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간극서 드러난 진실…홍상수 '그녀가 돌아온 날' [시네마 프리뷰]
6일 개봉작 '그녀가 돌아온 날' 리뷰
- 장아름 기자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작품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배정수(송선미 분)는 이혼 후 12년 만에 독립영화로 복귀한다. 그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기자들과 세 차례의 인터뷰를 이어간다. 질문과 답이 반복되는 사이, 미묘한 균열이 조금씩 감지된다. 영화와 자신을 칭찬하는 말에는 반색하지만, 사적인 영역을 건드리는 '이혼' 질문에는 단호히 선을 긋는다.
인터뷰가 끝난 뒤 연기 수업으로 향하고, 선생(조윤희 분)의 지도에 따라 낮에 했던 인터뷰를 다시 연기해 본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답변을 재연해야 하는 순간, 머뭇거리는 자신을 마주한다. 그렇게 영화는 '인터뷰'라는 형식을 빌려 한 인물의 말과 진심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오는 6일 개봉하는 '그녀가 돌아온 날'(감독 홍상수)은 오랜 공백 끝에 다시 배우로 카메라 앞에 선 한 중년 여배우의 하루를 따라간다. 이 작품은 홍상수 영화의 특유의 구조적 문법과 형식을 다시 한번 정교하게 변주한 결과물에 가깝다. 고정된 앵글, 사건보다 대화로 이어지는 전개, 일상의 언어로 흘러가는 즉흥적인 문장들, 그리고 맥주와 담배 같은 반복적 오브제까지, 익숙한 요소들이 이번에도 전면에 배치된다.
다만 그 익숙함 속에서 '인터뷰'라는 구조가 이들의 대화를 해부한다. 전형적인 질문이 반복되고, 유사한 기계적 답변이 되풀이되는 전개는 조소를 머금게 한다. 세 번에 걸쳐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극의 흐름은 어떤 '공식'과 '패턴'으로 굳어져 가는 듯하지만, 그 안에서 인물의 태도와 감정은 조금씩 흔들리고 변화된다. 그 구조를 통해 드러난 사소한 차이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진실'과 관련한 질문으로 직결된다.
특히 세 번의 인터뷰와 이후 연기 수업에서의 '재연'은 이 영화의 핵심적인 시퀀스다. 배정수는 인터뷰에서 주고받았던 질문과 답을 대사로 옮겨, 이를 상대 배우(박미소 분)와 함께 재연한다. 그 과정에서 흐릿해진 기억과 재연의 간극이 오히려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기억을 더듬어 재연한 답변은 어딘가 낯선 타인의 대사처럼 느껴지지만 상대 연기자와 대화 틈을 비집고 나온 침묵과 혼란, 망설임, 공허한 감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인물의 체온이 느껴진다. 잘 정리된, 준비된 답변이 아닌, 어긋나고 흔들리는 순간에 비로소 인물의 진실이 포착된다.
영화 속 배정수가 반복해서 말하는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답변 역시 가장 공허하게 들린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 질문을 받았던 인터뷰에서는 일종의 모범 답안처럼 소비되지만, 연기 수업에서는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된다. 배정수는 자신이 어떤 대사를 썼는지 기억하지 못하며 계속해서 대본을 들춰본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인터뷰라는 형식을 둘러싼 권력관계다. 질문을 던지는 기자와 답하는 배우라는 단순한 구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균형이 계속 뒤집힌다. 배정수는 질문을 되묻고, 인터뷰 이후에는 이혼과 관련한 내용은 쓰지 말아 달라며 기사 내용까지 통제하려 한다. 기자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내 의견을 존중해 줬으면 좋겠다"며 초고까지 이메일로 보내달라는 등 단호하게 의사를 전달한다. 여기에는 관행으로 여겨온 인터뷰라는 행위 자체에 내재된 불완전성과 미묘한 권력관계가 담겨 있다.
영화 속 송선미의 열연도 빛난다. 송선미는 인물을 과장 없이 밀도 있게 끌어간다. 인터뷰 초반의 여유와 은근한 자부심, 질문이 깊어질수록 드러나는 방어와 불편함, 그리고 연기 수업에서의 망설임까지 감정의 결을 세밀하게 나눠 가져간다. 대사 사이의 짧은 침묵과 시선 처리, 말끝의 미묘한 흔들림으로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고정 앵글 속에서 긴 대사와 호흡을 안정적으로 소화해 내며 인물의 감정 변화를 끊김 없이 축적해 가는 몰입도를 보여준다. 인물을 연기한다기보다 그 상황에 그대로 놓여 있는 듯한 자연스러움은 말보다 어긋나는 순간에 진실이 드러난다는 영화의 결을 가장 정확하게 구현해 낸다.
'그녀가 돌아온 날'은 5개 챕터를 통해 인터뷰와 재연이 마주 보는 흥미로운 대응 구조를 보여준다. 3번의 유사한 인터뷰, 그리고 마지막 재연까지 구조적으로 배치된 홍상수 감독의 형식미는 또 한 번 인간의 탐구와 진실에 대한 자각에 도달한다. 제76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초청이라는 이력처럼, 이 영화는 화려한 한 중년 배우의 일상의 단면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홍상수식 미학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는 작품이다. 상영 시간 85분.
aluemch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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