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위에 규제, 부작용엔 또 예외…대출정책 '누더기' 됐다

정부, 이달 중 부동산 금융대책 발표…청년·신혼부부 지원
투기 잡겠다며 대출 전방위 옥죄자 실수요자 곳곳서 '피해'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2026.8.9 ⓒ 뉴스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김도엽 기자 = 정부가 집값과 가계부채를 잡겠다며 대출 규제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금융 현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갭투자를 차단하기 위해 전세퇴거자금대출과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을 조이고, 주택담보대출 한도와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까지 낮췄지만 규제의 빈틈마다 예상하지 못했던 실수요자 피해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정부는 뒤늦게 잔금대출과 청년·신혼부부 등 실수요 대출을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서 제외하는 등 보완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기존 규제의 큰 틀은 그대로 둔 채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예외를 덧붙이는 방식이 반복되면서 부동산 금융 규제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누더기 규제'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LTV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주택가격별 주담대 한도 등 핵심 규제는 그대로 유지할 방침이어서 정부가 내놓을 보완책의 실효성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규제 네 번 쏟아냈더니…잔금대출·전세 곳곳 '비명'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달 중 부동산 금융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비거주 1주택자의 전세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대신 잔금대출 등 실수요 성격이 강한 대출을 은행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청년과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 정책금융의 문턱을 낮추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정부가 다시 대출 규제 손질에 나선 것은 잇따른 규제의 부작용이 금융 현장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6·27 대책을 시작으로 9·7, 10·15 부동산 대책과 올해 4·1 가계부채 관리방안까지 네 차례에 걸쳐 대출 규제를 강화했다. 집값 상승을 억제하고 갭투자 등 투기성 대출 수요를 차단하는 동시에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낮추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규제 대상이 투자 수요와 실수요를 정교하게 구분하지 못하면서 애꿎은 실수요자까지 대출 문턱 밖으로 밀려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세퇴거자금대출이다. 정부는 지난해 6·27 대책에서 수도권·규제지역의 전세퇴거자금대출을 1억원으로 제한했다. 갭투자 수요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전세를 낀 집을 사려는 무주택 실수요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예를들어 임차보증금 4억 원이 끼어 있는 10억 원짜리 아파트를 매입해 향후 직접 입주하려는 경우에도 기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거래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갭투자를 막기 위한 규제가 결과적으로 정상적인 주택 거래까지 막는 상황이 발생하는 셈이다.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제한도 비슷하다. 정부는 6·27 대책을 통해 주택 매수자가 소유권을 이전받는 조건으로 세입자의 전세대출을 활용해 잔금을 치르는 방식에 제동을 걸었다.

문제는 최근 은행들이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강화하면서 신축 아파트 잔금대출까지 줄이고 있다는 점이다. 입주를 앞둔 수분양자가 은행 잔금대출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세보증금을 활용할 길까지 막히면서 일부 단지에서는 수억 원의 자금을 단기간에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결국 잔금대출과 중도금·이주비 등 실수요 성격이 강한 대출을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서 별도로 취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총량을 강하게 묶어놓으면 은행 입장에서는 정책 취지와 관계없이 대출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잔금대출처럼 실수요 성격이 강한 대출까지 조일 수밖에 없다"며 "결국 정부가 규제를 만들고 그 규제 때문에 생긴 문제를 다시 예외 규정으로 풀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신혼부부 보호한다지만…'6억원 벽' 그대로

청년과 신혼부부도 대출 규제의 사각지대로 지목된다.

정부는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2억~6억 원으로 제한하고 수도권·규제지역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에 대한 LTV를 기존 80%에서 70%로 낮췄다. 집값이 빠르게 오르는 상황에서 레버리지를 이용한 주택 매수를 억제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자기자본이 부족한 청년과 신혼부부에게는 대출 한도 축소가 곧 내 집 마련 기회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집값이 높은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정책대출의 활용도도 제한적이다. 디딤돌대출과 보금자리론 등 대표적인 정책 모기지는 주택가격 요건이 있어 서울 상당수 아파트가 애초 대상에서 제외된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청년들이 국가 정책 때문에 결혼을 망설이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며 청년·신혼부부 관련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가 검토하는 개선 과제에는 디딤돌·버팀목·보금자리론의 소득요건 완화와 전세사기 피해자의 주택대출 소득요건 완화, 생애최초 주택구입자금대출 신청 대상 확대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정작 대출 가능 금액을 결정하는 LTV와 DSR, 수도권 주담대 한도 등 핵심 규제는 손대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소득요건 등을 완화하더라도 수도권 청년·신혼부부가 체감하는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소득요건이나 신청 대상을 넓혀도 정작 필요한 집을 살 때 대출을 받을 수 없다면 수도권 실수요자에게 돌아가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대출 규제 또 강화…세입자는 월세로 밀리나

정부가 추가로 검토하고 있는 비거주 1주택자 전세대출 규제를 놓고도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자신이 보유한 주택에 거주하지 않으면서 다른 집에 전세로 사는 1주택자의 전세대출 보증 한도를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실거주하지 않는 주택 보유자의 전세대출을 제한해 갭투자와 전세를 활용한 우회적인 주택 투자를 막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규제가 강화되면 일부 1주택자가 보유 주택으로 돌아가면서 기존 세입자가 집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 늘어날 수 있다. 전세 물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세입자가 더 비싼 전셋집이나 월세로 이동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투기 수요를 막기 위해 만든 규제가 매수자와 집주인의 행동을 바꾸고, 그 결과 다시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으로 전가되는 '규제의 연쇄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규제→부작용→예외…은행원도 헷갈리는 '대출 방정식'

금융권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대출 규제의 복잡성이다.

지난해부터 LTV·DSR 등 기존 건전성 규제 위에 주담대 한도, 전세퇴거자금대출 제한,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 가계대출 총량 관리 등 목적이 서로 다른 규제가 잇달아 추가됐다.

여기에 실수요자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잔금대출과 정책대출 등에 예외를 두는 방안이 다시 검토되고 있다.

같은 주택담보대출이라도 주택 소재지와 가격, 보유 주택 수, 구입 목적, 기존 계약 여부, 대출 신청 시점 등에 따라 적용되는 규제가 달라지는 구조다. 은행 일선 창구에서도 특정 차주에게 어떤 규제를 적용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핀셋 규제'가 반복될수록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규제가 발표될 때마다 대출 가능 금액과 거래 방식을 다시 계산해야 하고, 이후 보완책이 나오면 또다시 자금 계획을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총량 규제는 개별 차주의 상환 능력과 무관하게 은행별 대출 여력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크다.

정부가 잔금대출 등을 총량 관리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이 같은 문제를 인정한 조치로 해석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투기 수요를 차단해야 한다는 정책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모든 차주를 동일한 잣대로 묶으면 반드시 예상하지 못한 피해자가 생긴다"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예외를 추가하는 방식보다 실수요와 투자 수요를 정교하게 구분하는 일관된 규제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doyeop@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