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 복수의결권과 주식 상속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에서는 유권자 모두가 1표씩을 행사한다. 납세와 기부실적에 무관하다. 연령차별도 없다. 정치에서와 달리 주식회사의 이사들을 선출하는 주주총회에서는 1주가 1의결권을 가진다. 주식이 많을수록 표가 많아지는데 주식회사의 자본단체로서의 속성을 반영한 것이다. 선거에서 세금을 많이 낸 사람에게 표를 많이 주는 셈이다. 그러나 그 외의 주주 차별은 인정되지 않는다.
자본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이유로 큰 목소리를 인정해 준다면 이미 정치적 평등의 원칙은 깨진 것이다. 다른 형태로 기여한 바가 큰 주주들도 우대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 여기서 장기간 주식을 보유해서 회사에 충성도가 높은 주주를 우대할 것인지의 문제가 나온다. 투자를 많이 한 것과 투자를 오래한 것에는 회사의 자본에 대한 기여도가 유사하다는 시각도 있다.
주식의 보유 기간에 비례해서 의결권을 차등하는 제도를 테뉴어보팅(Tenure Voting)이라고 부른다. 주식의 종류에 따라 의결권에 차등을 두는 차등의결권제도의 일종이다. 테뉴어보팅은 미국에서는 별 인기가 없고(그냥 차등의결권제도를 쓰면 되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이 널리 활용하고 있다. 대표 주자가 프랑스다. 예컨대 PSA(푸조)의 홈페이지에는 주주가 4년 연속 주식을 보유하면 2배의 의결권을 가진다고 안내되어 있다.
프랑스의 테뉴어보팅은 그 역사가 19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가 처음 경영권 방어를 위한 차등의결권을 금지한 것은 1930년이었는데 1933년에는 2년 이상 주식을 보유하면 의결권이 2배가 되도록 상법이 개정되었다. 차등의결권 금지의 단점을 테뉴어보팅으로 보완한 것이다. 프랑스 국민에게만 혜택이 부여되었다. 2014년 기준으로 프랑스 100대 기업들 중 57%가 이 제도를 채택했다. 기업공개 이전의 주식보유 기간도 산입되었기 때문에 벤처기업들 사이에서는 훨씬 더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그러다가 2014년 3월 19일에 혁명적인 변화가 발생한다. 프랑스는 새 법률로(Loi Florange) 테뉴어보팅을 원칙으로 전환했다. 즉, 주주총회가 2/3 결의로 반대하지 않는 한 모든 프랑스 회사에서는 테뉴어보팅이 인정된다. 우리 상법상의 누적투표제와 같은 체제다. 프랑스 국적의 주주에게만 적용되던 제한도 철폐되었다. 그러자 31개 대기업이 주총결의로 테뉴어보팅을 배제했다. 그런 주총결의를 막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부랴부랴 르노와 에어프랑스-KLM 정부 지분을 상향 조정했다.
테뉴어보팅 자격이 있는 주식은 양도되면 원래의 위치로 돌아간다. 그러나 합병에는 영향을 받지 않으며 결정적인 것은 상속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유 기간은 2년이 기준이고 그 이상은 자율이다. 10년을 기준으로 하는 회사도 있다.
이탈리아는 2014년에 1주1의결권 원칙을 폐기했다. 피아트(FCA)가 복수의결권을 인정하는 네덜란드로 이적한 것이 계기였다. 이제 이탈리아 기업들은 상장할 때 3개까지의 복수의결권을 부착한 주식을 발행하거나 테뉴어보팅을 채택할 수 있다. 양자택일해야 한다. 테뉴어보팅은 일몰조항의 제약을 받으며 주식의 양도에 따라 소멸한다. 상속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점은 프랑스와 같다. 그러나 프랑스와는 달리 원칙이 아니고 주총에서 2/3 결의로 도입해야 한다. 이탈리아는 지배주주 지분율이 2016년 기준으로 46.9%나 되는 나라이기 때문에 소수주주들만의 결의를 추가로 거치게 해야 한다는 비판이 있다.
벨기에도 2020년 1월 1일자로 테뉴어보팅을 도입했는데 주총에서 2/3 결의로 정관에 도입되어야 한다. 테뉴어보팅은 주식의 양도로 소멸되고 합병과 상속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테뉴어보팅제도의 국내 도입을 제안하면서 테뉴어보팅이 양도와 상속으로 소멸되기 때문에 큰 부작용이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최근 유럽의 동향에서 테뉴어보팅이 주식 상속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에서 경영권 승계가 주식 상속을 통해 이루어지고 높은 상속세율로 인한 지분 희석을 우려해 다양한 ‘작업’이 발생하는 물의가 끊이지 않는다. 새로운 관점에서 테뉴어보팅을 다시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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