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이혜영 "여성 서사 많아졌다? 좀 자존심 상해요"(종합)
[N인터뷰]
- 고승아 기자
(서울=뉴스1) 고승아 기자 = 배우 이혜영(62)이 필모그래피에 강렬한 변화를 꾀했다. 60대 여성 킬러로 분한 이혜영은 역할 그 자체가 됐다. 최근 홍상수 감독 영화에 연이어 출연해 온 그가 장르물에 도전한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이혜영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영화 '파과'(감독 민규동)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파과'는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는 조직에서 40여년 간 활동한 레전드 킬러 '조각'(이혜영 분)과 평생 그를 쫓은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김성철 분)의 강렬한 대결을 그린 액션 드라마 영화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연출은 '내 아내의 모든 것' '허스토리' 등을 선보인 민규동 감독이 맡았다.
이혜영이 맡은 조각은 레전드 킬러로, 40여년간 대모님이라 불리며 전설로 추앙받지만 시간이 흘러 점차 한물간 취급을 받는 인물이다. 동명 원작 소설이 인기가 있었던 만큼, 조각의 가상 캐스팅으로 이혜영이 여러 차례 언급됐다. 이에 "전혀, 저하고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놀라워했다.
이혜영은 조각의 수수께끼 같은 힘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고 밝히며 "도전해 본다고 한 건데 하는 내내 두려웠다"고 했다. 이어 "사실 조각은 할머니인데, 그가 갖고 있는 힘이 매력이었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킬러는 비현설적이라 그림이 그려지지 않더라, 제가 상상력이 별로 없었나보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민규동 감독이 영화를 한다고 했으니까, 민 감독의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같은 판타지가 있으려나 생각했지 흔한 액션 영화 무드는 떠오르지 않았다"며 "근데 액션 영화를 한다고 하니 겁이 나더라, 감독이 '액션 못하겠으면 하지 말라'고 했다가, 스턴트도 있고 여러 방법으로 찍을 방법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찍으면서 더 요구하긴 했다"며 웃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이혜영은 드라마 '우리, 집'(2024) 촬영을 마치고 열흘도 안 되어서 '파과' 촬영에 들어갔다. 첫 촬영에 갈비뼈가 나갔고, 크고 작은 부상이 잦았다. 가스총에 파편이 튀어 손에 불이 붙기도 했다.
그는 "최근엔 홍상수 감독과 해서 민 감독의 프로세스가 낯설었다"며 "민 감독님의 콘티가 강철처럼 완벽했고 굉장히 타이트하게 느껴졌다, 정해진 프레임 안에서 기술적으로 연기하며 감정을 절제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완성된 영화를 보고는 감독님이 생각이 있으셨구나, 맨날 불평불만이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60대 여성이 끌어 나간다는 점에서 '파과'는 더욱 특별했다. 이혜영은 "그런 인물을 만든 원작자 구병모 작가에게 감사하고, 그런 인물에 관심 가진 민규동 감독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저는 연기자로서 캐릭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보통 '여성 서사'라고 얘기하는데,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며 "물론 제가 배우를 처음 하던 시절엔 여자가 남자의 상대 역할에 머물렀다, 그러니 주로 멜로물이었고, 멜로에 적합하지 않은 여배우는 밀려났다. 나도 그래서 약간 밀려나 있던 건 맞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은 좀 더 독립적이고 상대적 여성의 존재가 아니어도 할 만한 롤들이 많아졌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런데 많아지기는 했는데 그걸 기뻐해야 하나, 좀 자존심 상한다"라며 "여전히 멜로물을 보고 싶어 하고, 그래서 난 상대역이 없는 배우 중에 하나다, 내가 살아남은 이유를 보자면, 그런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의 이미지였기 때문이 아닐지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자라는 건 생각 안 한다, 인간이다"라며 "여자라고 이름 지어지면 선입견이 생긴다, 그래서 '여성 서사'라는 생각은 안 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1981년 데뷔한 이혜영은 44년 넘게 배우 생활을 하고 있다. 영화 속 '조각'과도 닮았다. '파과'가 쓸모를 계속해서 보여주는 조각의 이야기인 만큼, 쓸모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쓸모라는 단어보다는 '쓸모없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 '쓸모 있다'보다 더 나한테 강하게 오더라. 이번에 쓸모 있는 배우로 살아남으려면 민 감독님 프로세스에 익숙해져야지 생각했다. 사실 프레임 안에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건 쉽지 않았고, 계속해서 쓸모 없음에 대해 생각하며 작업했다. 하지만 이 상실을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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