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오성 "아내와의 결혼, 이미 성공한 인생 아닐까"(인터뷰)
- 장아름 기자
(서울=뉴스1스포츠) 장아름 기자 = 배우 유오성(50)은 인터뷰 직전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매우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미뤄 보아 아들일 것이라 지레 짐작했다. 하지만 그는 전화를 끊고는 지난해 출연했던 KBS2 드라마 '조선총잡이'에서 딸로 등장했던 배우 전혜빈의 전화였다고 귀띔했다. "얘가 아직도 나보고 자꾸 아빠라네. 아빠는 지금 뭐하냐고 자꾸 물어봐"라고 전혜빈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을 공개하며 웃어 보였다. 인간적인 모습, 예상 밖의 답으로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유오성은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내 심장을 쏴라'(감독 문제용)에서 따스한 인간미를 감추고 있는 수리정신병원 간호사 최기훈 역을 맡았다. 최기훈은 병원의 억압적인 시스템 속에서도 과거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이수명(여진구 분)과 세상 밖으로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는 류승민(이민기 분)을 이해하는 몇몇 인물들 중 하나이다. 유오성은 "확신이 있어서 정말 두근두근해요. 일단 작품을 정말 잘 뽑아냈으니까"라며 영화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원작 인물을 연기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요? 전혀 안 했어요. 제가 좀 게으른 배우라서요. (웃음) 정답은 모두 시나리오 안에 있어요. 자기가 분석해서 연기하는 것도 있지만 남이 구축한 캐릭터에 반응해서 하는 연기도 있어요. 이번에는 그런 연기를 펼친 셈이죠. 원작이 요구했던 싱크로율이라는 것도 그래서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서포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죠. 연기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하는 거고 현장에서 같이 분위기도 띄우고 서로를 북돋아 줘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최기훈은 선에도, 악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이다. 성향이나 특색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서도 캐릭터를 조형해낼 수 있었던 비결은 최기훈에 대한 연민에 있었다. 최기훈의 숨겨진 열망은 류승민이 싸이코드라마 치료 중 트위스트를 주도하는 장면에서 잘 나타난다. 류승민이 이끄는 리듬에 맞춰 정신병동 식구들 모두가 한 마음이 돼 춤을 추고, 웃음기라고 찾아볼 수 없었던 최기훈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전 원작을 읽진 않았지만 시나리오를 통해 영화를 보려했지 책을 통해서 영화를 보려고 하진 않았어요. 저는 최기훈이 선명하지 않은, 모호한 캐릭터라고 봤어요. 비전까지는 제시하지 않을 지라도 조력자이고 깨달음을 주는 역할이기도 하지만, 작품 속에서 보면 우유부단함의 전형적인 인물이예요. 병원에서의 불합리한 처사에 동의하지 않는 입장이지만 굳이 개선하려는 의지도 없죠. 최기훈도 어떻게 보면 자신을 억누르는 피곤한 인생을 사는 거죠. 정신 병동에서."
유오성은 최기훈이라는 지주적인 역할을 카메라 밖으로도 확장시키기도 했다. 선배로서 후배들을 이끌어줘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여진구와 이민기를 제외한 출연진에게도 "여기선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했다"고 한다. 작품에서 각자 유일무이한 인물들을 하나 씩 맡고 있으니 모두가 주인공이지 않느냐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내 심장을 쏴라'의 연출을 맡은 문제용 감독은 유오성과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동문이기도 하다. 신인 감독과의 작업이었지만 자신의 의견을 어필하기 보다 감독의 디렉션을 존중했다고 했다.
"어필하고 싶은 부분은 없었어요. 배우들은 미시적으로 표현하는 파트예요. 감독이 거시적으로 보는 사람이죠. 배우들이 흔히 하는 말 중 하나가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할게요'라는 말인데 그건 잘못된 거예요. 평가를 내리는 건 감독이고 감독이 오케이를 했다면 그건 이미 끝난 장면이 되는 거죠. 작품 전체를 디자인하는 감독이 있는데 그걸 어필할 이유는 없어요. 드라마는 작가와 연출자의 것이고 영화는 감독의 것이예요. 배우의 진짜 몫은 연극이죠."
