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 주식 상승장, 마지막 희생자는 청년이다 [전문가 칼럼]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전 국회미래연구원 이사)

코스피가 장 초반 3%대 급락한 18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48.89포인트(0.67%) 내린 7443.29에 거래를 시작했다. 2026.5.18 ⓒ 뉴스1 임지훈 인턴기자

증시가 지난 15일 장중 역대 첫 8000포인트를 찍더니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 화려한 숫자의 주식 불장은 결국 '지옥으로 가는 길에 깔린 레드카펫'일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코스피가 연일 고점을 경신하며 낙관론이 팽배하던 시장에 대통령실 주요 인사가 찬물까지 끼얹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산업 호황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이 수백조 원으로 예상되자 지난 11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국민배당금' 제도를 불쑥 꺼내면서 블룸버그통신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경고를 보내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증시의 신기루, 그리고 텅 빈 지갑과 닫힌 공장

이 한마디에 증시는 하루 만에 시가총액 33조 원이 증발하면서 무려 5% 넘게 고꾸라졌다. 이는 현재의 반등이 얼마나 모래성 위에 세워진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부와 시장 참여자들이 'K-주식 호황'이라는 최면에 걸려 있는 동안 대한민국 경제의 기초 체력은 이미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고갈되고 있다.

서울 주요 지역의 거리를 걷다 보면 현장의 목소리는 비명에 가깝다. 특히 대한민국 산업의 상징인 삼성전자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더 충격적이다. 사상 초유의 총파업 예고는 단순히 노사 간의 임금 협상 문제를 넘어 한국 제조 경쟁력의 핵심 동력이 멈춰 서고 있음을 상징한다. 반도체 초격차가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터져 나온 파업 소식은 신인도에 치명타를 입혔다.

실물경제 지표는 더욱 처참하다. 지난 4월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 취업률은 전년 동월 대비 1.6%포인트(p)나 하락했다. 청년층 취업자는 42개월 연속 감소하면서 청년 고용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다. 정부는 고용의 질을 강조할지 모르지만 정작 거리로 쏟아져 나온 청년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단기 아르바이트나 공공근로 같은 임시 일자리뿐이다.

AI와 에너지의 역설, 청년도 산업도 안보도 위험

더욱 뼈아픈 것은 미래 먹거리로 추앙받던 기술 분야마저 취업 빙하기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취업 보증수표로 통했던 컴퓨터공학과와 AI 학과 졸업생들은 이제 사상 최악의 구직난에 직면해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AI 대체 바람은 한국 시장에 상륙하자마자 취업문을 꽁꽁 얼려버렸다. 이제 기업은 단순 코딩이나 데이터 정리를 수행할 신입직원을 뽑지 않는다. 고도화된 생성형 AI가 주니어 개발자 수십 명의 몫을 해내기 시작하면서 기업은 경력직 중심의 슬림한 조직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6년 4월 청년층(만 15-29세) 취업자 및 실업자 현황.

실제로 채용 플랫폼 캐치가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주요 IT 기업의 신입 채용 규모는 전년 동월 대비 70% 이상 급감했다. AI만 전공하면 억대 연봉이라던 장밋빛 약속은 물거품이 됐고, 대학 캠퍼스에는 졸업을 유예한 학기 초과자들만 넘쳐난다. 기술의 진보가 오히려 청년들의 생존권과 기회를 앗아가는 AI의 역설이 현실화한 것이다.

대외적 악재는 설상가상이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가 계속되면서 국제 유가는 배럴당 120달러 선을 넘기도 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 경제에 이는 단순한 비용 상승이 아니라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물류 동맥이 막히며 수입 물가는 폭등했고, 이는 고스란히 국내 소비자 물가로 전이돼 서민들의 밥상을 위협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은 제조업 마진을 갉아먹고, 이는 다시 고용 위축과 소비 절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굴레를 형성했다. 증시가 5% 폭락하며 증발한 시가총액은 단순한 자산의 감소가 아니라 우리 경제가 대외 변수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실시간 성적표다.

정부의 포퓰리즘…이제 진통제가 아니라 수술을 논할 때

가장 큰 비극은 이 위기를 관리해야 할 정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당장 눈앞의 지표 관리에만 급급할 뿐 구조적인 체질 개선에는 손을 놓고 있다. 주가 방어를 위한 단기적 부양책과 포퓰리즘적인 현금 살포라는 진통제 처방으로 버티기엔 대한민국의 환부가 너무나 깊고 넓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는 '달콤한 거짓말'이 아니라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 과감한 '메스'다. 규제 혁파를 통해 기업의 자율적 투자 활로를 열어주고, AI 시대에 걸맞은 노동 시장의 유연성 확보를 서둘러야 한다. 단순히 대학 AI 정원만 늘리는 식의 근시안적 교육 정책은 결국 고학력 실업자만 양산할 뿐이다. 또한 호르무즈 사태와 같은 공급망 리스크에 대비한 근본적인 에너지 수급 구조의 재설계는 생존의 문제다.

역사는 경고한다. 실물과 괴리된 금융 자산의 팽창은 반드시 처참한 붕괴로 끝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2026년 봄,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청년 취업률 하락과 삼성전자의 파업 예고, 그리고 AI가 가져온 고용 시장의 충격은 거대한 경제 빙하기의 전조일 뿐이다.

정부가 증시 호황이라는 허상에 취해 민생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머지않아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오지 않는다. 이미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자화자찬의 샴페인 잔을 내려놓고 차가운 현실의 바닥으로 내려와야 한다. 골든타임의 모래시계는 이미 마지막 모래알을 흘려보내고 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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