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대 걸그룹, 韓 가요계 장악하고 글로벌 시장으로 [신년특집-가요]
- 김민지 기자, 고승아 기자

(서울=뉴스1) 김민지 고승아 기자 = 있지(ITZY), 에스파(aespa), 아이브(IVE), 르세라핌(LE SSERAFIM), 뉴진스(NewJeans) 등. K팝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눈과 귀에 익는 아이돌들이다. 최간 1년간 가요 차트를 장악한 이들의 공통점은 데뷔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4세대 걸그룹'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각자의 색이 짙은 음악과 색다른 콘셉트로 대중을 홀리며 단숨에 '가요계 주류'로 떠올랐다.
◇ 걸그룹 vs 걸그룹 vs 걸그룹…음원 차트 정복한 4세대
지난 2023년 국내 음원 차트에는 거센 '여풍'이 불었다. 써클차트 중 음원 인기 척도를 가늠할 수 있는 스트리밍, 다운로드, BGM, V컬러링 판매량에 가중치를 부여해 집계한 월간 디지털 차트를 살펴보면 지난해 1~8월 1위의 주인공은 전부 걸그룹이다. '디토'(Ditto)로 1~3월을 장악한 뉴진스는 4월 '키치'(Kitsch)를 발표한 아이브에게 정상의 자리를 넘겼고, 5월에도 아이브는 '아이 엠'(I AM)으로 인기를 이어갔다. 6월에는 (여자)아이들의 '퀸카'(Queencard)가 1위에 올랐고, 7~8월에는 뉴진스가 '슈퍼 샤이'(Super Shy)로 다시 왕위를 이어받았다. 9월에는 혼성 남매 듀오 악뮤가 새로운 1위 자리에 올랐지만, 이후에도 여러 걸그룹의 음원이 상위권을 장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4세대 걸그룹'의 흥행 요인으로 '음악'을 주목했다. 방탄소년단(BTS)의 글로벌 흥행 이후 보이그룹 시장에서 '이지 리스닝' 계열의 곡을 찾기 힘들어진 상황에서, 다채로운 장르 선보이는 걸그룹의 노래가 대중에게 쉽게 다가선다는 의견이다. 한 관계자는 "화려한 K팝도 좋지만 '이지 리스닝' 곡으로도 승부를 볼 수 있는데, 그 점에서 걸그룹이 훨씬 유연하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가요 관계자는 "노랫말에도 주목해야 한다"라며 "4세대 걸그룹들의 곡 가사를 보면 '자기애'를 기반으로 한 내용이 많고, 주체적이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최근 주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반영한 걸그룹 노래의 가사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인기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다.
◇ '팬덤 약세' 극복한 4세대 걸그룹, '밀리언 셀러 음반'도 가뿐
지난해 10월 가요계에서 눈에 띄게 화제가 된 소식은 아이브의 초동(앨범 발매 후 일주일간 판매량) 기록이었다. 10월13일 발매된 아이브의 첫 번째 미니앨범 '아이브 마인'(I’VE MINE)은 초동 160만장을 돌파했다. 이는 전작인 정규 1집 '아이 해브 아이브'(I’ve IVE)가 기록한 110만장을 훌쩍 뛰어넘은 수치이자, 역대 여자 가수 초동 3위의 기록이다. 이외에도 에스파(미니 3집 '마이 월드'), 뉴진스(미니 2집 '겟 업'), 르세라핌(정규 1집 '언포기븐'), 엔믹스(싱글 3집 '어 미드서머 엔믹스 드림') 등이 2023년 앨범을 발매한 뒤, 초동 100만 장을 훌쩍 넘기며 빠르게 '밀리언 셀러' 대열에 합류했다.
4세대 걸그룹들은 음반 판매에서도 강세를 보이며 앞선 세대 걸그룹들이 가졌던 약점을 깬 행보까지 보이고 있다. 전통적으로 K팝 보이그룹은 팬덤이 강해 국내 및 해외 음반 판매량에서 강세를 나타냈고, 걸그룹은 대중에게 인기를 얻어 국내 음원 차트에서 저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4세대 걸그룹은 귀에 감기는 음악으로 '대중픽'을 받아 국내 음원 차트를 장악하는 것은 물론, 단단한 국내외 팬덤까지 형성하며 많은 음반 판매량도 기록중이다. 덕분에 가요계에서 4세대 걸그룹의 존재감은 현재 '압도적'이다.
