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회장도 바꾸는 KB 이사회…12년 전 'KB사태'가 만든 독립성
2014년 KB사태 이후 사외이사 독립성 대대적 강화
사외이사 5명 이상 찬성 필요…지배구조 개선과 거리둬
- 김도엽 기자
(서울=뉴스1) 김도엽 기자 =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이 무산되면서 KB금융 이사회의 독립성이 재조명받고 있다. 타 금융지주에서 공공연한 '현직 프리미엄' 연임 공식을 사상 최대 실적에도 이사회가 스스로 깬 것이다.
KB금융 이사회는 과거부터 '유력 인사'로 불리던 인사를 선택하지 않아 이변을 일으켰는데, 이번 회장 인선에도 이런 독립성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지난 11일 이재근 KB금융 부문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낙점했다. 당초 '사상 최대 실적'을 바탕으로 연임이 유력시됐던 양종희 현 KB금융 회장은 고배를 마셨다.
회추위는 선정 배경으로 탁월한 경영 성과 대신 '변화'와 '세대교체'를 명시적으로 제시했다.
회추위는 "현재의 우수한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그룹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와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과감한 변화와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에서 이를 이끌 적임자로 이재근 부문장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서는 그동안 KB금융 이사회의 독립성이 다른 금융지주보다 유독 강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통상 금융지주 회장 인선에는 현직 회장의 영향력뿐 아니라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도 직·간접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지주 지배구조를 ‘부패한 이너서클’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 이후 장기 연임과 사외이사 선임 구조를 손보는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이 논의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번 인선 결과는 금융권은 물론 금융당국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회추위가 외부의 예상이나 현직 회장의 프리미엄보다 자체적인 판단 기준에 따라 움직였음을 보여준 결과라는 평가다.
KB금융의 독립적인 이사회 체제가 구축된 계기는 2014년 발생한 이른바 ‘KB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KB국민은행장이 국민은행 주전산시스템 교체 문제를 놓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책임까지 겹치면서 두 사람 모두 중징계를 받고 차례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이사회가 회장과 행장 간 갈등을 조정하고 경영진을 견제하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금융당국의 압박까지 이어지면서 KB금융 사외이사 7명 전원은 2015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사태를 수습할 차기 회장으로는 윤종규 전 회장이 선택됐다. 외부 인사 유력설이 제기됐지만 회추위는 KB 내부 사정에 밝고 조직 내 신망이 두터운 윤 전 회장을 낙점했다.
윤 전 회장 체제에서 KB금융은 사외이사 선임과 CEO 승계 구조를 단계적으로 개편했다.
2015년 금융권 최초로 주주가 사외이사 예비후보를 추천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경영진을 배제하고, 주주와 외부 전문기관이 추천한 후보군을 상시 관리하는 방식으로 사외이사 선임 과정의 독립성도 강화했다.
회장과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고 사외이사에 대한 외부 평가를 도입했다. 2016년에는 CEO 경영승계규정을 별도로 마련해 회장 후보군을 평상시에도 관리하도록 했다.
2023년에는 여성 사외이사 3명을 선임해 금융지주 가운데 처음으로 여성 사외이사 3인 체제를 구축했다. 2024년에는 권선주 전 IBK기업은행장이 KB금융 최초의 여성 이사회 의장에 올랐다.
이처럼 회장과 일정한 거리를 둔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 구조가 정착되면서 현직 회장의 연임 여부 역시 회추위가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이번 인선에도 '윤종규의 그림자'를 빼놓을 수 없는 구조적 이유다.
이사회의 예상 밖 선택은 2023년 양 회장이 차기 회장 후보로 선정될 때도 나타났다. 당시 핵심 계열사인 KB국민은행장을 지낸 허인 전 KB금융 부회장이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회추위는 비은행 계열사 전반에 대한 전문성과 리더십 등을 높이 평가해 양 회장을 선택했다.
이번 회장 선임 과정에서도 KB금융은 종전보다 한 달 이상 일찍 절차를 시작해 후보 검증 기간을 늘렸다.
외부 후보에게도 내부자료와 사전 간담회 기회를 제공하고 인터뷰 시간을 확대하는 등 내부 후보와 비교해 불리하지 않은 경쟁 환경을 마련했다. 외부 후보군은 전문기관의 독립적인 추천과 회추위원 간 논의를 거쳐 상시 관리했다.
관심은 회추위 표결 결과로도 이어진다. KB금융 회추위 규정에 따르면 최종 후보 선정에는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사외이사 7명으로 구성된 현 회추위에서는 최소 5명이 찬성해야 최종 후보가 될 수 있다.
이번 회추위 표결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회추위 규정상 최종 후보 선임에 반대하는 위원의 의견은 기록하지만 외부에는 공개하지 않는다. 다만 회추위가 이재근 후보를 추천한 뒤 열린 이사회에서는 이 후보의 선임안이 만장일치로 의결됐다.
과거에도 회추위의 표결과 이사회의 최종 의결은 구분됐다. 윤종규 전 회장은 2014년 회추위 투표에서 하영구 전 한국씨티은행장을 6대 3으로 누르고 최종 후보가 됐지만, 이후 이사회에서는 이사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회장 후보 추천안이 의결됐다.
이번 회장 선임 과정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회추위원 7명 중 이명활·차은영·김선엽·서정호 사외이사 등 4명이 양 회장 취임 이후 회추위에 새로 합류했다는 점이다. 나머지 조화준·최재홍·김성용 사외이사는 2023년 양 회장을 최종 후보로 추천했던 회추위에도 참여했다.
이재근 후보가 최소 5명의 찬성을 받아야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존 회추위원 3명이 모두 이 후보를 지지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새로 합류한 4명 가운데 최소 2명은 이 후보 선택에 가담한 셈이다.
양 회장 임기 중 회추위 구성이 절반 이상 바뀌었는데도 현직 회장에게 유리한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인선은 이사회가 경영진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정부가 논의하는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안은 현직 회장이 사외이사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해 우호적인 이사회를 구축하는 이른바 ‘참호 구축’을 주요 개선 대상으로 삼고 있다. KB금융은 이번 인선을 통해 적어도 회장 선임 과정에서는 이 같은 논란과 거리를 두게 됐다.
다만 KB금융이 정부의 지배구조 개선 대상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번 인선이 이사회의 독립성을 보여준 사례인 것과 별개로, 사외이사 선임 절차와 장기 재임, 승계 후보군 관리 등 금융지주 전반의 지배구조 개선 논의는 KB금융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 현직 회장의 연임을 사실상 추인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후보들의 역량과 미래 비전을 중심으로 차기 CEO를 선정한 것”이라며 “사외이사 중심의 회추위가 독립적으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인선”이라고 말했다.
doyeop@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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