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못 지키면 정책금융도 무너진다…"총액인건비제부터 손봐야"

[손발 묶인 국책은행]④전문가들 "인건비 제도의 유연한 예외 적용 시급"
"금융은 정보와 자본, 사람 모이는 집적 산업…자유 경제 반영해야"

편집자주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산업·수출입·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역할은 커지고 있다. AI와 반도체, 방산 등 국가 전략산업을 뒷받침할 정책금융의 중심에 있지만, 정작 국책은행은 20년 전 도입된 총인건비제와 경직된 인사·조직 규제에 묶여 민간 금융사와의 인재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여기에 지방 이전 논란까지 더해지며 우수 인력 이탈과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뉴스1은 4회에 걸쳐 국책은행 경쟁력을 가로막는 구조적 문제를 진단하고, 정책금융 경쟁력 회복을 위한 제도 개선 방향을 짚어본다.

산업은행 ⓒ 뉴스1

(서울=뉴스1) 윤수희 기자 = 국책은행의 총액인건비제와 지방 이전 논의를 기존 공공기관의 잣대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국가 전략산업 육성과 구조조정, 스타트업 지원 등 정책금융의 역할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핵심 인재를 붙잡지 못하면 결국 국가 금융 경쟁력과 산업 경쟁력까지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14일 학계와 금융권 전문가들은 국책은행의 인력 유출 문제를 단순한 조직 운영이나 인사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동력을 좌우할 구조적 과제로 진단했다. 첨단산업과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국가 전략산업을 뒷받침하는 정책금융의 핵심은 결국 사람인데, 민간 금융사와의 인재 경쟁에서 밀리면 국책은행 본연의 역할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총액인건비제의 유연한 적용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시중은행과 외국계 금융사, 핀테크 기업들은 성과에 따라 파격적인 보상을 제시하며 금융·IT 인재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반면 국책은행은 총액인건비 규제에 묶여 성과를 내더라도 시장 수준의 보상을 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대리·과장급 실무 인력과 금융공학, AI, IT 분야 전문가들이 민간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은 철저하게 글로벌 경쟁력과 인재 중심의 산업"이라며 "국책은행이 민간 금융기관과 최소한 대등한 수준에서 인재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업무 특성을 반영한 인건비 제도의 유연한 예외 적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법 전문가인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임금은 획일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과에 비례해야 한다"며 "총액인건비제 자체가 현재 금융산업 환경에 적합한 제도인지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방 이전 논의 역시 금융산업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금융산업은 사람과 정보, 자본이 모이는 '집적 효과(Agglomeration Effect)'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대표적인 산업인 만큼 단순한 지역균형발전 논리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글로벌 금융 허브인 서울과 물리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우수 인력의 이탈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며 "지방 이전도 금융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에서 신중하고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도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정책 목표는 중요하지만 시장 원리와 경쟁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금융은 생태계가 핵심인데 생태계가 없는 곳으로 이전하면 인재 확보는 물론 조직의 사기와 경쟁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단순히 정부 제도 개선만 요구해서는 안 되며 국책은행 스스로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혁신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임금과 성과보상 체계를 시중은행 수준에 맞춰 개선하는 한편 국책은행도 사업 구조를 고도화하고 새로운 수익 기반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공공성을 유지하면서도 경쟁력을 갖춘 기업은행의 운영 방식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수 인재가 더 높은 보상을 찾아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장 원리"라며 "국책은행도 직원들이 전문성을 키우고 성장할 수 있는 경력 개발 시스템과 성과 중심의 인사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직원의 임금을 일률적으로 높이기 어렵다면 핵심 인재에 대해서는 시장 수준에 맞는 보상과 성장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인력 운용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정책금융기관을 일반 공공기관과 동일한 기준으로 관리하기보다 국가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금융 인프라로 바라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총액인건비제와 지방 이전 논의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재설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책은행 관계자는 "AI와 반도체, 방산, 첨단산업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정책금융의 경쟁력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며 "인재를 붙잡지 못하면 정책금융도, 국가 경쟁력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ys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