김진우 써클차트 수석연구위원은 "지난 2020년 블랙핑크가 단일 앨범으로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뒤, (엔터사에서) 걸그룹들이 내수를 넘어 해외시장에서도 판매량을 올릴 수 있다는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라며 "그러면서 걸그룹 오디션도 많아지고 공급이 증가했는데, 지난 2022년 5월부터 이들이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지난 2022년 K팝 음반 판매량은 8000만장으로, 2021년 판매량인 6000만장에 비해 2000만장이 증가했는데, 상승량 중 1500만장이 걸그룹 음반"이라면서 "걸그룹이 아니었다면 2022년 음반 시장 성장세가 둔화할 뻔했다"라고 했다. 그만큼 걸그룹이 K팝 시장에서 중요한 존재가 됐다는 것이다.
◇ 대형 기획사 성공 노하우 담아 초고속 약진
4세대 걸그룹들은 어떻게 '대세'가 됐을까? 이들은 대형 기획사의 든든한 배경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앞서 론칭한 K팝 그룹들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를 갖추게 된 SM, JYP, 하이브, 스타쉽 등 대형 기획사들은 여기에 새로운 트렌드를 접목해 대중성은 물론, 탄탄한 팬덤까지 갖춘 새로운 형태의 걸그룹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있지는 트와이스, 에스파는 레드벨벳에 이어 탄생했고, 르세라핌은 여자친구를 배출한 쏘스뮤직과 하이브가 만나 빚어낸 결과물이다. 뉴진스 역시 f(x), 레드벨벳 등 여러 아이돌의 앨범 제작에 참여했던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제작했다.
대형 기획사들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주요 음악 콘텐츠 이외에도 자체 제작 예능, 커버 영상 등 부수적인 콘텐츠를 공격적으로 선보였고, 이는 곧 '코어 팬덤' 확보로 이어졌다. 방탄소년단이 글로벌 동영상 공유 플랫폼 유튜브를 통해 수많은 자체 콘텐츠를 공개하며 팬덤을 강화했듯이, 현 4세대 걸그룹들은 자본이 많이 투입되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팬들과의 접점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김도헌 음악평론가는 "과거에도 대형 기획사 소속 팀이 주목받은 건 사실"이라며 "매력적인 서사를 만들고, 비주얼에 투자하고, 뮤직비디오 로케이션을 하려면 자본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뉴진스처럼 앨범 하나를 발매할 때마다 여러 개의 뮤직비디오를 동시에 제작하는 것은 대형 기획사의 자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평가다. 김 평론가는 "K팝 시장 자체가 포화된 상황에서 무엇이든지 대형 기획사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K팝 팬들이 대형 기획사가 선보이는 신인 그룹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도 론칭 초기 화제성을 이끄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대형 기획사 소속 아이돌 팬덤이 자연스레 신인 그룹들에 관심을 가지며 '내리사랑'을 보여주고, 이것은 향후 그룹의 인기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 세계관보다 개성 강한 콘셉트…'아이콘'이 된 '아이돌'
4세대 걸그룹은 MZ세대를 상징하는 '당당함'을 기반으로 각 팀의 매력을 살리는 데 집중한다. 이전 세대의 걸그룹이 보여준 음악적 색이 다소 한정적이었다면, 4세대 걸그룹은 각 팀이 자신들의 색깔을 개성 있게 표현하며 이를 다양한 장르의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들은 특정 세계관에 갇히지 않고 여러 가지 콘셉트를 자유롭게 활용한다. 아이브의 '나르시시즘'과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르세라핌의 아이덴티티, '시대의 아이콘'을 지향하는 뉴진스가 고루 사랑받는 이유다.
김도헌 평론가는 "지금까지 걸그룹은 다소 천편일률적인 스타일이었는데, 4세대 걸그룹은 이전 콘셉트를 버리고 입체적이고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라며 "덕분에 세계관이나 극단적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보이그룹보다 훨씬 트렌디한 모습으로 비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챌린지와 시너지…MZ세대 전폭적 지지
다채로운 쇼트폼 콘텐츠 역시 4세대 걸그룹의 인기에 한몫했다. 최근 아이돌들은 쇼트폼 플랫폼에서 유행하는 챌린지를 따라 하거나, 본인들의 신곡 챌린지를 반복적으로 올리며 콘텐츠를 양산한다. 이때 대중이 틱톡, 릴스(인스타그램), 쇼츠(유튜브) 등을 통해 이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홍보 효과가 생긴다. 그 수많은 콘텐츠 중에서도 걸그룹들의 영상이 워낙 주목을 받는 것에 대해 한 전문가는 "걸그룹들이 쇼트폼 콘텐츠를 다양하게 선보이면 비주얼에 대한 반응이 더 좋아 노출 효과가 크다"라고 말했다.
