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빚 탕감' 속도전에 금융권 긴장…출연금 요구땐 '상법 개정' 충돌 우려
'50조 코로나 대출' 놓고 재원 마련 고심…또 금융사 '힘' 빌리나
출연금 요구땐 '주주 이익' 충돌 우려…"팔 비틀기 쉽지 않을 것"
- 김근욱 기자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코로나 빚 탕감' 공약 이행에 속도를 내면서 금융권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대출 이자를 감면하거나 원금을 탕감하려면 수조 원의 재원이 필요한 데,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금융사의 '힘'을 빌린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 예산 편성이 원칙이지만 추가로 금융사에 재원을 요청할 경우, 이 대통령의 대표 공약인 '상법 개정'과도 충돌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주의 이익에 충실하는 것이 상법 개정안의 핵심인데, 정부에 출연금을 납부하는 행위가 이에 반한다는 것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이 대통령의 공약인 코로나 대출 조정·탕감을 실현하기 위해 '배드뱅크' 설립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배드뱅크는 금융사로부터 부실채권을 매입해 정리하는 기관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금융위는 지난 2023년 8월 만기 연장 및 상환유예를 결정한 코로나 대출이 76조 2000억 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중 소비자가 갚은 금액을 제외하고 올해 9월 다시 만기가 도래하는 금액은 총 50조 원(만기 연장 47조 4000억 원 + 원리금 상환 유예 2조 5000억 원)으로 알려졌다.
물론 조정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금융권은 '수십조 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이라 전망한다. 윤석열 정부의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보다 지원 폭이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새출발기금의 초기 예산은 30조 원이었다.
금융권은 빚 탕감 정책의 '유탄'을 우려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정부 예산으로 집행돼야 하지만, 과거에도 '사회적 책임'을 이유로 금융사에 재원 부담을 요구한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문재인 정부 당시 출범한 소액연체자지원재단 역시 금융권 출연금과 시민단체 기부금을 채권 매입 재원으로 활용했다.
실제 금융권은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대출 탕감' 공약을 내걸었을 때부터 비상 태세에 들어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탕감은 결국 은행 입장에서는 손실"이라며 "사회적 책임 명목으로 은행권이 일정 부담을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금융사에 재원을 요청할 경우, 이 대통령의 공약인 '상법 개정'과 정면 배치되는 행동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상법 개정의 핵심은 회사의 이익을 넘어 '주주의 이익'에 충실해야 한다는 내용을 명확히 명시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 출범 이후 상법 개정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국내 증시도 모처럼 훈풍을 타고 있다.
한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빚탕감을 추진해 금융사에 출연금을 요구할 경우 상법개정안과 상충된다"며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로 일방적인 요구는 쉽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상생 법안'을 추진 중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금융사의 재원 기부를 법으로 명문화해 상법 개정안과의 충돌을 막겠다는 취지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에는 "정책 서민금융의 안정적 재원 마련을 위해 금융회사 출연금 등을 활용한 서민금융안정기금(가칭) 신설" 방안도 담겨 있다.
다만 이 대통령이 '코스피 5000' 달성을 내건 상황에서 이러한 정책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외국인 지분율이 절반 이상인 국내 금융지주사들의 특성을 고려할 때, 금융사가 정부에 '상생 기금'을 납부하는 행위를 해외 투자자들이 수긍할 수 있느냐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 대출 탕감 규모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사 참여 여부를 논하기는 이르다"고 선을 그었다. 빚 탕감 규모가 크지 않다면 재정만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그는 "정부 예산이 충분치 않더라도 은행권에 '팔 비틀기'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여러 가지 문제를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ukge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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