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콜드월렛도 완벽하지 않다…'키 보관' 넘어 '서명 통제' 물어야
한황제 한국디지털에셋(KODA)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 가상자산 보안에서 콜드월렛은 오랫동안 가장 안전한 금고로 여겨져 왔다. 인터넷과 분리된 장치에 개인키를 보관하면 외부 해킹으로부터 자산을 보호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캐나다 보안기업 코인카이트가 제작한 비트코인 하드웨어 지갑 ‘콜드카드(COLDCARD)’의 보안 사고는 콜드월렛 역시 완전한 해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코인카이트가 공개한 보안 공지에 따르면 일부 제품의 특정 펌웨어에서 지갑 생성에 사용되는 난수의 무작위성이 기대한 수준보다 낮은 문제가 발견됐다. 지갑은 인터넷과 분리돼 있었지만, 지갑의 출발점인 시드가 예상보다 제한된 범위에서 만들어졌다면 공격자는 가능한 조합을 좁혀 개인키를 추정할 수 있다.
이 사고에서 주목할 점은 공격자가 콜드월렛 장치를 훔치거나 인터넷을 통해 장치에 직접 침입하지 않고도 자산에 접근할 가능성이 생겼다는 점이다. 금고는 안전하게 보관돼 있었지만, 금고의 열쇠를 만드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셈이다. 제조사는 펌웨어를 업데이트하더라도 이미 생성된 시드는 복구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시드를 생성해 자산을 이전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이번 사고는 ‘오프라인 보관’과 ‘안전한 보관’이 반드시 같은 의미는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콜드월렛이라는 물리적 형태만으로 안전성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개인키가 어떤 장비에서 어떻게 생성됐는지, 충분한 품질의 난수가 사용됐는지, 어떤 소프트웨어와 운영 절차를 거쳤는지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기관 커스터디에서는 개인키의 생성과 보관, 암호 연산을 담당하는 HSM(Hardware Security Module)의 검증 수준이 특히 중요하다. HSM이라고 해서 모두 동일한 안전성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키 생성에 사용되는 난수와 암호 알고리즘, 키가 장비 밖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구조, 물리적 변조 대응, 사용자 인증과 권한 통제 등이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검증돼야 한다.
인증받은 HSM을 도입했다고 커스터디 시스템 전체의 안전성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안전성은 장비를 어떤 환경에 배치하고, 어떤 권한과 정책으로 운영하며, 주변 업무시스템과 어떻게 연결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가상자산 수탁업계에서는 그동안 MPC, 멀티시그, HSM 등 어떤 기술로 개인키를 보관하고 분산할 것인지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 기술들은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키를 외부로 유출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개인키가 HSM 안에 그대로 있어도 해당 키가 잘못된 거래에 정상적으로 서명한다면 자산은 이동할 수 있다. 블록체인은 해당 거래가 회사의 내부 규정을 준수했는지, 담당자의 실수나 외부 공격으로 생성됐는지를 판단하지 않는다. 암호학적으로 유효한 서명이 있으면 거래를 처리할 뿐이다.
따라서 기관 커스터디의 핵심 질문은 “키가 어디에 보관돼 있는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누가 서명을 요청할 수 있는가, 몇 명의 승인이 필요한가, 승인되지 않은 요청을 서명 장비가 자체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가, 정책을 변경하는 사람과 자산을 이동시키는 사람이 분리돼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구조가 모든 위험을 없애는 것은 아니다. 다수 승인자의 담합이나 운영자 실수, 장비 결함, 비상 복구 과정의 위험은 여전히 남는다. 결국 기술과 사람, 내부통제와 감사체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특정 장비나 기술 하나를 ‘절대적으로 안전한 솔루션’으로 간주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콜드카드 사고는 개인이 직접 키를 관리하는 자기수탁 영역에서 발생했지만 기관 수탁사업자에게 주는 메시지는 더 크다. 기관은 개인보다 많은 자산을 관리하고 여러 사람이 업무에 참여한다. 담당자 변경과 권한 오남용, 비상 상황, 규제기관의 검사와 외부감사까지 고려해야 한다. 하드웨어 지갑 여러 개를 사용한다고 기관 수준의 수탁체계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기관의 커스터디 시스템은 최소한 네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키가 검증된 장비에서 안전하게 생성됐는가. 어느 한 사람도 단독으로 자산을 이동할 수 없는가. 업무시스템 하나가 침해되더라도 승인정책을 우회할 수 없는가. 모든 승인과 정책 변경 과정을 사후에 확인할 수 있는가.
콜드월렛과 HSM, MPC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만능은 아니다. 가상자산 보안의 기준은 이제 ‘키를 얼마나 안전하게 보관하는가’를 넘어 ‘키가 신뢰할 수 있는 장비에서 생성됐는가’, ‘잘못된 서명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어떻게 통제하는가’로 확장돼야 한다. 진정한 기관 커스터디는 키를 금고에 넣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적법한 사람과 절차, 정책을 모두 충족한 경우에만 서명이 만들어지도록 통제하는 데서 완성된다.
yellowpaper@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