중심으로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보험은 팔아도 부채만 늘어난다…미래 이익 도래까지 버틸 돈이 필요하다"

IFRS17은 보험부채를 계약시점의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는 것이 핵심이며, 계약자서비스마진(CSM)은 보험계약으로 기대되는 수익이다. 하지만 IFRS17 제도에서 CSM은 부채로 인식되고, 일정기간 이후 일정 비율로 상각될 때 비로소 보험이익으로 인식된다. 쉽게 말해 보험사는 보험을 판매해도 부채만 늘고, 실제 이익은 미래에 도래한다는 의미다. IFRS17 도입 이후 보험사 순이익이 큰 폭으로 뛴 이유도 보험손익에 CSM 상각액이 새롭게 포함됐기 때문이다.

보험사는 상품을 판매할수록 부채가 늘기 때문에 건전성 관리를 위해서는 더 많은 자본을 쌓아야 하고, 고수익 상품 판매와 투자이익 확대 등을 통해 부채가 이익으로 변화되는 시기까지 버텨야한다.

최근 금융당국은 최종관찰만기 30년 확대 적용을 오는 2035년까지 순차적으로 확대하는 대신 내년부터 듀레이션갭 규제를 경영실태평가 중 금리리스크 평가항목 지표로 추가해 규제 강화에 나서고 있다. 최종관찰만기 확대와 듀레이션갭 규제는 '부채-자산 관리'가 핵심인데, 부채 관련 규제는 유예됐지만 자산 관련 규제가 도입되는 셈이다. 내년 도입되는 듀레이션갭 규제로 보험사는 투자이익 확대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보험사는 현재의 부채가 미래의 이익으로 도래할 때까지 버티기 위해 신사업, 해외진출 등 새로운 이익창구 확보에 나서고 있다. 그나마 자금력이 있는 대형사들은 신사업 확대, 자본확충 등 규제와 관련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자금력이 떨어지는 중소형 보험사는 자본건전성 압박, 이익 감소 등 악재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가 신사업, 해외진출 등 보험본업 외에 이익 확대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며 "보험영업이익뿐만 아니라 투자영업이익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당분간 여력이 있는 보험사가 사업 진출에 더 적극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jcp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