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풋옵션 분쟁 새 국면…법원 "ICC 이행강제금 무효"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ICC 중재판정 강제금 효력 취소소송 승소
IMM PE 대주단 "고평가 고집보단 현실적 엑시트 수단 강구 필요"

교보생명 제공

(서울=뉴스1) 박재찬 보험전문기자 = 교보생명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 분쟁이 새 국면을 맞았다.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판정부가 부과한 이행강제금에 대해 국내 법원이 효력을 부정하면서다. 국내 사모펀드 IMM 프라이빗에쿼티(PE)가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을 사실상 압박할 수단을 잃게 되면서 신 회장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됐다.

8일 투자업계 및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신 회장이 제기한 'ICC 이행강제금 부과 권한심사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중재판정부는 간접강제금을 부과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국제중재판정이 국내에서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국내 법원의 중재판정 승인·집행 결정 등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를 거치지 않은 이행강제금 부과는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ICC는 신 회장이 감정평가기관을 지정하고 가치평가보고서가 제출되도록 필요한 조치를 다하지 않을 경우 하루 20만 달러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판단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IMM PE는 이를 근거로 신 회장을 압박하기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IMM PE는 이에 불복해 즉시 항고하겠다는 입장이다. IMM PE는 "국내법원이 신창재 회장에게 간접강제를 부과할 수도 있는 것이므로 신창재 회장에 대한 집행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 감정평가 절차는 사실상 멈춘 상태다. 당초 감정기관으로 지정된 EY한영이 최근 금융당국으로부터 교보생명 지정감사인으로 선정돼 이해상충 문제로 감정기관 역할을 사임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ICC 판정상 요구된 가치평가보고서 제출도 불투명해졌다. 그동안 감정기관 선임이 쉽지 않았던 만큼 ICC 중재판정이 집행되더라도 평가보고서 제출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교보생명은 신 회장이 감정평가기관 선임과 관련한 의무를 모두 이행했다는 입장이다.

교보생명 측은 "신창재 회장은 ICC 중재판정이 명한 감정평가기관 선임의무와 가치평가보고서 제출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다할 의무를 전부 이행했다"며 "국내법원도 EY한영의 사임은 신창재 회장이 선임의무를 이행한 사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도 이번 사건의 핵심을 국제상업회의소(ICC)가 부과한 하루 20만 달러 이행강제금이 국내법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점을 지목하고 있다. 추가로 감정평가기관으로 지정됐던 EY한영이 사임하면서 국내 법원 집행 절차를 통해 신창재 회장 측에 평가보고서 제출을 강제할 방법도 사실상 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판결과 EY한영의 사임으로 교보생명과 사모펀드 간 풋옵션 분쟁은 법적 강제수단 없이 협상을 통한 현실적 해법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특히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와 싱가포르투자청(GIC) 등 주요 투자자들이 주당 23만4000원 수준에서 교보생명 지분을 정리하고 떠난 상황이다. 대주단 일부에서도 "무리하게 고평가를 고집하기보다 현실적 회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IB 업계 관계자는 "법원이 ICC 중재판정부의 이행강제금 결정을 무효로 본 것은 IMM PE 입장에서는 치명타에 가깝다"며 "더 이상 신 회장을 압박할 수 없는 상황에서 IMM PE 궁지에 몰린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jcppar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