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인터뷰] "그 눈빛 때문에"…'항거' 감독, 유관순의 마지막 1년 담기까지

롯데엔터테인먼트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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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영화 '강적'과 '10억'을 연출했던 조민호 감독이 지난 27일 개봉한 '항거: 유관순 이야기'(이하 항거)로 돌아왔다. '항거'는 1919년 3월1일 서울 종로에서 시작된 만세운동 이후, 고향 충청남도 병천에서 비폭력 시위였던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이 서대문 감옥에 갇힌 후 1년여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 '괴물'과 '설국열차' '우아한 거짓말' '오피스' '오빠생각' '더 킹'으로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고아성이 유관순을 연기했다.

사학을 전공한 조민호 감독의 역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항거' 연출의 뿌리가 됐다. 조 감독은 "그 시대 민중들이 갖고 있던 저항 정신, 그리고 그들이 갖고 있던 새로운 세상을 향한 비전이 늘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연출한 '항거'에서 마주하는 것은 스크린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난 유관순 열사의 강인한 정신이다. 영화는 유관순 열사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1920년 3월1일 3.1운동 1주년 기념 만세운동을 주도하기까지, 곳곳에서 진한 울림을 주며 열일곱 소녀의 마지막 1년간의 삶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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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의 수형기록표(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뉴스1

◇ 서대문 형무소에서 본 사진…눈빛에서 시작된 '항거'

'항거'는 지금으로부터 7년여 전, 조민호 감독이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찾았던 날 갖게 된 궁금증에서부터 시작됐다. 조 감독은 유관순 열사의 사진 속 눈빛을 보게 됐고, 그 눈빛이 '항거'를 만들게 했던 원동력이 됐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건 눈빛 때문이었다. 외신들이 찍은 당시 사진을 보면 지금과 다른 조선인들의 눈빛을 보게 된다. 영화에서처럼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나태하고 이기적이고, 그래서 분열되는 거라고 했다. 그런 왜곡된 사실을 끊임없이 재생산했지만 사진에선 당당하고 솔직했던 눈빛을 가진 이들, 놀라울 만큼 세상에 낙천적이었던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다. 그때도 조선인들은 어떻게 그런 눈빛을 가질 수 있는지, 그게 궁금했다."

'항거'는 유관순 열사의 일대기가 아닌 아우내장터 만세운동 이후 서대문 형무소에서의 1년간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일대기를 담는 것보다 1년간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점에서 밀도 높은 서사가 요구된다. 조 감독은 "감독으로서 이걸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겁을 먹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래서 조 감독은 신화화되지 않은, 인간 유관순을 담기 위해 유관순 열사의 실제 절친한 벗인 남동순 열사의 기록과 수형 기록을 바탕으로 실증적인 모습을 담은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 주변 인물들의 증언과 수형 기록이 있었기에 감옥에 수감되고 이후 3.1절 1주년 만세운동을 일으키는 과정까지 허용 가능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가장 중시했던 것은 인물에 대한 접근 방법이었다. 조 감독은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있어 보통 우리는 영웅이나 열사, 그리고 왕들 중심으로 접근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인물에 대해 칭송하게 되고 그 인물을 과장할 수 있는 여지가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업적에 접근할 땐 '이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게 화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영웅의 피를 타고 태어나서 업적을 달성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최대한 유관순 열사를 신화화하지 않고 기록을 바탕으로 인간적인 모습을 스크린에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항거'를 통해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1년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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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호실 여옥사, 빽빽히 꽂힌 연필꽂이처럼"

'항거'에서 유관순은 시간의 흐름을 도저히 알 수 없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3.1 만세운동 1주년을 기억해내고 다시 한 번 만세운동을 주도한다. 8호실에서 다시 시작된 만세운동은 서대문 형무소에 울려퍼지고, 서울 곳곳으로 번져갔다. 조 감독이 처음에 생각했던 "어떻게 저런 눈빛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은 "어떻게 죽음까지 무릅쓰고 만세를 부르게 됐을까"라는 궁금증으로 치환됐다. 이후 유관순은 1주년 만세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지만 결코 꺾이지 않는 강인한 정신과 독립을 향한 열망과 당위성을 보여준다. 조 감독은 유관순 열사가 옥중에서도 끊임 없이 만세를 외치고 더욱 단단한 항일 의지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혼자가 아닌, 8호실에서 연대했던 여성들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8호실에는 유관순 외에도 기생 김향화,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 , 다방 종업원 옥이가 있었다. 조 감독은 영화에서 세 명의 인물들을 주로 다룬 이유에 대해 "서대문 형무소 8호실이 복원돼 있는 곳에 가면 25명 여성들의 사진들이 붙어 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 기생 김향화였다. 또 이화학당 출신의 권애라와 다방 종업원 옥이까지 흥미로운 직업군의 여성들이 많았다. 이 여성들을 통해 유관순도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유관순은 이들과 교류하고 공감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폭이 넓어져갔을 거다. 그 안에서 혼자서만 '난 싸워야 한다'는 생각만 갖고 있었다면 결코 만세를 부르지 못했을 거다. 독립선언서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여성들, 임신한 몸으로 만세를 외친 여성 등을 보면서 한 인간으로서 점점 더 성장해갔고 더욱 용기 있게 만세를 부를 수 있었다."

