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잔치에 가려진 돈위기]③'미운털' 은행 과점 깨려다 리스크 키울라

금융당국, 경쟁 제고 TF서 신규 은행·스몰 라이선스 도입 검토
美 대표 특화은행 SVB도 금리 리스크 넘지 못하고 쓰러져…전문가 "위험 관리에 더 신경 쓸 때"

편집자주 ..."2008년 3월 베어스턴스 파산을 '찻잔 속의 태풍'으로 치부했던 경험을 상기해야 한다." 40년 역사의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단 36시간만에 몰락한 사태를 목도한 증권가의 경고다. '자본주의의 꽃'인 미국의 은행도 망하는데 한국은 '은행 때려잡기'에 혈안이다. '금융의 BTS'를 만들겠다는 새정부 금융당국의 당찬 포부가 무색해질 지경이다. 'K-콘텐츠' 등 전세계가 'K'자만 붙으면 열광하는 때지만 유독 'K-금융'만 후퇴다. '관치 금융'의 유령이 금융권을 옥죄고 있다. '금융의 BTS'의 꿈은 요원한 것일까.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있는 실리콘밸리은행 본사의 닫힌 출입문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AFP=뉴스1

(서울=뉴스1) 서상혁 김정은 기자 = 40년된 미국 은행이 불과 36시간 만에 문 닫는 등 미국 금융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지만 올들어 한국 금융당국이 가장 골몰하고 있는 정책현안은 '은행 경쟁 강화'다.

'과점 체제'를 깨라는 근본을 흔드는 목소리도 높았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위기가 촉발한 역대급 유동성 잔치 이후 '인플레이션'이라는 과제를 떠안은 미국이 경기 연착륙 유도에 골몰하는 것에 비해 한국은 경기 확장기에나 고민할 법한 경쟁촉진 방안에 올인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신규 은행 설립을 비롯해 다양한 방안을 논의 테이블에 올렸지만, 금융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당국이 야심차게 띄운 '특화은행'도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BV) 사태로 추진 동력이 크게 꺾인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경쟁 촉진보다는 '금융 안정'에 힘을 쏟을 때라고 입을 모은다. 올해부터 7연속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리스크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철저한 대비가 먼저라는 지적이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지난달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축하고 은행권을 비롯한 금융권 전반의 경쟁 촉진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권 돈 잔치'를 지적하며 경쟁을 활성화할 방안을 수립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현재 금융당국은 TF 산하에 금융당국 관계자·업계 관계자·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실무작업반을 통해 과제를 구체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안건이 '신규 플레이어' 도입이다. '새 플레이어'가 시장에 들어와 메기 역할을 하면 경쟁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다는 논리다. 시중은행을 포함해 인터넷전문은행·지방은행을 추가로 도입하거나, 중소기업전문은행·지급결제특화은행 등 소규모 특화은행을 도입하는 방안이 테이블에 올랐다.

당국의 방안을 두고 금융권과 학계에선 금융 불안정성을 키울 것이란 우려가 상당하다.

시중은행이나 인터넷전문은행 추가 설립에 대해선 "은행 숫자가 늘어나면 과잉영업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은행산업 전반의 수익이 떨어지면 건전성 리스크가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신규 은행의 경우 금리 하락이나 경기 침체 등 경영 여건 악화에 기존 은행 대비 크게 휘청일 가능성이 높다.

소규모 특화은행의 경우 이번 SVB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 실무작업반에서 지적한 특화은행의 리스크가 SVB 사태에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열린 실무작업반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특화은행에 대한 충분한 규제 완화 없이는 수익이 나지 않을 것", "특정 여신 부문에만 집중하는 은행은 해당 부문의 자산건전성 충격을 다른 부문의 여신을 통해 흡수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 SVB는 수익에 압박을 느끼면서 장기 국채에 무리하게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팬데믹 시기 기업공개(IPO)를 통해 벤처기업들이 끌어모은 자금을 예금으로 유치했는데, 당시 유동성이 넘쳤던 탓에 벤처기업에 대출을 적극적으로 취급하지 못하자, 장기 국채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금융당국은 이미 지난 2020년 한국금융연구원에 맡긴 연구를 통해 중소기업전문은행 도입은 실익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당시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연구원은 "중소기업대출 전문은행은 리스크 프리미엄 산정, 안정적 수익 창출의 어려움 등으로 부실화할 가능성이 높아 금융시스템 안정성 확보에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허용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국은 증권사 등 비은행권에 지급결제 등 은행 업무를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 역시도 지급결제시스템 전반의 결제 리스크를 키울 것이라는 우려가 상당하다. 증권사 법인지급결제 허용 방안을 두고서 실무작업반 참석자들은 "금융위기 발생 시 증권사의 결제 리스크가 대행은행 등 기타 금융산업의 시스템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현재까지 제기된 모든 우려 사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론을 낸다는 계획이다. 다만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6월 발표될 최종 방안에 신규 플레이어 카드는 담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던 게 특화은행이었는데, SVB 사태로 사실상 추진 동력이 꺾였다"며 "SVB 파산 이전까지만 해도 우려되는 리스크가 있지만 보완할 방안을 찾아보자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리스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올해는 특히 '리스크 관리'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은행의 7연속 기준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비롯해 그간의 금융 리스크가 올해부터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특히 부동산PF는 부동산이란 실물자산에 자금이 묶여있는 구조기 때문에 단기 유동성 위기 시 대처가 쉽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SVB 파산 사태는 자산을 운용할 때 금리 변동에 따른 위험을 충분히 관리를 못 한 경우"라며 "국내 금융시장 역시 금리 변동에 따른 불확실성과 유동성 위험 등을 제대로 관리해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하 교수는 "은행권의 경쟁이 심화했을 때 은행들은 리스크를 더 안고서라도 무리한 영업을 펼칠 수밖에 없을 텐데 이런 다양한 가능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금융당국은 현재 은행권의 리스크 관리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하고, 구조 재편에 앞서 위험성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hyu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