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도 국경이 사라진다…로빈후드의 반란[월가 뒤흔든 토큰혁명]③

모바일 투자 시대 연 로빈후드, 이젠 '토큰화' 집중
규제 갖춰진 유럽부터 서비스…"한국 주식 토큰화 수요, 분명 있다"

편집자주 ...블록체인 기술의 상징인 '비트코인'은 한때 투기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지금 뉴욕에서는 전혀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과 프랭클린템플턴은 국채와 펀드를 블록체인 위로 옮기고 있다. 로빈후드는 주식을 토큰화해 24시간 거래하는 시장을 열었다. 전통 금융과 가상자산 산업이 경쟁을 넘어 새로운 금융 인프라를 함께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실물증권이 전자증권으로 바뀌었듯, 금융은 다시 한 번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뉴스1은 뉴욕 현지 취재를 통해 월가가 주목하는 '토큰화 혁명'의 현장을 살펴보고, 한국 금융 시장에 던지는 의미를 짚어본다.

로빈후드 플랫폼. ⓒ AFP=뉴스1

(뉴욕=뉴스1) 박현영 블록체인전문기자 =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주식 투자는 컴퓨터 앞에 앉아 HTS를 켜야 가능한 일이었다. 모바일로 언제 어디서나 투자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았고, 개인투자자는 기관투자자에 비해 더 많은 수수료를 부담해야 했다. 이런 투자 문화를 바꾼 기업이 미국 핀테크 기업 로빈후드다. 수수료 없는 모바일 거래로 개인투자자를 시장 중심에 세운 로빈후드는 이제 또 다른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주식을 블록체인 위로 옮기는 '토큰화'다.

이미 2000개 이상의 미국 상장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를 이미 '온체인화'했으며, 유럽 사용자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향후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자본시장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에서 뉴스1과 만난 니콜라 화이트(Nicola White) 로빈후드 가상자산 부사장은 "전통 금융과 크립토의 경계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며 "주식의 토큰화는 당연한 흐름"이라고 말했다.

니콜라 화이트 로빈후드 가상자산 부사장.
"24시간 거래·즉시 정산"…주식시장도 블록체인으로

로빈후드가 주식 토큰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블록체인 기술이 기존 증권시장의 비효율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주식시장은 거래가 체결된 이후 실제 결제와 정산까지 시간이 걸린다. 거래 시간 역시 거래소 운영 시간에 제한된다. 하지만 토큰화가 이뤄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화이트 부사장은 "주식 시장은 블록체인 기술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크게 받을 수 있다"라며 "24시간 거래와 즉시 정산은 투자자 경험 자체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식을 토큰화하면 24시간, 365일 거래가 가능하고 수익을 즉시 정산할 수 있다. 시간만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주식 토큰을 블록체인 기반 금융 서비스, 이른바 '디파이'에서 담보물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투자자가 보유한 테슬라 주식을 토큰화한 뒤 이를 담보로 스테이블코인을 대출받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전통 금융자산이 블록체인 금융 생태계 안에서 자유롭게 활용되는 것이다.

주식 토큰화는 로빈후드의 창업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로빈후드는 설립 초기부터 개인투자자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데 주력해 왔다. 수수료 없는 모바일 거래를 통해 주식 투자의 문턱을 낮췄던 것처럼, 이제는 기관 및 초고액 자산가들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사모펀드 시장까지 진입장벽을 낮추려 하고 있다.

화이트 부사장은 "주식 만큼 토큰화하기 좋은 대상으로는 사모펀드가 있다"며 "일반 투자자는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영역이고, 어떤 비상장 기업에 투자하려면 최소 1000만달러는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토큰화를 통해 분할 투자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 시작으로 로빈후드는 오픈AI, 스페이스X 등 일부 비상장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토큰화 상품도 출시했다. 현재는 유럽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제공되고 있다.

화이트 부사장은 "미국에서는 특히 사모펀드 토큰화에 대한 수요가 크다"며 "부동산, 미술품에 대한 분할투자(조각투자) 논의가 중요시되는 한국과의 차이점"이라고 강조했다.

규제 명확한 유럽부터 서비스…"한국 주식 토큰화 수요, 분명 있다"

로빈후드가 토큰화 서비스를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먼저 출시한 이유는 규제 환경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아직 주식 토큰 거래를 위한 명확한 규제 체계가 마련되지 않았다.

다만 미국에서도 변화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토큰화 주 거래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기 위한 '혁신 면제(inno­vation exemption)'를 추진 중이다. 실제 주식을 1대1로 담보하는 '주식 토큰'만 허용하는 방안이며, 배당은 가능하지만 의결권 보유 여부는 추후 더 검토돼야 한다.

화이트 부사장은 "로빈후드는 규제 준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라며 "유럽에서 먼저 서비스를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SEC가 토큰화 관련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며 "규제 명확성이 확보되면 미국에서도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토큰화는 궁극적으로 투자의 지리적 장벽을 허무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화이트 부사장은 "유럽에서 출시한 주식 토큰은 '지리적 장벽'을 허무는 데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실제 로빈후드는 유럽 투자자들이 미국 주식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토큰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향후에는 국가 간 투자 장벽 자체가 크게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화이트 부사장은 "한국 증시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토큰화된 한국 주식에 대한 수요도 충분히 존재할 것"이라며 "한국 밖에 있는 투자자들이 지금보다 훨씬 쉽게 한국 기업에 투자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토큰화된 주식을 스테이블코인으로 거래하면 즉시 정산이 가능하고, 기업이 어느 나라에 상장돼 있든 투자자는 국경의 제약 없이 접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토큰화는 단순히 거래 방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투자자들이 하나의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드는 변화라는 설명이다.

hyun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