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잔치에 가려진 돈위기]④'금융의 BTS' 만든다더니…해외투자자도 떠난다

"말로만 해외 진출 지원" 되레 규제 강화…"정부 믿고 해외진출 하겠나"
성장 위축 감지되자 외인들 한달새 5500억 순매도…4대금융 주가 10%↓

편집자주 ..."2008년 3월 베어스턴스 파산을 '찻잔 속의 태풍'으로 치부했던 경험을 상기해야 한다." 40년 역사의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단 36시간만에 몰락한 사태를 목도한 증권가의 경고다. '자본주의의 꽃'인 미국의 은행도 망하는데 한국은 '은행 때려잡기'에 혈안이다. '금융의 BTS'를 만들겠다는 새정부 금융당국의 당찬 포부가 무색해질 지경이다. 'K-콘텐츠' 등 전세계가 'K'자만 붙으면 열광하는 때지만 유독 'K-금융'만 후퇴다. '관치 금융'의 유령이 금융권을 옥죄고 있다. '금융의 BTS'의 꿈은 요원한 것일까.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규제혁신회의 출범식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2022.7.19/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서울=뉴스1) 신병남 기자

"방탄소년단(BTS)과 같이 글로벌을 선도하는 플레이어가 출현하도록 새로운 장을 조성하겠다."

김주현 금융위윈장은 지난해 7월 취임 후 첫 공개회의를 '금융규제혁신회의'로 정하고 '금융의 BTS'가 나오도록 금융권의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12월 국내 금융지주 등에 투자하는 해외투자자들을 이례적으로 만나 국내 금융산업에 투자를 독려하는 IR(기업설명회)까지 진행했다.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 취임사에서 강조한 '자유시장경제'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면서 그간 네이버·카카오·토스 등 신규 사업자들에게 치이던 은행들은 새 정부에서 규제 완화와 해외진출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올해 2월부터 달라진 금융당국에 은행들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옥죄던 규제를 손본다더니, 은행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조직하는 등 이전보다 강한 규제를 예고하고 있다. 은행에 대손준비금을 더 적립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신설해 주주환원 정책의 기본인 배당 여력도 쥐락펴락하고 있다.

◇성장 모멘텀은 해외에서만?…규제 일관성 사라진 금융당국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13일 제1차 금융산업 글로벌화 TF를 열고 금융사들의 해외진출을 돕기 위해 '금융 국제화 대응단'(가칭) 신설하는 등 지원 계획을 밝혔다.

TF는 지난 1월30일 금융위의 대통령 업무보고 후속 조치로, 금융권 글로벌화 지원방안과 관련 제도 개선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구성됐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금융사들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영업사원'이 되겠다고 자처했다.

반면 은행들은 정부 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 다수다. 규제 완화로 해외 진출을 이끌겠다는 금융당국의 말과 달리 현재 당국은 은행 영업 근간을 강하게 흔들 정도로 규제 일색이라서다.

해외진출 실패 시 금융사 입장에선 매몰비용으로 처리되기에 불확실성을 담보할 안정적 국내 영업이 필수다. 하지만 영업 규제 강화하고 있으니 진출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작년 레고랜드 사태로 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한 정부는 변동성에 따른 풍선효과로 대출금리가 치솟자 금융사, 특히 은행을 지목해 문제의 원인으로 삼았다.

이후 은행을 핵심계열사로 둔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가 지난해 40조원에 가까운 이자수익으로 200∼300% 임직원 성과급을 지급하자 윤 대통령은 이들이 '돈잔치' 누렸다며 금융위에 제도 마련을 지시했다. 지난 2월 들어 정책이 일순간에 틀어졌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실무작업반 제2차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제공) 2023.3.9/뉴스1

금융당국은 지난달 22일부터 릴레이 TF를 열고 은행권 영업구조를 손질할 제도 마련에 돌입했다. 또한 성과급·퇴직금 등 보수체계 개선, 손실흡수 능력 제고,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 고정금리 비중 확대 등 금리체계 개선, 사회공헌 활성화 등 영업 전반을 살피고 있다. 부실을 대비할 대손준비금·충당금이 있지만, 추가로 손실을 대비해 이익을 전환하도록 요구할 특별대손준비금 적립요구권도 신설할 계획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성공적인 해외진출을 위해선 현지 금융당국과의 스킨십 등 적극적 정부 지원과 수익을 내기까지의 긴 인내심이 정부와 금융사 모두 필요하다"며 "업권과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정책 동의를 얻어낼리가 만무하다"고 토로했다.

◇"외인지분 70%" 글로벌 회사 금융지주, 외국들 한달새 5500억원 순매도

손바닥 뒤집듯 바뀐 정부 정책에 감독수장의 IR에도 해외 투자자들은 빠르게 자금을 빼고 있다. 금융지주는 외국인 지분율이 높아 지배구조는 글로벌 회사로 취급된다. 지난 15일 기준 KB금융지주(105560), 신한금융지주회사(055550), 하나금융지주(086790), 우리금융지주(316140)의 외국인 주주 지분율은 각각 72.66%, 62.93%, 71.83%, 40.21%다.

ⓒ News1 DB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위에 지시해 은행들을 압박하기 시작한 지난달 13일 이후 지난 15일까지 외국인들은 4대 금융 주식을 총 5479억원을 순매도했다. 올해 들어 2주간 4620억원을 순매수하며 한국 금융업에 기대감을 걸었는데, 정부의 강한 규제가 예상되자 투자금을 거둬들였다.

주가도 곤두박질쳤다. 지난달 14일 종가 대비 지난 15일 종가를 비교해보면 4대 금융은 평균 9.9% 하락했다. 우리금융의 주가가 1만2590원에서 1만1100원으로 11.8% 하락해 낙폭이 가장 컸다. 하나금융이 10.3% 떨어진 4만2000원, 신한금융과 KB금융은 각각 10.3%, 7.5% 떨어진 3만5450원, 4만9000원이다.

업계 관계자는 "금리상승기 수익성이 개선되는 자연스러운 시장 상황을 정부가 문제 삼으니 시장참여자들도 떠나는 분위기"라며 "실리콘밸리뱅크(SVB) 사태 이후, 위기에도 버티는 전통금융사에 대한 위상이 개선되는데도 국내 금융주는 규제 리스크에 힘을 못 내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fellsic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