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작년엔 성과급 잔치, 올해는 앓는 소리 하는 증권사
증권사 PF, 더 높은 연봉과 인센티브 위해 중순위·후순위 채권에 집중
금융당국, 채안펀드 조성·NCR 규제 완화 등 지원 검토
- 손엄지 기자
(서울=뉴스1) 손엄지 기자 = 베네펙턴스(Beneffectance) 현상이 있다. 성공에 기여한 자신의 공로는 대단하게 생각하는 반면, 실패에 대한 책임은 하찮게 여기는 행동특성을 의미한다. 지금 증권업계에 부합하는 말이다.
지난해 증권사들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한 대형 증권사는 그해 입사한 신입 사원에게도 2000만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다고 알려졌다. 성과급을 포함한 과장급의 연봉은 1억원을 우습게 넘겼다.
증권사 호황기에 직원들의 이직은 가속화됐다. 특히 부동산 파이낸싱(PF)을 하는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대형 증권사에서 중소형 증권사로 이직이 잦았다. 더 높은 연봉과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서였다.
PF를 통해 자금을 지원할 때 대형 증권사는 선순위 채권에 집중하는 반면 중소형 증권사는 중순위, 후순위에 참여한다. 중순위 채권은 돈을 받지 못할 리스크는 크지만, 더 높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 중소형 증권사들은 성과에 대해 높은 비중의 인센티브를 약속하면서 IB인력을 빨아들였다.
증권사들은 보통 이연 성과급제도를 운영한다. 1년 성과급이 10억원이라면 이를 3년에 나눠서 지급하는 식이다. 그리고 자발적 퇴사의 경우 이연 성과급을 모두 포기하고 나가야 한다. 많은 증권맨들은 수억원의 성과급을 포기하고도 작은 증권사로 가 더 위험하고 수익률이 높은 일을 떠맡아왔다.
하지만 축제의 시간은 짧았다. 경제가 급격하게 경색되자 PF 시장에서 발행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의 차환이 어려워지면서 수조원의 지급보증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일부 증권사들은 만기된 PF ABCP를 전액 매입하는 등 급한 불을 끄고 있지만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10월부터 연말까지 증권사에서 만기가 도래하는 PF 유동화증권(ABSTB, ABCP) 발행 잔액은 27조원에 달한다. 건설사는 5조1000억원 규모다. 여의도는 30조원의 '폭탄'을 떠안고 있다. 그동안 증권사들이 PF 시장에서 얼마나 무분별하게 돈을 풀어왔는지 알 수 있는 숫자다.
이에 금융당국은 채안펀드를 조성해 중소형사의 PF ABCP를 매입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증권사 건전성 규제인 순자본비율(NCR) 완화를 통해 PF 단기자금시장 경색을 뚫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업계는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금융안정특별대출제도 등도 요구하고 있다.
지난 코로나19 당시 대형 증권사들은 주가연계증권(ELS) 마진콜 사태로 존폐까지 위협받던 순간에 금융당국의 유동성 지원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그때 도움을 받았던 증권사들은 코로나19를 발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우선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자본시장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엔 공감한다. 하지만 이번 위기를 증권사들이 따끔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늘 그랬듯이 성과는 '내 능력'이고, 뒤처리는 남일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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