쇼트폼 영상 콘텐츠의 배경음악으로도 걸그룹들의 노래가 많이 활용되는 부분 역시 주목할 만하다. 그럴 때마다 대중에게 곡이 자연스럽게 노출되면서 홍보 효과도 커진다는 설명이다. 관계자는 "걸그룹들의 음악이 '이지 리스닝' 계열이 많아 쇼트폼 콘텐츠의 배경음악으로 잘 활용된다"라며 "덕분에 대중에게도 곡이 익숙해지고, 이들이 다시 음원 차트에서 노래를 찾아 들으면서 반응이 크게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韓 시장 잡은 4세대 걸그룹, 글로벌 시장 공략 박차
기존 최고 K팝 보이그룹 방탄소년단 및 걸그룹 블랙핑크가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기면서, 4세대 걸그룹들 역시 탄생 때부터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탄탄한 노래와 댄스 실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 다양한 외국어까지 능숙하게 소화하며 글로벌 무대에서 주눅 들지 않고 K팝 그룹의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은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도 통했다. 뉴진스는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미니 1집 '뉴 진스'(New Jeans), 싱글 1집 'OMG'로 10억 스트리밍 음반 두 개를 보유하게 됐다. 또한 미니 2집 '겟 업' 타이틀곡 '슈퍼 샤이'는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 자체 최고 순위인 48위를 기록했다. 아이브는 '러브 다이브'(LOVE DIVE), '애프터 라이크'(After LIKE) 등 두 곡이 스포티파이 스트리밍 2억회를 돌파했고, '일레븐'(ELEVEN), '아이 엠', '키치' 역시 억대 스트리밍 수를 기록할 정도로 해외 K팝 팬들에도 호응을 얻고 있다. 에스파는 미니 2집 '걸스'(Girls)와 미니 3집 '마이 월드'(MY WORLD) 등 2장을 단시간에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톱10에 올려놓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진우 써클차트 수석연구위원은 이 중에서도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인 스포티파이에 주목하면서 "2022년까지만 해도 K팝 걸그룹의 노래는 일간 스트리밍이 200만 정도였는데, 이제 400만이 넘어간다"라며 "데일리 차트 안에 머무르는 기간도 150일 이상이고 차트에 오래 머물면서 소비량이 증가하는 추세다, 롱런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글로벌 음악시장에서 K팝 걸그룹들의 인지도와 저변이 확대된 것"이라고 바라봤다.
김도헌 평론가는 "이제 글로벌 시장 진출은 모든 아이돌에게 기본적인 활동 형태"라며 "한국 시장은 너무 작기에 다수의 K팝 그룹이 글로벌 시장의 문을 계속 두드릴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어떤 스타일과 미학을 글로벌 시장에 던질 것인지가 중요하다"라며 선택과 집중을 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 '가요계 대세'를 넘어 '글로벌 퀸'으로 가기 위해서는
승승장구 중인 4세대 걸그룹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있다. 현재 K팝 시장은 현지화 전략을 앞세운 3.0 시대를 지나, 현지 제작자들이 자국 아이돌에 K팝 시스템을 입히는 4.0 시대로 진입했다. K팝 시장에도 전원 일본인 걸그룹 니쥬(NiziU)와 모두 외국인 걸그룹 엑스지(XG), 하이브의 북미 현지 걸그룹 오디션 '드림 아카데미' 팀 등이 등장했다. 결국 이들은 국내 제작 걸그룹들과 같은 선상에서 경쟁하게 될 전망이다. '아이돌 무한경쟁'이 시작된 상황에서 4세대 걸그룹들이 더 앞서가려면, K팝의 주요 콘텐츠인 음악에 더욱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역시 음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임 평론가는 "각 팀만의 색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양질의 곡, 좋은 곡을 만들어야 한다"라며 "걸그룹들 역시 결국은 대중음악을 하는 팀이기에 히트곡만 내려 하지 말고 다수가 공감하는 명곡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려한 퍼포먼스 이상으로 좋은 곡, '그레이트 송'을 찾아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김도헌 평론가는 "4세대 걸그룹의 파급력은 절대적 판매량이나 소셜 미디어 노출 수치로 볼 때 이미 이전 세대를 뛰어넘었다"라며 "이제 K팝이 몸집 불리기를 넘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했다. 이어서 세계적인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와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해 서투르게나마 아티스트가 느끼는 감정을 공유하고 또래들과 소통, 거대 팬덤을 형성해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전하며 "K팝은 태생 자체가 인공적이라는 딜레마가 있는 만큼, 그런 점을 비틀거나 혹은 인공적이더라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정교한 기획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아티스트와 회사가 시간을 갖고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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