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찰인가 로비인가..동양 피해키운 '6개월유예' 미스터리

"투기등급 계열사 채권 못파는 유예기간 두배로 늘려 피해 키워"
김영환 의원 "당초대로 유예 3개월로 했어도 훨씬 줄었을 것"
"시행령도 아닌 규정 고치는데만 4개월, 이례적"

동양그룹 사태 피해자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동양그룹 사태, 피해 최소화와 대책 마련 항의 집회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피땀 흘린 서민들을 정부는 외면 말라', '고객 원금 보장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3.10.9/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고유선 기자 = 금융당국의 불찰인가, 업계 로비 결과인가.

동양사태에서 감독 규정하나가 가진 허점이 유난히 부각되고 있다. 투기등급 계열사 채권을 계열금융사가 못팔도록 규정을 바꾸면서 당초 3개월로 계획돼 있던 유예기간을 6개월로 늘려준 것이 그것이다. 덕분에 동양그룹 계열사는 법정관리 직전까지도 기업어음과 회사채를 마구 찍을 수 있었다.

금융당국의 늑장대응과 감독허점이 동양사태의 피해를 키웠다는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금융위원회가 애초에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10일 포착됐다. 정치권은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당초 개정안대로 3개월의 규정적용 유예기간을 두는 대신 6개월로 유예기간을 연장해 준 것은 잘못이라며 이번 국정감사에서 "왜 그랬는지" 따지고 책임소재를 가리겠다고 벼르고 있다.

◇투기등급 회사채 대부분 개인투자자에게 판매되는데 유예기간 늘린 것은 합리적?=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김영환 의원실에 따르면, 금융위내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가 발간한 3월29일자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 신설·강화 규제 심사안'에는 '금융회사가 계열사의 투자적격등급에 미치지 못하거나 또는 신용등급을 받지 않은 사채권 등을 판매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개정안에 대해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도입하지 않을 경우의 심각성을 서술해놨다.

규개위의 '평가요소별 규제영향분석' 자료에는 '이해 관계가 있는 계열회사가 (채권 등을) 발행하고 위험도가 높은 고위험채권에 대해 이러한(개정안이 담고 있는) 투자자 보호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특히 '일부 증권사의 경우 투기등급의 회사채 및 CP(기업어음)를 대부분 개인투자자 대상 위탁·신탁계정을 통해 판매한다'는 내용이 실린 것으로 미뤄보면, 이 같은 개정안의 내용이 빨리 시행되지 않을 경우 개인투자자의 피해가 커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금융위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아울러 규개위는 '계열회사의 부실이 투자자에게 전가되는 등 심각한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으며 시장상황 변동 등으로 계열사의 상황이 악화될 경우 고위험채권 대량매도 등으로 계열사 부실이 심화되고 금융시스템 전반의 안정성이 저해될 가능성이 있다'고도 지적했다.

계열사 고위험채권의 판매 위험성이 투자자에게 뿐만 아니라 금융시스템 전반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 대목이다. 이는 금융권 내에서 공공연히 행해지는 것으로 알려진 계열금융사를 통한 채권, CP 밀어내기 행태와도 맞닿아 있다.

뿐만 아니다. 규개위는 '비용·편익 분석' 부문에서 계열회사의 고위험채권 투자권유, 판매 등을 금지하면 투자자의 선택권이나 수익률이 일부 저해될 수 있다는 '비용' 측면과 계열회사 부실의 투자자 전가, 실물-금융부문간 부실전이 등으로 인한 시스템위험 확대 방지 등의 '편익'을 비교하면 '편익이 비용을 초과한다'고 강조했다.

이런데도 금융위는 "규정변경 예고기간(2012년11월5일~2012년12월15일) 중 일부 업계에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 다른 개정 규정의 유예기간(6개월) 등을 감안해 유예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렸다"며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했다"고 표현했다.

금융위는 입법예고 기간과 규개위 심사 등을 거쳐 지난 4월23일 해당 규정을 고시하면서 당초 안의 3개월 유예기간에서 6개월 유예기간으로 유예기간을 두 배로 늘렸다.

◇유예기간 늘리면서 날아간 5440억원 = 금융위에서 유예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려준 덕분에 동양그룹은 법정관리 신청 직전까지도 회사채와 CP를 팔 수 있었다. 당장 10월달부터는 개인투자자들에게 회사채와 CP 등을 팔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동양은 지점에 판매물량을 할당하는 방식으로 '밀어내기'를 실시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김익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이 지난 4일 내놓은 '동양그룹 위기와 향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동양그룹 위기가 고조된 8월 다섯째주 이후 법정관리를 신청한 9월 말까지 회사채, CP, 전자단기사채,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 발행액은 모두 5440억원이다.

금감원이 7일 발표한 동양 계열사 관련 CP와 전자단기사채, 회사채 규모가 모두 1조6999억원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총 피해액의 30% 가량이 이 기간에 몰려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초 개정안에 없었던 규정 유효기간도 신설=또한 규개위는 올 3월15일과 29일 두 차례 회의를 열고 규정안을 심사하면서 첫째 회의에서는 없었던 개정안의 유효기간 2년을 신설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만약 당초 개정안대로 시행이 이뤄졌다면 지금의 피해를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금융위는 규정 개정을 늑장처리하고 유예기간을 대폭 늘려 피해를 키웠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규정 개정이 왜 이렇게 오래 걸렸고 실제 어떤 논의가 있었길래 유예기간을 대폭 늘리는 것으로 변경됐는지, 변경 과정에서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 기업과의 유착이나 로비가 있었는 지 등이 규명돼야 한다"며 "그에 따른 금융당국의 책임 또한 확실히 밝혀 나가겠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지난해 11월5일 개정안 변경을 예고하고 같은해 12월15일까지 40일간 예고기간을 뒀다. 예고기간 종료 후에는 올 2월19일까지 규개위 심사를 요청했다. 규개위는 이때부터 4월17일까지 개정안을 심사했다.

정부입법이나 시행령, 시행규칙보다 하위 수준인 규정을 개정하는 데 4개월 이상의 시간을 보낸 경우는 드물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규정 개정의 경우에는 1~2달 이내에 규개위 심사를 마치고 고시까지 완료하는 게 통상적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규제가 강하게 들어가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입법예고 과정에서 (유예기간을) 늘려달라는 요청이 많이 있었다"며 "그때 접수된 의견들을 수렴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6개월이 통상적으로 굉장히 긴 것은 아니다. 그때 똑같이 개정된 것 중에는 6개월보다 밀려진 조항들도 있다"며 "내부적으로 판단했을 때 이같은 규정은 업계가 따라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상황상 시행시기를 조정하겠다 이런 판단이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k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