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필·윤가은 감독이 그러모은 극장의 반짝이는 순간들 [시네마 프리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영화 '극장의 시간들' 리뷰
- 정유진 기자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종필 감독과 윤가은 감독은 지금,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다. 한 사람은 상업 영화의 영역에서, 또 다른 사람은 독립·예술 영화의 영역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해 가고 있다. 접점이 별로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을 올해 개관 25주년을 맞은 국내 대표 예술 영화관 씨네큐브가 한 편의 영화로 모아 묶었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에 초청된 앤솔로지 영화 '극장의 시간들'이다.
'극장의 시간들'은 두 편의 단편 영화와 앞뒤를 장식한 짧은 프롤로그, 에필로그로 이뤄졌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연결돼 있으며, 총 세 편의 다른 이야기가 예술 영화극장에 대한 헌사로 펼쳐지며 애틋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이종필 감독의 '침팬지'는 2000년의 광화문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20대의 고도(원슈타인 분)는 우연히 헌책방에서 책을 읽다가 미스터리한 침팬지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1973년 폴란드에서 세 마리의 침팬지를 수입할 때 일이다.'로 시작한 이야기는 배를 타고 오는 도중 한 마리는 죽고 한 마리는 사라져 한 마리의 침팬지만 남아있게 됐고, 그 한 마리의 침팬지가 창경원 동물원에 수용이 됐다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고도는 친구인 모모(이수경 분), 제제(홍사빈 분)와 함께 침팬지 빠져 동물원으로 침팬지를 찾아가기도 하는 등 특별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24년이 지나 2025년 현재, 영화감독이 된 40대의 고도(김대명 분)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 GV에 참석해 영화를 만들게 된 배경을 이야기하며 고도는 "이야기가 아니라 함께 한 시간이 남았다"며, 이제는 옆에 없지만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면으로 남아있는 친구들과의 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는 우연히 20년 전과 비슷한 헌책방에 들어가, 20년 전 봤던 그 책을 또 발견하게 되고 '침팬지' 부분을 읽는다. 그리고 기억과는 다른 내용을 확인하게 된다.
윤가은 감독의 '자연스럽게'는 한 무리의 초등학생 여자아이들의 시끌벅적한 동네 나들이를 그리며 이야기를 연다. 신나게 동네를 누비던 아이들은 사실 영화를 촬영하는 중이었고, 감독(고아성 분)은 아이들을 달래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고, 잔소리를 하기도 하며 원하는 장면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재잘대기도 하고, 촬영장을 뒤집어놓을 만큼 놀라운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러다가 스태프와 출연진 모두가 어울려 신나는 얼음땡을 한바탕 하기도 한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면 객석에 앉은 아이들과 감독은 극장에 앉아 자신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며 밝게 웃는다. 그리고 또 한 번 프레임은 깨지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배우와 감독이 함께 만들어낸 찰나의 반짝이는 순간을 엿보게 된다.
'극장의 시간들'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화와 극장을 향유하는 이들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그러모아 보여주는 영화다. 여타 플랫폼과 다른 극장의 가치는 시간과 공간을 타인과 공유하는 데서 온다. '침팬지'는 친구들과 극장에서 보낸 즐거웠던 시간에 대한 향수로 이를 표현했고, '자연스럽게'는 한바탕 놀이를 하듯 영화를 찍고, 보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이를 표현했다. 영사실에서 영사 기술을 전수하고 전수받는 세대가 다른 두 영사 기사의 모습을 담아낸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극장의 이처럼 고유한 가치가 또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담아냈다.
두 편의 단편 영화 모두 각 감독의 색깔과 유머 감각이 잘 반영돼 있다. 예술 영화관의 25주년을 기념한다는 목적과 주제에 맞으면서도 개성과 신선함을 잘 살려낸 점이 흥미롭다. '침팬지'에서는 현실 영화감독의 고충이 드러나는 장면에서 폭소하고, '자연스럽게'에서는 윤가은 감독의 촬영 현장을 엿본 듯 어린이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아이다움에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러닝 타임 62분. 내년 상반기 극장 개봉 예정이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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