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주인', 윤가은의 귀환…밝고 당차게 그림자를 품고 사는 법 [시네마 프리뷰]
오는 22일 개봉 영화 '세계의 주인' 리뷰
- 정유진 기자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는 교실 안에서 서툴게 키스를 나누는 10대 커플의 모습을 그리며 시작한다. 남자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여학생은 주인공 주인(신수빈 분)이다. 반장에 모범생인 주인은 교실 안에 있는 누구와도 잘 지내는 '인싸'이며 엄마 태선(장혜진 분)과는 어떤 이야기든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딸이다.
엄마 태선, 남동생 해인과 사는 주인의 일상은 평범하다. 담임 선생님에게 진로 상담을 받고, 하굣길은 친구들과 장난을 치고 수다를 떠느라 즐겁다. 주말에는 외할머니를 따라 절에 기도를 드리러 가기도 하고, 남자 친구와 좋은 시간을 보내거나 봉사 활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명한 성폭행범의 출소 소식이 전해진다. 그는 출소 뒤 주인의 동네에 위치한 집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아버지, 여동생과 함께 사는 주인과 같은 반 친구 수호(김정식 분)는 어린 동생에 대한 걱정 때문에 전교생을 대상으로 서명 운동을 시작한다. 모두가 흔쾌히 사인을 해주는데, 주인만은 서명문 속 어떤 표현들을 문제 삼아 사인을 해줄 수 없다며 거부한다. 그런 주인과 수호 사이에 다툼이 벌어진다. 그리고 화가 난 주인이 뱉어버린 말에 분위기는 싸해지고, 그 뒤로 주인에게 출처를 알 수 없는 쪽지가 날아든다.
'세계의 주인'은 '우리들'(2016) '우리집'(2019)을 연출한 윤가은 감독이 6년 만에 내놓는 장편 영화 신작이다. 전작들에서 어린이들의 '리얼'한 세계를 그려내며 호평 받았던 윤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한 10대 소녀의 평범하지만,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일상을 따라가며 보는 이들의 마음을 정화시킨다.
장르물이 아님에도 영화는 서스펜스가 넘친다. 개성 있으면서도 현실감 넘치는 캐릭터들을 잘 활용한 덕이다. 밝고 천진난만하지만,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주인공 주인부터 따뜻한 사람이지만 어쩐 일인지 술에 너무 의존하는 듯한 엄마 태선, 동생에 대한 걱정이 지나친 듯 보이는 수호, 누나에게 오는 편지들을 어디엔가 숨겨 놓는 속 깊은 남동생 해인까지. 영화 속 모든 캐릭터에게서 모종의 불안한 기운이 풍기고, 이는 관객들의 시선을 마지막까지 이야기 안으로 잡아 이끄는 역할을 한다. 이런 불안 요소들은 윤가은 감독의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올 수 있었던 실제적인 묘사이며 종국에 가서 중심 서사와 잘 연결돼 이야기의 완결성을 높이기도 한다.
세 차례의 오디션을 거쳐 뽑았다는 신예 신수빈은 내내 반짝거린다. 어딘가에서 살고 있는 '비글미' 넘치는 십 대 소녀 주인 그 자체다. 안쓰러운 엄마 태선을 연기한 장혜진 역시 이전에 보여준 것과는 또 다른 엄마의 모습을 선보인다. 또 생각지 못한 장면에서 등장하는 고민시와 김석훈 등 배우들의 모습이 반갑다.
영화는 너무 쉽게 타자화해 버리는 우리의 '시선'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어떤 사건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 피해자라고 해서, 손쉽게 '불쌍한 사람' '불행한 인생'이라고 여기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모든 인생에는 빛과 그림자가 존재한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커 보인다고 해서 내게 그림자가 없는 것은 아니기에, 연민할 필요는 없다. 다만 공감할 수 있기에 존중하고 응원할 수 있다. 이 같은 관점은 스스로를 바라볼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주인이 자기만의 '세계의 주인'이듯, 누구나 타자화를 거부하고 '세계의 주인'으로 자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보고 나면 쾌청하게 맑은, 가을 하늘 같은 기분을 품게 하는 영화다. 6년 만에 돌아온 윤가은 감독의 성숙한 시선이 반갑다. 이 영화는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인 플랫폼(Platform) 부문에 한국 영화로는 최초이자 유일한 작품으로 초청된 바 있다. 상영 시간 119분. 오는 22일 개봉.
eujenej@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