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새로운 건 일단 미룬다…관료주의에 갇힌 韓 가상자산 규제

비트코인 상징이 새겨진 동전 ⓒ AFP=뉴스1
비트코인 상징이 새겨진 동전 ⓒ AFP=뉴스1

(서울=뉴스1) 박현영 블록체인전문기자 = 2023년 12월 가상자산 브로커 가이드라인 발표, 2024년 2월 은행 가상자산 커스터디 가이드라인 발표, 2024년 4월 비트코인·이더리움 현물 ETF 승인….

홍콩 정부의 가상자산 규제 행보다. 2022년 10월 정부 차원에서 디지털자산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힌 뒤로 2~3달에 한 번씩 새로운 규제가 나오고 있다. 가상자산 관련 모든 사업 유형에 대해 일일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가상자산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된 만큼, 이왕이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업하게 하려는 취지다.

반면 우리나라는 비교 자체가 어려운 수준이다. 시장 규모를 생각하면 홍콩보다 규제 필요성이 훨씬 큰데도 새로운 법안은 무작정 미루고 보는 '관료주의'가 팽배하다.

2017년 말 국내 가상자산 거래량이 세계 1위를 기록하며 규제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거래소 관련 규제가 시행되는 데만 그로부터 4년이 걸렸다. 첫 '가상자산법'이 시행되는 데까지는 7년이 걸렸다.

홍콩과 같은 사업 유형별 규제는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 가상자산 브로커나 장외거래(OTC) 사업자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생길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은행 같은 기존 기업이 가상자산 사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도 없다. 홍콩의 경우 은행의 가상자산 커스터디 사업을 위한 가이드라인도 있고, 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입법회에 회부된 상태이지만 국내는 은행이 가상자산을 보유조차 할 수 없도록 막아놨다.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는 올해가 돼서야 조건부로 허용됐으나, 그마저도 금융사는 허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또 국내 테더(USDT) 거래량이 '대장 코인' 비트코인과 비슷한 수준임에도, 스테이블코인 관련 규제는 현재 발의안조차 없는 '2단계 법안'으로 무기한 미뤄뒀다.

가상자산 업계를 취재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이 산업의 1년이 다른 산업의 10년과 비슷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가상자산 규제의 시계는 '최대한 느리게' 가고 있다. 규제의 부재는 규제가 엄격하거나 복잡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일이다. 기준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료주의(Bureaucracy)의 어원이 프랑스어로 책상, 사무실을 뜻하는 'bureau'라고 한다. 국내 가상자산 규제는 여전히 책상에 머물러 있다.

hyun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