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불행의 등가교환? 허술한 오컬트 세계관 '구원자' [시네마 프리뷰]

11월 5일 개봉 영화 '구원자' 리뷰

'구원자' 스틸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의사 영범(김병철 분)은 아내 선희(송지효 분), 아들 종훈(진유찬 분)과 함께 '축복의 땅'이라 불리는 오복리로 이사 온다. 어느 밤 영범은 그의 차 앞에 뛰어든 의문의 노인(김학철 분)을 집으로 데려온 뒤 기적 같은 일을 마주한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걷지 못하던 아들이 갑자기 다시 걷게 된 것이다. 오복리에 사는 춘서(김히어라 분)는 갑자기 걷지 못하게 된 자신의 아들 민재(오한결 분)에게도 같은 기적이 찾아오길 간절히 소망하지만, 이내 자신에게 닥친 불행의 실체가 영범 가족과 얽혀 있음을 깨닫는다.

오는 11월 5일 개봉하는 '구원자'(감독 신준)는 기적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을 미스터리 오컬트 장르로 풀어낸 작품이다. 신준 감독은 언론시사회에서 구마·퇴마 등으로 관객에게 익숙했던 오컬트 장르가 아닌, 기적을 욕망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담는 영화를 선보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즉 이 영화의 핵심은 인간의 욕망과 '내가 기적을 얻을 수만 있다면 누군가는 대신 불행해도 괜찮다'는 은밀한 합리화가 불러일으키는 공포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관객에게 기적을 타인의 불행과 맞바꾸겠냐는 불편한 질문을 던지려는 의도처럼 보인다.

'구원자' 스틸
'구원자' 스틸

그러나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군데군데 비어있는 설정이다. 영화의 갈등은 '의문의 노인'에게서 출발하지만, 그는 끝까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분명 실체가 있지만 초자연적인 존재인지, 신인지 혹은 악마인지조차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다. 왜 이 존재를 통해 기적이 이뤄지고, 왜 타인의 불행이 대가가 되는지에 대한 세계관의 논리가 비어 있는 탓에, '등가교환'이라는 콘셉트도 기계적으로 배치된 장치처럼 비친다.

이 빈칸은 결국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지탱할 서사의 뼈대를 약하게 만든다. 후반부에서 영범이 노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방법에서도 의문을 갖게 된다. 그 방법을 어떻게 터득한 것일지, 그 선택이 어떤 감정과 갈등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이후 영범이 왜 그렇게 된 것일지 결말에 이르는 감정적·논리적 과정이 거의 제시되지 않는다. 결국 관객은 인물의 선택을 공감하거나 판단할 여지 없이, 설명되지 않은 결말로 떠밀린다.

장르적 완성도도 아쉽다. 오컬트라는 외형을 입었지만, 장르적 공포를 구현하는 장치가 없다. 퇴마·구마 등과 같은 오컬트의 장르적 체험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단순한 가족 드라마에 가깝고, 반대로 인간의 욕망을 깊게 파고드는 드라마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설득력과 개연성이 부족하다. 장르의 경계만 빌려온 채, 어느 쪽에서도 충분한 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셈이다.

구원자 스틸

다만 배우들의 연기는 돋보인다. 김병철은 가족의 기적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양심을 안정적으로 끌고 간다. 송지효는 '런닝맨' 이미지에서 벗어나 시력을 잃은 엄마의 불안과 욕망을 서늘하게 드러내며, 기적을 갈망하다 점차 변해가는 과정을 새로운 얼굴로 보여준다. 김히어라는 희망과 분노 사이에서 파열되는 감정을 유의미하게 남긴다. 영화가 가장 잘 구축한 건 장르적 공포가 아니라, 기적을 바라는 인간의 얼굴이다.

'구원자'는 선한 기적이 아니라 '타인의 불행' 위에서 피어나는 기적을 다룬다. 하지만 세계관의 설명, 인물의 감정선, 장르적 장치 등 작품의 핵심을 지탱해야 할 토대가 허술하다. 관객이 느끼는 불편함은 공포가 아니라, 영화가 비워둔 빈칸들이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날카롭지만, 정작 그 질문을 영화가 스스로 끝까지 감당하지 못한다. 상영 시간 103분.

aluemcha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