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 쏘아올린 李…대기업이 투자처 '픽'하면, 금융권 지원사격
서정진·진옥동 '규제 완화' 요구…대기업 CVC '투자 숨통' 열리나
출발은 공정거래법 개정…"AI·반도체 등 제한된 영역만 풀듯"
- 김근욱 기자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금산분리 규제 완화' 검토를 지시하면서 산업계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간 기업들의 발목을 잡아왔던 '자금 조달'에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논의의 핵심은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규제 완화다. 현재는 대기업이 보유한 벤처캐피털이 외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비중이 제한돼 있는데, 이를 풀어 자금 운용의 폭을 넓히는 방향이다.
업계에서는 규제가 완화되면 선구안을 가진 대기업이 펀드 운용사(GP) 역할을 맡아 유망 기업을 고르고, 자본력이 큰 금융권이 이를 뒷받침하는 구조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금산분리 완화'를 지시한 것은 43년 전 만들어진 규제가 더 이상 기업들의 성장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에서다.
1982년 처음 도입된 금산분리는 말 그대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원칙이다. 대기업이 은행을 소유하면 은행 돈을 자기 계열사에 집중하거나 사금고처럼 쓸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과거에도 산업 육성을 내세워 완화 논의가 있었지만 '재벌 사금고 허용' 논란에 막혀 번번이 무산됐다. 그런데 지난달 10일 열린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에서 이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당시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대기업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금산분리 완화를 공식 제안했다. 그는 "대기업이 후배 스타트업을 키우는 것이 성공 확률이 가장 높다. 대기업은 망할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며 "여기에 금융기관과 정부 펀드가 함께 참여하면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도 힘을 보탰다. 그는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관련 금산분리를 완화해 위탁운용사(GP) 역할을 해야 한다"며 "셀트리온이 5000만 원 투자하면 은행은 5억 원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이번 논의가 '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규제 완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는 금융 자회사를 둘 수 없지만, 2021년부터는 신사업 투자를 위해 제한적으로 CVC 설립이 허용됐다.
하지만 조건이 까다롭다. 지주사 산하 CVC는 반드시 100% 자회사 형태여야 하고, 투자 재원도 외부에서 최대 40%까지만 조달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외부 자금 조달 제한을 완화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개선책으로 꼽힌다. 이렇게 되면 모회사뿐 아니라 외부 투자자(LP) 자금도 적극적으로 끌어올 수 있고, CVC가 단순 자회사를 넘어 직접 펀드를 운용하는 위탁운용사(GP) 역할까지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승웅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수천억~조 단위의 초대형 펀드를 조성해 유망 스타트업에 대한 대규모 스케일업 투자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이 언급했듯, 선구안을 가진 대기업이 투자 대상을 고르면 자본력을 갖춘 금융회사가 이를 뒷받침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규제 완화의 출발점은 '공정거래법 개정'이 될 전망이다. 현행 공정거래법 20조에는 '일반지주회사의 금융회사 주식 소유 제한에 관한 특례'가 규정돼 있는데, 이를 손질해야 한다.
업계는 공정위가 법 개정을 통해 금산분리 완화의 틀을 열어주면, 금융당국이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투자가 활성화되도록 후속 조치를 마련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속전속결'은 쉽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금산분리 원칙은 더불어민주당 강령에 명시돼 있고, 당이 줄곧 강하게 반대해온 사안인 만큼 국회 논의 과정에서 당정 간 협의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완화 범위에서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기업들은 광범위한 완화를 요구하지만 정부는 기업들이 AI·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에 대규모 투자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2일 금산분리 완화에 대해 "매우 특수한 영역에 한정해 예외 조항을 얘기해 볼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 대통령이) 강조한 건 '매우 제한된 영역'이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ukge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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