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기행’, 웃긴데 아프고 처절한 네 모녀의 힐링 여행 [시네마 프리뷰]
26일 개봉 영화 '경주기행' 리뷰
- 정유진 기자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경주기행'에서 '경주'는 지명이면서 인명(人名)이다. 엄마 옥실(이정은 분)부터 맏딸 장주(공효진 분)와 둘째 영주(박소담 분), 셋째 동주(이연 분)까지 네 모녀는 경주 때문에 경주에 간다. 경주는 8년 전 수학여행을 갔다가 한 백상현(변요한 분)에게 죽임을 당한 이 가족의 막내딸 이름이다.
지난 13일 오후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경주기행'(감독 김미조)은 현실감 가득한 모녀의 관계 묘사와 복수를 다룬 범죄물이라는 장르의 조합이 블랙코미디적인 재미를 주는 작품이었다. 상영 시간 내내 깔려 있는 애잔한 감성이 보는 이들의 감정을 자극하며 드라마로서의 매력도 더했다.
영화는 가족 여행치고는 어쩐지 수상한 네 모녀의 분위기를 따라가며 시작한다. 뒷좌석에 앉은 엄마 옥실은 굳은 얼굴로 앉아있고, 장주는 긴장한 표정으로 운전을, 영주는 알리바이를 만든다며 가족들의 사진을 찍어댄다. 셋째 동주만이 천하태평한 모습으로 잠을 잔다. 모녀가 경주에 가는 이유는 경주를 죽인 범인 백상현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다.
피해자 유가족 모임에서 만난 옥실의 친구(남권아 분)와 그의 아들들이 백상현을 납치해 넘기고, 옥실과 딸들은 다인승 승합차 트렁크에 꽁꽁 싼 백상현을 싣고 경주로 내려간다. 하지만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낡은 차는 시도 때도 없이 덜컹거리고, 잘못 고른 마취제 탓에 백상현은 금방 정신을 차려 탈출을 시도하기까지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모녀만 여행을 간 것을 못내 섭섭해하던 장주의 남편(김영성 분)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장주의 마음을 분주하게 만든다.
'경주기행'을 보는 큰 재미 중 하나는 세 딸과 엄마에 대한 실감 나는 관계 묘사에서 나온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 함께 가족을 돌봐온 탓에, 서로에게 깊이 동화돼 있는 엄마와 큰딸 장주의 관계는 'K장녀 콤플렉스'를 그대로 반영했다. 독립적이고 냉정한 둘째 영주는 말하지 않지만 섭섭함을 누른 채 자신의 삶에 집중한다. 셋째 동주는 먼저 떠난 동생 경주에 대해 죄책감과 질투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도 때도 없이 사고를 저지른다. 벌레 한 마리는 못 잡아도, 서로의 머리채를 그 무엇보다 쉽게 잡을 수 있는 자매의 관계성은 비슷한 가족 관계를 경험한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줄 만하다.
배우들의 앙상블이 탁월한 영화다. 사건의 중심을 이끄는 엄마 옥실을 연기한 이정은은 딸과 남편을 연이어 잃은 뒤 PTSD를 겪는 여성의 지옥 같은 내면을 섬세하게 연기했다. 영화가 그리는 폭발하는 듯한 엔딩은 다소 파격적인데, 인물의 영혼을 애달프고도 처절하게 표현한 이정은의 연기력이 설득력을 더했다. 세 딸을 연기한 공효진과 박소담, 이연 역시 각자 자신의 캐릭터를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영화 속에는 세 딸이 각각 한 번씩 엄마와 감정을 터뜨리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믿고 보는 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 향연이 특별하다.
변요한은 범죄 장르물 속 전형적인 악인을 연기한다. 비닐봉지로 얼굴을 싸고 있는 까닭에 그의 정체는 영화의 중반부에 가서야 드러나는데, 그런데도 영화 내내 존재감이 돋보인다. 살인자로서 얼굴을 드러낸 순간에는 모두가 아는 배우 '변요한'이 이 역할을 맡았다는 점 때문에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추격자' 하정우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의 잔혹하면서도 동물적인 성품이 극적으로 표현돼 이 같은 느낌을 상쇄한다.
영화는 중요한 순간마다 가족의 과거를 보여주는 플래시백을 사용했다. 초반부 가족의 가장 행복했던 때를 보여주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 애잔한 감정은, 이후 영화 전체를 지배하며 먹먹함을 만든다. 사적 복수에 대한 도덕적인 가치 판단보다는,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 수 없는 가해자 중심적 양형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피해자 가족의 고통에 방점을 찍은 작품이다. 상영 시간은 111분으로 오는 26일 개봉한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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