8호실은 세 평 남짓한 공간이다. 그곳에서 25~30명의 여성들이 함께 투옥됐다고 전해진다. 영화 속 등장한 그 좁은 공간에서 여성들은 다리가 붓지 않으려 같은 방향으로 돌고 또 돈다. 몇 명만이 누워 자고 나머지는 서서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확인하면서 당시 끔찍할 만큼 열악했던 여옥사의 고통을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조 감독은 소설 '상록수'를 쓴 심훈의 옥중편지에서 그 공간에 대해 상상하게 됐다고 했다. "그 편지가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대체 그 공간은 어떤 공간이었을까. 여름에 감옥 안에 열기가 가득한데 구더기가 들끓고 악취로 숨을 쉴 수 없고 다리 한 번 펴고 잔 적이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더라. 그런데 남자 옥사보다도 여자 옥사는 갯수가 더 적었고, 당시 만세운동 이후로 갑자기 여성 수인들이 많이 잡혀들어갔다. 연필이 빽빽히 꽂혀있는 것과 같은 지옥이지 않을까 했다."

'항거'에서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다"를 외치는 에피소드다. 일본인 간수가 8호실 여성들에게 아리랑을 부르지 말라고 주의를 주자 이들이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다"라고 외치고, 유관순이 이를 주동했다는 이유로 모진 고문을 당하게 된다. 이는 조 감독이 "그 당시에 통방(通房)이 불가능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해낸 에피소드 중 하나다. "수감자끼리 의사 소통하는 게 불가능했다고 한다. 그랬다가는 처벌이 가해졌기 때문에 찍소리도 못 내고 숨 죽이고 살았다는 부분에서 생각하게 된 장면이다.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한 인간의 교류까지 막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런 감옥에서 만세를 외친 것이 새삼 더 대단하다 느끼게 됐다. 유관순 열사가 장난기도 많고 쾌활한데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했을까 싶었다. 그러다 연못에 갔다가 개구리들이 사람들 발길 소리에 우는 소리를 순간 모두 멈추는 것을 보고 이 장면을 생각하게 됐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 스틸 ⓒ 뉴스1

◇ "고아성, 감히 배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조민호 감독은 8년 전 자신이 연출했던 영화 '10억' 시사회에서 고아성을 처음 봤다. 당시 고아성에 대해 조 감독은 "스무살의 남다른 감수성을 가진 배우라 생각됐다"고 돌이켰다. 이후 '오피스'와 '우아한 거짓말' 등 고아성의 주연작을 모두 보게 됐고 단적인 감정이 아닌 다양한 감정을 쏟아내며 캐릭터를 완성하는 고아성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고아성 배우가 가진 강인하고 당당한 아우라에서 유관순 열사 역할을 잘 해낼 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던 조 감독은 후배 봉준호 감독을 찾아가 물었다. "후배 감독 중에 봉준호 감독에게도 상의를 많이 했었다. 봉준호 감독도 고아성이 '괴물' 이후로 좋은 배우로 성장하고 있다고 하더라. 고아성 배우를 더 믿게 됐고, 제안을 했더니 생각보다 빨리 답을 줬다."

고아성의 연기 열정은 대단했다. 인터뷰에서도 "매 촬영마다 기도하듯 연기했다"던 고아성이었다. 조 감독은 "그 작품에서 유관순으로 살아간다는 건 보통이 아닌데 정말 그 인물로 살려고 노력했다"고 칭찬했다. 고아성은 제작진의 미술 콘셉트 회의 때도 찾아와 자신이 어떤 공간에서 연기하는지 살폈다. 촬영 전부터 제작진과 많은 소통을 통해 연기해 임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던 대목이다. 조 감독은 "'항거'를 고아성 배우와 거의 같이 기획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 정말 많이 의지했다. 고아성 배우에게 우리 겁내지 말고 하자고 했다"면서 "고아성은 어떤 마음으로 유관순으로서 살아가야 할지 느끼려했다. 기획을 같이 했다고 하는 게 농담이 아닐 정도로 정말 깊이 몰입해서 연기를 준비했고, 작품에 임해줬다"며 진심으로 고마워 했다.

고아성은 '항거' 언론시사회부터 인터뷰까지 내내 눈물을 보였다. 조 감독은 그런 고아성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한 사람이었다. 그는 "캐릭터 하나 소화하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닌데, 죽음으로 직접 걸어들어간 유관순 열사를 소화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연기가 아니"라며 "인간으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너머의 것을 이해하고 표현해야 했다. '왜 그렇게 까지?'라는 말을 듣는 그 선택을 보여주기 위해 이해가 안 되는 감정을 표현한다는 건 쉽지 않다. 특히나 유관순 열사는 압제와 지배를 넘어서서 인간의 위대한 정신을 보여준 인물로 배우가 감당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던 연기"라고 말했다. 그리고 조 감독은 "배우는 많은 이들을 위로하는 사람인데 그런 점에서 고아성은 이번 영화로 많은 위로를 주지 않았나 한다. 배우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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