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 윤리, 평생 해온 질문"…이창동 '가능한 사랑' 베니스 품고 귀환(종합)
[N현장]
- 장아름 기자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베니스 국제영화제 은사자상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의 8년 만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국내에서 베일을 벗었다. '거장' 이창동 감독은 해고 노동자와 다큐멘터리 감독, 두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노동의 가치부터 계급 갈등, 창작자의 윤리까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21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영화 '가능한 사랑' 언론시사회에는 이창동 감독과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이 참석했다. 전도연은 뉴욕에서 연극 '벚꽃동산' 상연 일정으로 인해 화상으로 함께했다.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녀의 남편,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숨은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버닝'(2018) '밀양'(2007) '오아시스'(2002) '박하사탕'(2000) '초록물고기'(1997) 이창동 감독의 8년만의 신작이다.
특히 '가능한 사랑'은 지난 12일(현지 시각) 제83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 다음 권위의 은사자상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이창동 감독은 지난 2002년 제5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오아시스'로 은사자상 감독상을 탄 이후 24년 만에 같은 영화제에서 또 한 번 더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당시 '오아시스'의 주연 문소리는 신인배우상을 받았다.
이날 이창동 감독은 수상에 대해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진심으로"라면서도 "그러나 상은 결과물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영화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와서 관객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가 베니스 영화제였기 때문에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 줄까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 그 또한 진심이다"라고 강조했다.
조인성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외신 기자들의 환대와 사인 요청을 받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그런 자리가 엄숙한 자리라 인지하고 공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분위기였는데 (외신기자들이) 우르르 나오셔서 뭘 잘못한 줄 알았다"며 "놀라우면서 반가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창동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해고 노동자와 계급 갈등뿐만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윤리와 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까지 여러 층위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특히 극 중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 분)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영화로 담아내는 창작자의 윤리적 고민을 꺼냈다. 그는 10여 년 전 대기업의 대량 해고와 파업, 강제 진압 사건을 영화로 준비했다가 중단했던 사실을 밝히며 "내가 그 이야기를 정직하게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나, 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가까운가 거기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접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시간이 흐르면서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고,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작품을 다시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타인의 삶을 그리는 저와 같은 창작자에게는 본질적인 고민이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그들로서 할 수 있을까'다"라며 "그걸 소비하지 않고 제대로 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 하는 건 평생 해온 질문이다, 지금도 답을 쉽게 찾지 못한 질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질문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부부의 관계를 통해 구체화된다. 전도연과 설경구는 해고 노동자 부부를 연기했다. 전도연은 미옥에 대해 "돈과 계급은 사람의 가치관을 무너뜨릴 수 있고 그 사람의 가치를 앗아갈 수 있다 생각하지만 미옥은 그것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지켜내려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설경구는 호석에 대해 "해고 이후에 아픈 상처가 있고 자아가 완전히 깨진 상태"라며 "수치심과 죄책감과 분노 등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면서 위축된 인물"이라고 전했다.
조인성과 조여정은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로 호흡을 맞췄다. 조인성은 상우에 대해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진 자는 어떻게 우리와 밀접하게 붙어 있는가 고민하면서 새로운 자본가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조여정은 예지에 대해 "호석과 미옥 부부의 삶을 보면서 충만한 삶과 관계라는 건 경제적인 안정감과 비례하는 건 아니라는 걸 느끼면서 영화를 찍었다"고 전했다.
이번 작품은 이창동 감독과 전도연, 설경구의 재회로도 관심을 모았다. 전도연은 '밀양'(2007) 이후 19년 만에, 설경구는 '박하사탕'(2000)과 '오아시스'(2002) 이후 다시 이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조인성과 조여정은 이 감독과 첫 작업에 나섰다.
전도연은 '밀양' 당시 이 감독이 좀처럼 '오케이'(OK) 사인을 주지 않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답을 갖고 계신 감독님이 답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이번에는 "너무 편하고 힐링이 되는 정도의 현장이어서 조금 놀라긴 했다"고 털어놨다.
이에 이 감독은 과거 자신이 정해놓은 답에 배우가 도달했다고 해서 충분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오케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2010) 촬영 당시 윤정희가 불안해하고 신체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고, 이후 '오케이' 사인을 주기 시작했던 일화도 공개했다. 더불어 이번에는 네 배우가 서로 좋은 기운을 주고받으며 팀워크를 만들어준 덕분에 자신이 할 일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설경구는 베니스 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눈물을 흘렸던 순간을 회상했다. 그는 "미옥(전도연 분)이 일말의 희망을 찾는 모습이 보이면서 '과연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을까?' 생각이 들더라"며 관객들의 박수를 들으며 촬영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터졌다고 밝혔다. 이어 "다행으로 조인성 씨가 같이 울어줬다, 전도연 씨는 제가 너무 울어서 울 기회가 없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한편 '가능한 사랑'은 오는 9월 23일 일부 극장에서 개봉한 뒤 11월 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aluemch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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