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 "타인의 삶 그리는 창작자의 윤리, 지금도 답 찾지 못해" [N현장]
- 장아름 기자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이창동 감독이 신작 '가능한 사랑'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창작자의 윤리적 고민을 꺼냈다.
21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영화 '가능한 사랑' 언론시사회에는 이창동 감독과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이 참석했다. 전도연은 뉴욕에서 연극 '벚꽃동산' 상연 일정으로 인해 화상으로 함께했다.
이날 자리에서 이창동 감독은 극 중 다큐멘터리 감독인 예지(조여정 분)를 통해 그린 영화 매체와 카메라의 윤리에 대해 "제게 어떤 기준이 있느냐를 말씀드리기 어렵다, 저 자신도 어디까지 선을 지켜야 할지 알 수 없다"며 "처음에 10여 년 전에 대기업에서 대량 해고, 파업, 강제 진압 같은 사건이 터졌을 때 저한테는 충격이자 한국 사회의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걸 이야기해 보고 싶어서 준비하고 했다가 접었다"며 "내가 그 이야기를 정직하게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나, 내가 그들에게 얼마나 가까운가 거기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접었다"고 고백했다.
이창동 감독은 "그러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노동의 문제가 단순 파업과 해고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노동의 시각 자체가 바뀌는 상황에 왔을 때 이 이야기를 다시 할 수 있었던 건 결국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의 이야기가 들어오면서 가능해졌다"며 "그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의 정체성을 통해 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창동 감독은 "그냥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제 이야기와 함께 함으로써 어느 정도 저의 윤리적 문제 또는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태도의 문제를 같이 이야기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더불어 "타인의 삶을 그리는 저와 같은 창작자에게는 본질적인 고민이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그들로서 할 수 있을까'다"라며 "그걸 소비하지 않고 제대로 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 하는 건 평생 해온 질문이다, 지금도 답을 쉽게 찾지 못한 질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창동 감독은 예지가 해고 노동자 부부인 미옥(전도연 분)과 호석(설경구 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예지의 태도가 영화 속에서 일방적으로 대상을 이용하고 착취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예지는 어떻게 보면 영화를 만드는 저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인물이다, 제가 영화를 만들 때 대상으로 하는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이야기에 대부분 고통이 담겨 있다. 그래야만 이야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창동 감독은 "그 고통이 그냥 영화를 만들기 위한 서사의 재료로 소비하느냐, 혹은 다른 무엇과 함께 이야기하고 전달하려 하느냐 그 경계를 찾기는 굉장히 어렵다"며 "예지는 자본을 가진 남편과 함께 살며 나름 독립하려 애를 쓰고 제작 지원금을 받기도 하지만 어쨌든 남편의 절대적 자본의 힘에서 자유로울 수 없듯 저도 그러하다 생각한다, 예술하고 창작하는 사람들은 자본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는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도 하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 속에서도 남의 고통을 탐하거나 자기 것으로 착취하거나 하지 않고 진실로 정말로 사랑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라며 "그게 메소드 연기가 아니라 실제 사랑하려고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질문을 우리가 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한편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녀의 남편,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만나 서로 다른 삶과 숨은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버닝'(2018) '밀양'(2007) '오아시스'(2002) '박하사탕'(2000) '초록물고기'(1997) 이창동 감독의 8년만의 신작이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제83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 다음 권위의 은사자상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오는 9월 23일 일부 극장서 개봉한 뒤 11월 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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