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한국 가상자산 거래소는 무엇으로 먹고 사나
해외는 '외연 확장', 한국은 '먹거리 고민'…엇갈린 거래소 현실
할 수 있는 건 없는데 규제만…1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사업 현실
- 최재헌 기자
(서울=뉴스1) 최재헌 기자 = 2013년. 코빗이 한국 최초의 가상자산 거래소로 문을 열었다. 2010년대 초중반 다양한 거래소가 등장했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5대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가 시장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그중 업비트와 빗썸은 나란히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업비트는 '재계의 꽃'으로 불리는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 가입해 금융권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당국으로부터 '가상자산 업자' 취급을 받은 이들이 산업을 일구고, 한때 원화 거래량이 달러를 앞지르는 기록도 만들었다.
외형만 보면 성공이다. 하지만 이들의 고민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고위 관계자는 "해외와 비교할 때 무엇을 해야 할지가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들이 '생존'을 고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해외 거래소들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생존'이 아니라 '확장'이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는 토큰화 플랫폼 온도 파이낸스와 협약을 맺고 주식 토큰 거래를 추진하고 있다. 주식을 24시간, 소액 단위로 거래하는 시대를 열겠다는 구상이다.
스테이블코인과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도 핵심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바이낸스는 자체 스테이블코인 'BUSD'를 발행·유통해 왔고, 모건스탠리는 대형 은행 최초로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를 위해 코인베이스와 협업했다.
최근에는 탈중앙화 예측시장까지 부상하고 있다. 블록체인에 투표 과정을 투명히 기록하고 스마트 계약으로 정산을 자동화해 집단지성을 반영한 새 시장 지표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예측시장은 뉴욕증권거래소(NYSE) 모회사 인터콘티넨털 거래소(ICE)의 투자를 받는 등 월가의 관심도 한 몸에 받는다. 코인베이스가 탈중앙화 예측 플랫폼 칼시와 시장 선점에 나선 배경이다. 거래소들은 중개 기관 역할을 넘어 하나의 '종합 금융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여전히 '현물 거래 수수료'라는 단일 수익 구조에 묶여 있다. 시장 규모는 커졌지만, 사업 모델은 사실상 1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문제는 사업 확장 자체가 구조적으로 차단됐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은 가상자산 파생상품과 외국인 거래, 상장법인의 시장 참여가 막혀 있다.
여기에 금융과 가상자산을 분리한 '금가 분리' 원칙이 9년째 유지되며 금융권과의 '합종연횡' 또한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해외는 거래소가 은행·자산운용사와 손잡고 새로운 금융상품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한국은 그 출발선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세계 시장은 결제·송금·예치 등 다양한 활용 사례가 확산하고 있지만, 국내는 관련 제도 논의가 1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사 서클이 한국을 찾아 금융사·가상자산 기업들과 만날 예정이지만,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논의만 시끌벅적한 셈이다. 일부 사업자는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인재와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거래소 대주주 지분율 제한과 같은,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지분제한 규제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산업의 방향성을 제시하기는커녕 기존 사업의 의지마저 꺾는 규제 행보다.
결국 제도가 없는 영역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제도가 존재하는 분야에선 규제가 추가로 적용되는 '이중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에선 혁신이 아니라 정체만 반복될 뿐이다. 가상자산 산업은 한국 금융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의 규제 틀에 머물러 있는 사이, 세계 시장은 이미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지금 기업들이 사업을 시작하며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무엇을 재밌게 해볼까'가 아니라 '무엇을 하면 안 될까'다. 이 질문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 가상자산 시장의 미래도 달라지기 어렵다.
chsn1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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