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올해도 보여주기식 될까…코스피 6000 시대 주총은

문창석 증권부 팀장
문창석 증권부 팀장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20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머릿속에 박힌 장면이 있다. 2004년 삼성전자 주주총회 현장을 보도한 기사다. 당시 참여연대 소액주주가 사사건건 이의를 제기하자 의장인 윤종용 당시 부회장은 격노하며 "당신 몇 주나 갖고 있어"라고 일갈했고, 검은 양복의 용역들은 몸싸움 끝에 마이크를 빼앗고 소액주주의 손발을 붙잡아 강제로 퇴장시켰다. 전쟁 같은 주총이 열렸던 야만의 시대다.

지금은 어떨까. 속을 들여다보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1년 전인 지난해 3월 기자가 참석했던 한 백화점 기업 주총에선 재무제표 승인 안건이 상정되자 주변의 모든 주주들이 입을 맞춘 듯 "동의합니다" "재청합니다"를 외쳤고, 안건은 우렁찬 박수로 통과됐다. 평화로운 분위기를 깬 건 눈치없는 한 주주가 계획에 없던 질문을 할 때였다. 다른 주주들은 일제히 "그냥 끝냅시다" "예의가 없네" 등 고함을 치며 제지했다. 2004년에는 회사가 주주의 입을 막았지만, 지금은 주주가 다른 주주의 입을 틀어막는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1년 중 주주에게 가장 크게 홍보할 수 있는 주주총회에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소통했을까. 매년 정기 주총 현장에선 개인주주 자격으로 온 기자들과 홍보팀 직원 사이에 숨바꼭질이 항상 벌어진다. 혹시나 공개적으로 질문하지 않도록 당부하기 위해서다. 주주 인증을 마쳤는데도 사측 변호사가 따로 불러 무슨 질문을 할 것인지 미리 묻고 '불순분자'가 아니라는 게 입증된 후에야 입장을 허가받은 적도 있다. 기자는 주총에서 일반 주주가 마이크를 잡고 편하게 질문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기업이 주주친화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슬픈 일이다.

그동안 우리 증시를 박스권에 갇히게 했던 '코리아 디스카운트'에는 이렇게 주총을 단순한 법적 요식행위로 치부한 기업들의 행태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정보 공개에 소극적이고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주총은 그동안 외국인에게 '한국 시장은 주주가 보호받지 못하는 곳'이라는 선입견을 주면서 주가를 붙잡는 요인이 됐다. 이런 신뢰가 없는 시장에선 아무리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메모리 슈퍼사이클이라도 주가가 힘을 받기 힘들다.

변화를 위한 판은 깔렸다. 최근 상법 개정안을 통해 주주권 강화를 위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기존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됐고, 향후 전자 주주총회 도입이 단계적으로 의무화되면서 주주 접근성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주주권 강화가 '뉴노멀'인 시대다. 이제는 주주를 주총장에서 끌어내는 게 아니라 끌어들여서, 밸류업을 위한 질문을 듣고 올해의 사업계획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곧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있다. 올해도 많은 기업들은 특정 날짜에 주총을 몰아 개최하면서 주주들의 참여를 봉쇄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관행대로 주총을 운영하면 시대에 뒤처진 기업이 될지도 모른다. 보여주기식 주총에서 벗어나 주주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주총장에서 공개된 정보가 시장에서 평가받아 주가가 오르는 선순환을 보길 기대한다.

themo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