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레버리지라는 '마술상자'의 유혹

(서울=뉴스1) 최경환 증권부 부국장 = 강원랜드 카지노에 가면 '콤프'를 거래하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눈에 띈다. 콤프는 카지노에서 지급하는 일종의 마일리지다. 베팅액의 15~20%를 콤프로 적립해 준다. 강원랜드 내 호텔이나 식당 뿐 아니라 지역화폐처럼 가맹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 현금을 다 잃은 도박꾼들은 상당수가 이 콤프를 현금화해 다시 도박에 뛰어든다. 호텔 로비나 카지노 주변에서 일반 관광객을 상대로 콤프로 대금을 결제해 주고 현금을 받거나 '콤프깡' 업자에게 할인된 금액에 팔아넘기기도 한다.
도박꾼들은 자신이 타고 온 자동차나 소지한 귀금속, 명품 등 마지막 자산까지 다 털어 넣는 경우가 많다. 중고차 브로커나 전당포가 카지노와 공생하는 이유다. 집에 돌아갈 차비마저 없는 경우 카지노에선 '귀가여비'를 지원해 준다. 거리 불문 10만원이다. 이 돈까지 도박에 사용하는 걸 막기 위해 여비를 받은 사람은 3년간 카지노 출입 정지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최근 미국 CNBC와 인터뷰에서 도박장이 돼 가는 자본시장을 우려했다. 그는 평소에도 "요즘엔 마법상자와 별의별 멋진 것'(magic boxes and all kinds of things that'll do wonderful things for you)을 내세우며 카지노 쪽으로 유혹하는 일이 매우 강하다"고 세태를 비판했다. 금융시장에서 이 마법상자는 선물·옵션 같은 파생상품,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등이다.
그는 자본주의를 '대성당과 그 옆에 카지노가 딸린 결합체'라고 했다. 대성당은 생산적 자본이 작동하는 금융시장을, 카지노는 단기 고수익을 노리는 투기 시장을 비유한 것이다. 버핏은 카지노와 대성당의 균형이 관건이라고 했다. 카지노가 대성당을 잠식하지 못하도록 투자자, 금융회사,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
'월가의 성인'으로 불리는 존 보글 뱅가드그룹 창립자는 워런 버핏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설적 인물이다. 그는 1976년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뱅가드500 인덱스펀드'를 출시했다. 최초로 개인 투자자에게 판매한 인덱스펀드다.
그러나 이 펀드는 초기에 별 인기를 끌지 못했다. 보글은 시장 전체의 성장을 추종하는 것이 적극적인 운용(액티브펀드)을 능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시장에서 조롱당했다. 상장 당시 1100만 달러밖에 모이지 않아 기초자산을 고루 매입할 규모조차 안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해 1996년에는 910억 달러로 자산이 불어났다.
인덱스펀드가 개인 투자자의 마음을 끈 건 단순성 때문이었다. 주식시장 전체를 매입해 영원히 소유하는 것이 인덱스투자의 골자다. 투자자는 별 고민 없이 삶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패시브 운용이기 때문에 자문료가 거의 들지 않는다는 점도 매력이다.
뱅가드의 인덱스펀드가 안착한 1990년대 초반, 월가에 파문을 몰고 올 신상품이 탄생한다. 1992년 겨울 존 보글의 펜실베이니아 사무실에 한 유대인 노인이 찾아왔다. 뱅가드500의 유동성이 충분하지 않으니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는 신상품을 만들자며 동업을 제안했다. 이 노인이 바로 'ETF의 아버지' 네이선 모스트다. 당시 78세였지만 미국증권거래소의 신상품개발팀장이었다.
보글은 이 제안을 거절했다. 이유는 "뱅가드500 인덱스펀드는 장기 투자자를 위해 설계됐다. 유동성을 추가했다가 우리 투자자들의 이익을 해칠 단기 투기꾼들이 잔뜩 유입될까 봐 걱정스러웠다"고 회고했다.
네이선 모스트는 이후 다른 자산운용사와 손잡고 최초의 ETF인 SPDR S&P500 ETF(티커 SPY)를 출시해 대성공을 거뒀다. ETF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보글은 이후에도 ETF의 투기 성향을 줄곧 비판했다. 미국 시장에서 ETF의 연평균 회전율은 1400%에 달하고 1만%가 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상품도 다양해져 지수 전체를 추종하는 본래 성격과 달리 특정 섹터에 특화되거나, 변동폭과 방향에 변화를 준 레버리지·인버스 ETF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꼬집었다.
전설적 투자 현인들의 경고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ETF 출시 후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시장에도 울림을 준다. 두 종목의 레버리지 ETF는 지난 5월 출시 이후 40% 넘는 손실이 났다. 정부가 '보완책'을 내놨으나 허들이 낮아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버핏의 시각에서 국내 증시는 대성당에 가야 할 돈이 카지노판으로 몰려드는 모습이다. 카지노는 재화와 서비스를 고양하지 못하고 돈이 이 주머니에서 저 주머니로 옮겨가는 시스템일 뿐이다.
카지노에선 도박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통제제도'를 이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카지노 측에 스스로 정한 출입 횟수를 통보하면 일정 기간 또는 평생 출입한도가 정해진다. 이런 발상을 국내 증시에 대입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레버리지 ETF 투자자들이 거래 횟수와 금액을 스스로 제한해 한국거래소나 증권사에 등록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투기성 자금이 몰려드는 국내 증시에는 없는 제도다. 국장의 수준이 이제는 카지노의 중독 치유 노하우라도 배워와야 할 정도로 떨어졌다.
NKHCHO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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