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엄지의 주식살롱] 순양가는 왜 '지주회사'에 집착했을까?

1999년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순수 지주회사 설립 원칙적으로 허용…LG·SK 등 지주사로 전환
자회사 상장·지주사 주가 저평가 등 해결해야 할 문제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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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손엄지 기자 = TV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순양가(家) 사람들은 순양물산이라는 '지주회사'를 가지고 치열한 지분 싸움을 벌였습니다. 드라마 속 순양은 백화점, 증권사, 자동차 등 많은 기업을 가지고 있었는데, 왜 순양물산이 가장 중요했을까요. 지주회사의 역사와 역할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우선 지주회사는 회사를 지배하는 회사입니다. 계열회사를 가지고 있고, 사업내용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지주회사는 순수 지주회사와 사업 지주회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순수 지주회사는 말 그대로 자회사의 지배와 관리를 주된 목적으로 합니다. 주로 00홀딩스, 00지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회사로부터 영업자문 수수료, 브랜드 수수료, 배당금 등이 주된 수익원입니다.

사업 지주회사는 직접 사업을 하면서 동시에 자회사를 지배하기 위해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드라마 속에서는 '순양물산'이 사업 지주회사였죠.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제공)

지주회사의 장점은 독립적인 경영이 가능하고 그래서 계열사마다 객관적인 성과를 평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각 사업회사들이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으니 전문성도 강화됩니다. 그래서 국내 기업이 "지주회사 체제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면 투명하고 책임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는 지주회사가 불법이었습니다. 적은 지분으로 모든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어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벌들은 순환출자 형태로 회사를 지배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지주회사가 합법화됐고, 외부 공격에 취약하다는 순환출자의 약점이 드러나게 됐습니다. 순환출자의 약점은 SK와 소버린 사태로 요약할 수 있죠.

순환출자는 A회사가 B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B가 C, C가 D, 그리고 다시 D가 A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가 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A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가 사실상 그룹을 지배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외국 자본이 A지분을 사들여 대주주에 앉는 순간 A, B, C, D를 한 방에 털어먹을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당시 소버린은 고작 1500억원으로 SK의 경영권을 흔들었고, SK는 이에 맞서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A, B, C, D의 지분을 모두 사들여야 했기 때문에 1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이후 소버린은 주가 상승과 배당 등으로 1조원이 넘는 이익을 챙기며 떠났습니다.

회사 소유주로선 적은 자본으로 많은 회사를 거느릴 수 있어서 좋았지만, 투기꾼들의 공격에 약한 구조였습니다. 회사 하나가 무너질 경우 다른 회사까지 연쇄적으로 부도가 날 수 있는 위험한 지배구조였습니다.

이에 1999년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순수 지주회사의 설립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일정한 행위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지주회사법이 생겼습니다. 제도 변경에 따라 2000년대 들어서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기업집단이 늘어나게 됐고, 현재 LG·SK·두산·CJ를 비롯한 상당수 기업집단이 지주회사 체제를 갖췄습니다.

과거에는 지주회사 체제도 적은 지분으로 회사를 지배할 수 있어 경제력 집중을 가져온다고 생각했지만, 기존의 다단계 출자 또는 순환 출자 구조에 비해 비교적 단순한 '피라미드 구조'의 투명한 형태라고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삼성과 현대차그룹은 지주회사로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완벽하게 끝내지 못했습니다. 이는 지주회사가 가지는 몇가지 법적 제약 때문입니다. 단순히 지분을 사고 팔고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우선 지주회사는 자회사에 대해서 일정 비율 이상(상장된 자회사는 20%, 비상장 자회사는 40%)의 지분을 보유해야 합니다. 아울러 순환·수평 출자가 금지되고, 손자회사 이상 다단계 출자가 불가능합니다.

조금 다른 소리를 하자면 미국 지주회사는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은 대부분 100% 입니다. 이에 따라 자회사들은 모두 비상장이고, 지주회사만 주식시장에 상장돼 거래됩니다.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이 대표적이죠.

반면 한국 지주회사는 자회사 지분율이 20%만 넘으면 되기 때문에 자회사가 별도의 상장 회사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분 100% 보유 조건은 여러가지 기업의 환경을 고려해준 것인데, 이를 이용해 자회사 상장이 남발되는 등의 부작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 다른 제약은 지주회사의 부채비율이 200%를 넘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본이 100만원이라면 빚이 200만원을 넘을 수 없다는 거죠. 지주회사가 빚을 내서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 법의 취지입니다.

아울러 금융지주회사가 아니라면 금융업 또는 보험업을 영위하는 국내회사의 주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계열사가 아닌 국내 회사의 주식은 5% 이상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이런 불편(?)이 있어도 기업들은 지주회사로 전환하려고 하는데요. 물론 지주회사 체제가 기업들에게도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승계를 앞두고 있다면요.

지주회사 설립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막대한 현금을 들이지 않고 자회사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인적분할 방식이 가장 많이 사용됩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제공)

우선 기존 회사에서 지주회사가 될 회사(A)와 사업 회사(B)를 인적 분할합니다. 그리고 A사가 B사의 지분을 사들여 자회사로 만들면 A가 지주회사가 됩니다. 인적분할을 통해 기존회사 주식 100주를 가지고 있던 지배주주 일가는 A사 주식 100주, B사 주식 100주를 갖게될텐데요. 지배주주 일가는 B사의 주식을 A사로 넘기겠죠. 지배주주는 지주회사의 지분이 늘어나게 됩니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주식을 팔아 상속세로 납부해도 기존의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나라에서 지주회사 설립을 장려하기 위한 세금 혜택도 주고 있습니다. 지주회사의 설립을 위해 주식을 현물출자할 경우 발생하는 세금을 이연해주는 것입니다. 대기업에 대한 세금면제라는 비판이 있지만,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빠르게 유도하기 위한 것이죠.

여전히 지주회사에 대해 풀어야 할 숙제는 많습니다. 자회사들이 대거 상장되어 있는 것도 문제고, 승계를 앞둔 지주회사가 법인세를 줄이기 위해 주가를 의도적으로 누른다는 지적도 계속 나옵니다. 이를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투명한 경영,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 소액주주 보호는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과거 이야기를 풀어냈음에도 아직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많았던 이유겠죠. 보다 깔끔한 '지주회사' 체제가 다듬어졌으면 합니다.

eo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