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혜택은 6개월, 빚 독촉은 20년…'좀비추심' 사라질까
6개월 만에 세제 혜택받고 추심은 10년 넘게…프로세스 개선
원채권자가 불법추심 여부 점검·보고해야…음성화·탈법화 방지
- 전준우 기자
(서울=뉴스1) 전준우 기자 = 그동안 금융회사들은 연체 6개월만 지나도 '받기 어려운 빚'이라며 회계상 손실 처리해 세제 혜택을 받아왔다. 하지만 정작 채무자들에게는 소멸시효를 반복 연장하며 10년, 길게는 20년 넘게 빚 독촉을 이어갔다.
금융당국이 이른바 '좀비 추심'에 제동을 건다. 앞으로는 5000만원 이하 장기 연체채권에 대해 소멸시효 완성(5년)을 조건으로 해야 대손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기로 했다. 금융회사가 세금 혜택만 받고 채권 회수는 계속하는 이중적 관행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12일 금융위원회가 사전 예고한 '금융기관 채권대손 인정 업무세칙' 개정안에 따르면, 금융사가 소멸시효 완성(5년) 예정일에 채권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금감원에 대손 인정을 신청할 수 있는 조항이 신설됐다.
금융권의 건전성 관리 부담을 고려해 적용 대상은 은행·보험사는 5000만 원 이하, 저축은행·상호금융·여신전문금융사(카드·캐피탈 등)는 3000만 원 이하의 연체채권에 우선 적용된다.
그동안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은 '연체 채권은 무조건 받아내야 한다'는 기조 아래 기계적으로 소멸시효를 일괄 연장해 왔다. 법정 채권 소멸시효는 5년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시효 연장이 무한 반복되며 '좀비 추심'이 굳어졌다.
은행이나 카드사가 통상 6개월 이상 연체된 채권을 '추정손실'로 분류해 회계상 손실(상각) 처리하고 세제 혜택을 누리면서도, 빚 독촉은 10년 넘게 지속하는 모순적인 관행이 이어져 온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기관이 채무자의 상환 능력을 꼼꼼히 확인한 뒤 시효를 연장해야 하지만, 비용과 시간이 들다 보니 일괄 연장해 장기간 추심하는 관행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03년 카드대란 당시 부실채권 정리를 위해 설립된 민간 배드뱅크 '상록수'의 상당수 채무자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실이 알려지며, 시효 연장 구조 개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연체채권이 '은행·카드사 → 저축은행·대부업 → 영세 추심업체'로 넘어가면서 추심이 음성화·탈법화되는 부작용도 심각했다. 원채권자의 무관심 속에서 채무자가 소액이라도 갚거나 상환 계획서만 내도 '상환 의지'가 인정돼 법원 심사를 거쳐 시효가 자동 연장되어 왔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금융사가 소멸시효 완성을 조건으로 세제 혜택을 받은 채권을 다른 곳에 매각할 때, 매각계약서에 '소멸시효 완성 예정일'과 '시효완성 의무'를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 또한 채권을 사 간 매입자가 불법 추심을 하는지, 시효완성 의무를 잘 이행하는지 원채권자가 점검하고 보고해야 한다. 해당 내용이 담긴 '채권추심 및 대출채권 매각 가이드라인'은 오는 7월 개정될 예정이다.
더 나아가 8월 중에는 업권별 '소멸시효 관리 모범규준'을 개정해 소멸시효의 예외적인 연장 원칙을 확립하고, 시효를 연장하더라도 3년이 지나면 반드시 재심사하도록 규정을 강화할 계획이다.
금융권은 장기 추심을 근절하기 위한 단계별 제도 개선에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도 회수 가능성이 희박한 채권을 장기간 보유하며 비용을 쓰기보다, 명확한 기준에 따라 신속하게 소각(포기) 처리하는 것이 장기적인 자산 건전성 관리에 더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뒤 성실하게 갚지 않아도 5년만 버티면 된다'는 인식이 퍼질 경우,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만연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소멸시효 완성을 전제로 금융채권 상각이 이뤄진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빚을 성실히 갚아온 차주들과의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며 "이러한 도덕적 해이가 현재 금융권이 추진 중인 포용금융의 진정한 취지를 퇴색시키지 않도록 보완책을 세심하게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junoo568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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