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가분리 벽' 쳐놓고 이제와서 금융사 수준 규제?…당국의 '이율배반'

"코인은 금융 아니라더니"…사고 터지니 '금융사 수준 규제' 주장
제도 만든 주체가 "규제 허술하다" 지적…자가당착 빠진 금융당국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과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2.12 ⓒ 뉴스1 이광호 기자

(서울=뉴스1) 최재헌 기자 = 지난 9년간 '금가분리 원칙'을 통해 금융과 가상자산을 별개 영역으로 구분한 금융당국이, 최근 가상자산 시장에 '금융사 수준 규제'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업계는 과거부터 금융사에 준하는 규제 도입과 제도 정비에 준비가 돼 있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당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다가, 빗썸에서 비트코인 62만 개가 오지급되는 전례 없는 사고가 발생하자 뒤늦게 금융사 수준의 내부통제를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또 현행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하 가상자산법) 관련 제도 마련에 관여한 금융당국이 "제도가 허술하다"고 언급한 점 역시 자가당착이라는 지적이 뒤따른다. 업계가 지속해서 요구한 시장 규율 체계를 담은 2단계 입법이 이해관계자 간 이견으로 지연된 상황에서, 또다시 '반쪽짜리’'법안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코인은 금융 아니라더니"…사고 터지니 '금융사 규제' 주장하는 당국

19일 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금가분리 원칙을 내세운 금융당국이 '빗썸 사태' 이후 금융사 수준의 규제를 언급한 것을 두고 이율배반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형적인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식의 앞뒤가 맞지 않는 관점"라고 꼬집었다.

앞서 지난 6일 빗썸이 이벤트 보상 지급 과정에서 비트코인 62만 개를 실수로 지급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서 "금융회사와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내부통제를 마련해야 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금융위는 지난 2017년부터 금가분리 원칙을 통해 가상자산 시장을 금융과 별개의 영역으로 인식했다. 금융기관의 가상자산 보유·매입·지분투자 등을 금지하며 금융과 가상자산 산업의 결합은 사실상 약 9년째 봉쇄됐다. 그 사이 해외에서는 대형 자산운용사와 은행들이 핀테크·가상자산 사업에 적극 진출하며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그러다 빗썸에서 전례 없는 사고가 터지자, 금융으로 인정하지 않던 당국이 뒤늦게 금융사 수준의 규제를 요구하는 것이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업계는 과거부터 금융사 수준의 규제가 도입된다면 이에 맞춰 내부통제 체계를 정비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업계 관계자는 "제도 마련을 지속해서 요구해 온 것은 업계였지만 입법을 지연시킨 것은 당국과 국회"며 "초기부터 (금융사에 준하는) 내부통제 기준과 이해 상충 방지 규정을 법제화했다면 이번과 같은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혹여나 금융사 규제를 가상자산 업계에 단순히 '붙여넣기' 하는 방식도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은행은 영업시간이 제한돼 있고 일일 단위로 결산을 맞추지만 가상자산 시장은 24시간, 국경 없이 작동하는 구조"라며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행정 편의적 규제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금융사 수준의 규제에는 찬성하지만, 맞춤형 설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제도 만든 주체가 "규제 허술하다" 지적…자가당착 빠진 금융당국

금융당국이 가상자산법 체계가 미흡하다고 지적한 점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11일 긴급 현안 질의에서 "현재 내부통제·위험관리 기준이 법에 명확히 규정되지 않고 자율규제에 맡겨진 한계가 있다"며 "현행법이 매우 허술하다는 점에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상자산법은 금융당국의 의견이 반영된 제도다. 가상자산법은 지난 2023년 국회를 통과해 이듬해 시행됐으며, 시행 전 당국은 사업자를 대상으로 현장 컨설팅을 진행하고 시행령·감독규정·조사업무규정 등을 제정했다.

가상자산법 시행 전까지 가상자산 관련 규제는 지난 2021년 시행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이 사실상 유일했다. 다만 특금법은 자금세탁방지를 규정한 법률로, 산업 전반을 규율하는 업권법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이후 2023년 가상자산법이 제정됐지만, 불공정거래 금지와 미공개정보 이용 제한 등 투자자 보호 중심의 내용만 담겨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당시 김남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가상자산 보유 논란이 정치권 이슈로 확산하면서, 시급한 투자자 보호 조항부터 우선 처리하는 방식으로 입법을 진행한 것이다.

당시 업계는 공시·발행·사업자 운영 등 시장 질서 등을 규정한 2단계 입법을 촉구했고, 국회도 부대의견을 통해 금융위에 2단계 입법을 위한 연구 용역을 주문했다. 그러나 가상자산법 시행 이후 약 1년 7개월이 지났음에도 규제 공백으로 남아있다.

금융위는 지난해 2단계 입법 정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둘러싸고 한국은행과 이견을 좁히지 못해 논의가 지연됐다. 최근에는 거래소 대주주 지분율을 15~20%로 제한하는 방안이 쟁점으로 떠오르며 정치권, 업계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선 합의된 사안만 우선 처리하고 나머지는 '3단계 입법'으로 넘기자는 의견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번에도 미완성 법안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며 "세계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국내도 산업 특성을 반영한 완결성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hsn1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