지난 1992년 연극 '핏줄'로 연기를 시작해 어느 덧 2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촬영장에서도 대선배 격이었지만 조언보다는 격려로 후배들을 다독였다고 한다. 가장 나이가 어렸던 여진구를 두고는 "연기로 이미 꽃을 피운 배우"라고 칭찬하면서도 "연기의 최종 목적은 꽃을 피우는 게 아닌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라는 말로 애정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영화가 요구했던 적정 수준의 연기력을 모두 충족시켰다며 여진구와 이민기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기 할 것도 바빠 죽겠는데 조언은 무슨.(웃음) 선택을 받았다는 건 그 자체로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내가 선배로서 '감놔라 배놔라' 할 자격이 없는 거죠. 연기를 잘 하는 못 하든 그건 각자의 몫인 셈이예요. 찬란한 배우들이 모였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각자 장단점이 있지만 단점도 흠결이 안 보이도록 연기를 하는 것이 진짜 연기죠. 여진구와 이민기는 정말 딱 필요한 자기 몫을 연기해줬고, 이 때문에 잘 디자인된 영화가 탄생한 게 아닐까요."
올해 50대로 접어들면서 또 다시 다른 인격체가 돼 가는 과정에 들어섰다. 30대에 영화 '간첩 리철진'과 '친구'로 화려한 필모그라피를 쓰기 시작해 40대를 지나 50대에 보다 다양한 작품들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필모그라피의 어느 지점에서부턴가 힘을 빼고 대중에게 다가서는 유오성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야 비로서 삶에서 여유를 찾았다고 했다. 연기는 물론이고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 지, 어떤 배우로 추억될 수 있을지를 더 고민하게 됐다고.
"연극할 때부터 배우는 어디에서든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왔어요. 연기가 중요한 거지 영화든, 드라마든 매체가 중요한 게 아니죠. 영화 '간첩 리철진'이나 '주유소 습격사건', '친구', '챔피언' 등을 찍어 오면서 배역의 크고 작음을 떠나 난 언제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해왔어요. 단역할 때부터 변함 없이 생각해왔던 거예요. 왜냐고요? 그 역할은 오로지 나한테만 주어진 것이니까. 그래서 관습적으로 연기하지 않으려 하고요."
혹자는 유오성의 오늘을 제 3의 전성기라고도 한다. 후배 배우들 사이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여전히 대체 불가의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치열했던 청춘을 지나 보다 넓은 시야로 연기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이 분명 가장 행복한 시기다. 하지만 먼저 그 치열했던 시기를 지나오며 제도를 개선하지 못했던 점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여전했다. '내 심장을 쏴라'는 그의 그런 마음이 담긴 영화인 셈이었다. 그리고 유오성은 후배들에게, 세상 모든 청춘들에게 말한다. "세상 누구보다 자신을 믿으라"고.
"제3의 전성기요? 하하. 전 정점을 찍은 적도 없는 걸요. 전 애초에 34세에 장가갔을 때 스스로를 이미 성공했다고 봤어요. 당시 연극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암흑기에 장가를 간다면 성공하는 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웃음) 그래서 전 그때 이만하면 진짜 성공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누군가가 제 전성기에 대해 이야기하면 난 비상을 꿈 꿨던 적도 없었기 때문에 추락한 적도 없다고 말해요. 그저 연기자로서 선량한 양심대로 살기를 바랄 뿐이죠. 사람들의 잣대가 아닌 내 기준대로, 내 박자대로 걸어가고 있는 중이예요."
유오성은 최근 방송된 KBS2 '해피투게더3'에 여진구와 함께 출연해 애처가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의 의외의 모습에 놀라는 이들이 많았다는 말에 "난 원래 그렇게 살았을 뿐인데?"라며 "일부러 '나 이런 사람이예요'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진짜 그렇게 살아요 내가. 지금도 그냥 아침에 밥 차려주면 감사하게 먹으면서 지내고 있어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는 또 다시 현재 출연 중인 KBS2 드라마 '스파이' 촬영을 위해 바삐 채비를 갖추는 그였다.
aluem_ch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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