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던 시장 일군 가상자산 거래소에 ATS 수준 규제?…'지분 제한' 논란 지속
금융당국 이어 민주당 정책위까지 가상자산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 가닥
업계는 물론 학계까지 비판…"강제 지분 매각은 사유재산권 침해"
- 박현영 블록체인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현영 블록체인전문기자 = 금융당국에 이어 여당도 가상자산 거래소 대주주 지분을 자본시장 대체거래소(ATS) 수준인 15~20%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업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가상자산의 존재감이 미미하던 때부터 시장을 일궈 온 벤처기업인 반면, ATS는 이미 견고한 증권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등장한 거래소로 출발점이 다르다. 이에 출발점도, 성격도 다른 두 업종에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에 가상자산 거래소 대주주 지분율을 제한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전달했다.
디지털자산 기본법을 마련 중인 민주당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 내에서도 반대 의견은 있었으나, 거래소 시장 점유율에 따라 차등적으로 규제하는 방식으로 가닥을 잡았다.
앞서 민주당은 기본법에 이 같은 내용을 담지 않기로 했었으나, 당국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정책위에도 관련 내용이 전달되자 상황이 바뀐 것이다.
해당 규제가 추진되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모두 대주주가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이에 5대 거래소 대표들은 이날 민주당 디지털자산 TF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정문 의원을 찾아 업계의 입장을 전달했다.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는 창업자인 송치형 장이 지분 25.52%를 보유하고 있다. 두나무는 최근 네이버파이낸셜과 인수 논의를 지속하고 있어 해당 인수 건에도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마찬가지로 미래에셋이 인수를 추진 중인 코빗도 현재는 NXC가 지분 60.5%를 보유, 인수 건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빗썸은 빗썸 홀딩스가 지분 73.56%를 가지고 있다. 또 코인원은 창업자인 차명훈 대표가 53.44%를 보유 중이다. 이들 역시 대주주가 상당 지분을 강제로 매각해야 한다.
고팍스 역시 위기에 처하게 된다. 고팍스 운영사 스트리미는 해외 거래소인 바이낸스가 지분 67.45%를 보유 중이다. 바이낸스는 국내 금융당국으로부터 고팍스 인수 건을 승인받는 데만 3년 가까운 시간을 썼다. 지난해 말 겨우 승인을 받아냈는데, 지분율 제한 규제가 추진되면 다시 지분을 매각해야만 한다.
당초 기본법에서 제외될 것으로 예상됐던 지분율 제한이 재차 추진되면서 업계 및 학계에서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크게 논란이 되는 부분은 규제 도입 시점이다. 당국이 지분 분산의 기준으로 삼은 ATS의 경우, 출범 전부터 여러 기업이 지분을 나눠 가진 컨소시엄 형태로 설립 허가를 받았다.
따라서 ATS 지분 분산은 설립 전 마련된 '사전 규제'이지만, 가상자산 거래소에 같은 규제를 적용할 경우 이는 기업가치를 키워 놓은 시점에서 강제로 지분을 매각하라는 '사후 규제'가 된다.
이정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애초에 특정 주주에 지분이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규제와, 이미 소유권이 집중된 상황에서 사후적으로 지분을 강제 분산하게끔 하는 규제는 성격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상자산 거래소의 매출 규모가 커진 만큼 특정 주주에 지배력이 쏠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문제의식 자체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문제를 이런 방법으로 해결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상자산 거래소와 ATS는 탄생 배경부터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도 논란의 원인이다.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는 가상자산의 존재감 자체가 미미하던 때에 출범했다. 코빗은 2013년, 빗썸과 코인원은 2014년 설립됐다. 당시는 시가총액 기준 2위 가상자산인 '이더리움'조차 존재하지 않던 때다. 후발주자인 업비트도 가상자산 시장이 이 움트기 시작한 2017년 설립됐다.
이처럼 가상자산 거래소는 창업자가 직접 위험을 감수하며 시장 자체를 형성한 '자생적 벤처'인 반면, ATS는 기존 한국거래소(KRX)가 독점하던 증권 매매 기능을 분산하기 위해 탄생한 기관이다. 즉, 시장을 개척한 벤처기업이 아니라 기존 인프라를 보완하는 기관에 가깝다.
이 교수도 "가상자산 거래소는 자본시장의 거래소라기 보다는 중개업자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또 국제적인 흐름을 보면 ATS에 지분 분산 규제를 적용하는 것도 일반적이지는 않다고 했다. ATS에 대한 규제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많지 않은데, ATS에 적용하는 규제를 가상자산 거래소에 적용하는 건 더욱 일반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가상자산 시장은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스타트업이 자본과 위험을 감수하며 일군 산업"이라며 "시장이 형성된 후 사후적으로 규제를 도입해 주식 강제 매각을 요구하는 것은 명백한 사유재산권 침해이자 법적 '신뢰보호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전 세계에 유래 없는 대주주 지분 제한은 또 하나의 갈라파고스 규제로, 미래 먹거리인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스스로를 얽매는 족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hyun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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