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엔 '외국인 뭉칫돈' 27조 몰렸는데…코인업계는 '그림의 떡'

외국인 예금 27조원·고객 790만명…실명 계정 제한에 가상자산 투자는 막혀
"장기 체류자부터 허용해야"…은행·거래소 연계로 신규 유동성 확보 기대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 AFP=뉴스1

(서울=뉴스1) 최재헌 기자 = 시중은행에 외국인이 맡긴 예금이 27조 원을 넘어서는 등 외국인이 금융시장의 주요 고객층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가상자산 투자는 여전히 막혀 있다. 은행과 가상자산 거래소가 실명계정으로 연결돼 있음에도 외국인의 원화 거래가 제한되면서 은행과 거래소 모두 새로운 고객과 유동성을 확보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금융회사와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가 다양한 디지털자산 상품으로 시장을 확대하는 만큼 국내에서도 장기 체류 외국인부터 가상자산 거래를 허용하는 등 단계적인 시장 개방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은행 등 6개 시중은행의 올해 6월 말 기준 외국인 예금 잔액은 27조 4524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021년 말 대비 48.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 고객 수도 652만 6998명에서 790만 4149명으로 21.1% 늘었다. 지난해 말 국내 체류 외국인 중 장기 체류 외국인도 215만 명을 넘어섰다.

은행권은 외국인을 금융시장의 새로운 고객층으로 보고 다국어 애플리케이션(앱)과 해외 송금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있다. 외국인 전용 예·적금과 신용대출, 자산관리 채널 등도 잇달아 선보이는 모습이다.

반면 외국인이 국내에서 전 세계적으로 '신 금융'으로 불리는 가상자산 시장에 접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원화로 가상자산을 거래하려면 거래소 제휴 은행의 실명 확인 입출금계정이 필요한데, 자금세탁과 불법 외환거래 우려 등으로 발급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장기간 거주하며 소득을 얻고 금융거래를 하는 외국인조차 원화 가상자산 시장에 접근이 막히 셈이다.

업계에선 한국 투자자는 해외 거래소를 이용하지만, 외국인은 국내 거래소에 접근하지 못하는 비대칭적 구조가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한다. 해외 거래소가 전통 금융사와 연계해 파생상품, 실물연계자산(RWA) 상품을 빠르게 출시하는 동안, 한국은 내국인 중심의 현물시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외국인이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중요한 고객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사실상 배제돼 있다"며 "글로벌 시장과의 경쟁 측면에서도 불리한 구조"라고 말했다.

만약 외국인의 거래소 이용을 허용하면 은행권에 들어온 자금과 가상자산 시장을 연결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원화 거래소는 제휴 은행 계좌를 통해 입출금이 이뤄져 외국인이 은행에 보유한 자금을 환전·해외 송금 없이 거래소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도 외국인 전용 예·적금에 머물지 않고 가상자산까지 아우르는 금융 서비스로 연결할 수 있다. 거래소는 신규 투자자와 유동성을 확보하고, 은행은 실명 계정과 결제·송금 등 연계 서비스의 이용자를 늘리는 시너지가 가능한 셈이다. 향후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되면 은행 계좌와 거래소, 결제처를 잇는 유통망으로도 확장할 수 있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외국인 거래가 허용되면 유동성의 범위가 넓어져 거래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며 "은행 등 다른 금융기관과의 연계에서도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자금세탁과 불법 외환거래 우려를 통제하면서 장기 체류 외국인부터 거래를 허용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유학·취업·결혼 등 일정한 체류 자격과 국내 은행 거래 이력을 갖춘 외국인을 대상으로 거래 한도와 강화된 고객 확인(KYC), 의심 거래 보고(STR) 등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시장은 한 번도 본격적으로 열리지 않아 유입 자금 규모를 예단하기 어렵다"면서도 "은행과 거래소의 연결 편의성이 확보되면 외국인도 환율 변동에 대응하거나 자산을 다양하게 운용할 선택지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 자금세탁이나 불법 외환거래 위험은 존재한다"며 "외국인 거래가 허용되면 유동성이 넓어져 거래소뿐 아니라 은행 등 다른 금융기관과의 연계에도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chsn1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