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 'A매치' 이탈?"…'신의직장' 구직에 축구용어가 왜 나오나요
금융기관 'A매치' 표현…FIFA 'A매치 데이'에서 유래
'우리가 최고' 국내 대표 금융기관 자부심이 만들어낸 관행
- 공준호 기자
(서울=뉴스1) 공준호 기자 = "한국거래소가 A매치에서 이탈했다."
거래소가 채용일정을 평년보다 2개월가량 앞당기자 금융공기업 취업준비생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에서는 이와 같은 표현이 나왔습니다. 금융기관 채용일정에 난데없이 국가대표 축구경기를 일컫는 용어가 나와 다소 생소한 분들도 계실겁니다. 그러나 평소 금융기관이나 금융공기업 취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A매치라는 표현은 아주 흔하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통상적으로 한국은행과 한국거래소, 금융감독원, 산업은행, 예탁결제원 등이 A매치 기관에 포함됩니다. 이들은 금융기관 취업준비생에게 '신의 직장'으로 꼽힌다는 사실과, 한날한시에 필기시험을 본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용어자체는 국제축구연맹(피파, FIFA)의 'A매치 데이 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A매치는 일반적으로 축구경기에서 최상위급 선수들끼리의 국가대항전을 의미합니다. 2003년에 시작된 A매치 데이제도란, 피파가 A매치 공식 경기와 친선 경기 등을 개최할 수 있는 날짜를 공식적으로 정해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A매치 데이에는 선수가 소속된 팀이 선수 파견을 거부할 수 없어 최고의 선수들로 A매치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A매치 데이가 아니더라도 A매치를 진행할 수 있지만, 이때는 구단 측이 선수를 파견할 의무가 없는 만큼 일부 주축선수들이 빠진 채 경기를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A매치로 불리는 금융기관들이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큼의 주요기관들이라는 점과, 한날한시에 필기시험을 본다는 점 때문에 A매치라는 용어가 자연스레 정착된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은행이 먼저 필기시험 날짜를 정하면, 나머지 기관들이 뒤따라 같은 날짜에 필기시험 날짜를 정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시험은 통상적으로 9~10월에 치러집니다. 금융기관 취업준비생들이 일반적으로 비슷한 내용의 공부를 하는 만큼 다른 날짜에 시험을 본다면 추후 인력이탈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기관들이 중복응시를 막기 위해 이같이 날짜를 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각 금융기관끼리 '우리가 최고'라는 자부심도 크기 때문에 이같은 관행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최근에는 금융기관 A매치와 관련해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올해 한국은행에 입행한 직원 한명이 지난해 하반기 치러진 금융감독원 필기시험에도 함께 응시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두 기관의 필기시험이 같은날 치러졌으니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요. 알아보니 금융감독원 필기시험은 해당 입행자의 쌍둥이형이 봤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현재 두 형제는 모두 업무방해와 공문서 부정 행사 혐의 등으로 형사고발된 상태입니다.
거래소는 23일부터 원서접수를 시작해 올해 10월 채용절차를 마칠 계획입니다. 필기시험은 7월29일에 치러집니다. 거래소가 지금까지 A매치 기간에 필기시험을 보지 않은 것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한해뿐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A매치 금융기관 준비생들은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모습입니다. 일각에서는 거래소에 최종합격한 뒤 다른 A매치 금융기관에 합격해 이탈하는 사례가 나올 것이라는 우려를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거래소는 본사가 부산에 있는 만큼 서울 근무를 선호하는 준비생들이 있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다만 이에 대해 한 거래소 직원은 반농담조로 "우리가 최고인데 다른 곳을 가겠느냐, 자신있다"라고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주식시장은 연이은 하한가 사태, 주가조작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입니다. 거래소가 이례적으로 조기채용에 나서는 이유도 이에 따른 대응을 강화하기 위함입니다. 비록 거래소는 올해 A매치에서 벗어나지만, 우수한 인적자원과 시스템, 그리고 자부심을 바탕으로 앞으로 우리 주식시장이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A매치 경기장'으로 거듭날 수 있게 힘써주길 기대합니다.
zer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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