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진웅 "사형장 세트서 겁먹어…'청년 김구'에 부끄러웠죠"
- 정유진 기자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조진웅보다 더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백범 김구의 청년 시절을 영화화한 '대장 김창수'를 보고 드는 생각이다. 물론 20대 초반이었던 실제 김창수와 이제 중년에 접어들고 있는 조진웅을 두고 100%의 싱크로율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 속 조진웅은 분명 불의 앞에서 피가 끓는 청년 김창수의 결기와 신념에 찬 우직한 성품을 훌륭하게 표현하며 관객의 집중을 끌어낸다. 여기엔 김구를 꼭 닮은 풍채도 한몫했다.
처음 조진웅이 '대장 김창수' 주인공 역할을 고사했다는 사실은 이미 언론시사회 등을 통해 밝혀진 내용이다. 조진웅은 그럼에도 이 영화를 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내 차례인 것 같았다"고 답했다.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 역을 맡은 최민식 선배의 모습을 보며 실존 인물, 그것도 역사 속 위인을 연기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직접 목격했다. 하지만 여러 번 자신의 앞으로 돌아오는 시나리오를 보며 자연스럽게 "내 차례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여러가지를 끼워붙일 수 있어요. 스스로 합리화하는 거죠.(웃음) 김구 선생님이 1876년생인데, 어떻게 하다보니 100년 뒤 태어난 내가 1976년생이에요. 당시 시나리오 완고를 받아 볼 때, 이것도 합리화 중에 하나지만, 제가 백범로에 살더라고요. 그렇게 상황이 되더라고요. 이사갈 때는 백범로가 그 백범로인 줄 몰랐죠. 근처에 효창공원이 있어요. 효창공원에 김구 선생님 묘지가 있고요."
결국 어려운 역할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사실은 역사책에 등장하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던 인물. 하지만 영화를 하게 되면서 그 인물은 조진웅에게 조금 특별한 사람이 됐다. 어린 시절부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할아버지 산소에 가고는 했는데, 이제는 가까운 김구의 묘지를 찾아 걸으며 산책의 시간을 가진다고. 조진웅은 "오늘도 '선생님, 이제 홍보 시작하니까 잘 되게 해주세요'하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고 말했다.
'대장 김창수'는 그에게 독립 운동에 대해서도 새로운 생각을 심어준 작품이다. '암살'을 찍을 때만 해도 독립운동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는데, 평범한 청년이 리더로 거듭나는 '대장 김창수' 속 주인공으로 살다 보니, "당연히 해야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단다.
"이 작업을 통해 분명 변한 게 있어요. 제가 '암살'이라는 작업을 했죠. 똑같은 일제강점기 소재 영화인데, 그때 기자들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조진웅이라는 사람이 당시 태어난다면 (영화 속 인물처럼)레지스탕스를 할 수 있겠어요?'라고 물었죠. 그때 저는 절대 안 한다고 했어요. 그걸 제가 왜 하느냐고요. 영화에서도 제 대사 중에 그런 비슷한 내용의 대사가 있다. '독립운동이라는 게 3년은 열정 갖고 하지.' 그때는 목숨 걸고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번 작업을 하면서 저에게 솔직히 물었어요. 그런데 스스로 '당연히 해야한다'고 대답을 하더라고요. 누가 하지 않으면 그것도 내 차례겠거니 하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확실히 변했어요."
또 한 번 영화를 찍으며 조진웅에게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있었다. 사형장 세트에서의 촬영이었다.
"(사형장 세트)그 공간에 한번도 들어간 적이 없었어요. 안 들어가게 되더라고요. 이 모든 장치는 픽션이죠. 안전한 장치가 돼 있고, 모든 스태프가 대한민국 사람이고요. 그런데 작업을 하러 들어가는 그 순간 눈물이 나고 울분에 차더라고요. 제가 그런 감정을 느낄 때 상당히 창피했어요. 왜 창피하느냐면, 그 말을 했던 당시 김창수는 20대 초반이었죠. 그런데 나는 곱절이나 나이가 많은데 이따위로 겁을 처먹고 있으니 얼마나 창피한지 부끄러웠어요. 왜 이렇게 부끄럽지? 나도 부산에서 좀 한다면 했고, 나도 한두 사람 만나도 쫄지 않을만큼 남자다운데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머리가 조아려지더라. 내가 막말로 부산놈, '쪽팔려서'라도 내가 이건 한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연기했고, 그게 변한 계기가 됐어요."
20대 청년 김창수는 그렇게 100년 뒤에 태어난 40대 배우 조진웅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조진웅은 기억에 남는 대사로 "할 수 있어 하는 게 아니라 해야해서 한다"를 꼽았다.
"해야 해서 하는 거는 당연한 거예요. 그게 당연하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기본이라는 거죠. 대단한 거라고 생각하는 게 잘못이에요. 아버지로 자식을 키우는 건, 당연해요. 기본이 안 지켜지니까 어렵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기본 지키는 게 힘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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