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인터뷰] 서진원 "'배심원들'로 재회한 문소리, '박하사탕' 데뷔 동기"

LIM엔터테인먼트 제공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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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이름은 낯설지 모르나 얼굴은 낯익다. 영화 '배심원들'에서 살인 용의자 피고인(서현우 분)의 국선 변호인 역할로 출연한 배우 서진원은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조연 배우로 활약하며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베테랑 배우다. '배심원들' 전에는 '1987'에서 지검장 역을 맡았고, 그밖에 '대결' '게이트' '1급기밀' '치외법권' 등에도 출연했다.

최근 서울 을지로의 한 맥줏집에서 뉴스1과 만난 그는 깊고 선한 눈에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배우였다. 배우로 시작해 자신이 출연할 작품을 찍기 위해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는 그는 연극 배우 경력까지 합쳐 데뷔 30년을 넘긴 지금도 연기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가득찬 눈을 하고 있었다.

'배심원들'은 '1987'에서의 지검장 연기를 본 감독의 제안으로 캐스팅 됐다. 서진원은 영화 '정승필 실종사건'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고, 2011년에는 한국영화기성작가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이번 영화에서는 작품을 분석할 수 있는 이러한 작가적 능력을 발휘해 캐릭터를 분석했고, 결과적으로 시나리오상 표현된 국선변호인보다 더 풍부한 인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전적으로 감독님 덕분이에요. 놀아보라고 판을 깔아주셨어요. 참 고마웠죠. 감독님을 요즘 자주 만나는데 배우로서 이렇게 판을 깔아준 감독님이 없었어요. 울컥했어요. 국선변호인 같은 경우 소스도 많지 않고 재료만 가져와서 요리해야 하는 캐릭터였는데, (제가 만든 것들을) 감독님이 너무 좋아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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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후배 배우 서현우와 가장 많이 호흡을 맞췄다. 서진원은 인스타그램에서 서현우에게 남다른 애정(?) 표현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함께 할 때 보여준 후배의 배려심에 대한 고마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극 중) 서현우가 감정을 잡고 있는데 내가 '왜 죽였어?' 하면서 끼어드는 거였어요. 어떻게 연기할지 망설였어요. 그래서 '내가 끼어들어도 되겠니?'라고 했는데 '마음대로 하세요. 전 다 받을 준비되어있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서현우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인스타그램에 유일하게 제가 하트를 달아주는 친구에요. 어떤 후배 배우가 '질투나게 왜 서현우에게만 하트를 보내느냐'고 하더라고요. 제가 '사랑하니까'라고 했어요. 많이 챙겨줘서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배심원들'에서 함께 한 배우 문소리를 처음 만난 것은 '박하사탕' 때였다. 문소리의 데뷔작이었던 '박하사탕'은 서진원에게도 영화 데뷔작이다. '박하사탕' 당시에는 주인공인 문소리에게 말을 걸지 못했는데, '배심원들'에서 다시 만나 반갑게 인사했다. 우연찮게도 문소리 뿐 아니라 '배심원들'에서 함께 한 배우들 중에는 조한철과 고서희 등 '박하사탕'으로 함께 데뷔한 배우들이 있었고 촬영 중 넷이 함께 기념 사진을 찍기도 했다.

"문소리씨와 다시 만나 너무 반가웠어요. 서로 작품을 꼭 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했다는 얘기를 나눴어요. 문소리씨가 국변 역할에 대해 조언도 많이 해주고, 좋아해줬어요. 고마운 건 제가 연기를 하면 '너무 좋다'고 응원과 격려를 해주는 거였어요. 그래서 나온 장면이 극 중 제가 삐지는 장면인데, 문소리씨가 잘 받아줘서 나온 장면이죠. '배심원들'에 나오는 조한철, 문소리, 고서희씨는 저와 '박하사탕' 동기에요. '박하사탕' 속 야유회 때 기타를 치는 친구가 조한철씨고, 영화 속 설경구씨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여자로 나온 사람이 고서희씨에요. 넷이 기념으로 사진도 찍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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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간 배우 경력을 이어오며 상처를 받았던 적도 많다. 주인공이 아닌 이상 이래 저래 서러운 일을 많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배우라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크게, 자주 얼굴을 비추기 위해 다른 배우들과 보이지 않는 경쟁을 펼칠 때도 있었고, 좌절감을 맛볼 때도 있었다.

"한 영화에서 단역으로 촬영을 하는데, 제가 군인2였어요. 군인2가 주인공과 붙는 장면이었는데 갑자기 군인1과 배역을 바꾸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냥 아르바이트로 출연하는 배우인 줄 알고 '좀 쉬시라'면서 바꿔주신 거였죠. 하지만 저에게는 카메라에 더 많이 노출되는 그 역할이 간절했죠. 지방인 촬영장에서 굉장히 고민했어요. 군복을 벗고 이대로 집에 가야하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가겠다고 하고 집에 가려는데 감독님이 제가 직업 배우인 것을 아시고 '실수했다'고, '미안하다'면서 다시 그 배역을 주셨어요."

'포기하고 싶은 때는 없었느냐'는 말에 서진원은 곧장 "포기하고 싶은 생각 많았다"고 답했다. 지금도 "내 역이 없으면 어쩌지?"라는 걱정 속에 살아간다고. 하지만 그때마다 '조금만 더 버텨보라'고 격려해줬던 주변 사람들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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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란 단어를 떠올리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만약 누군가 '연기 못하니 하지 마'라고 했다면 포기했었을 텐데, 주변 사람들은 '조금만 더 버텨봐. 넌 기회만 잡으면 할 수 있어'라고 하니 버티게 됐어요. 자존심에 군살이 너무 박혀서 이젠 어디가서 부끄럽지 않아요. 그래서 어디에 가도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웃음)"

서진원은 자신과 비슷한 과정을 겪는 후배들이 조언을 구해올 때마다 '좌절하는 시간에 실력을 쌓으라'고 이야기 해준다고 했다. 지금도 구인구직 어플리케이션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그는 배우라는 직업의 가장 큰 적은 조급함과 두려움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조급함과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지금의 내 위치가 실력'이라는 생각을 갖고 실력 쌓기에 집중하는 것뿐이다.

"제가 지금 만으로 49살이에요. 봉준호 감독님과 동갑이죠. 50살이 되면서 새로운 인생 목표가 생겼어요. 그전엔 연기자가 될까 (시나리오)작가가 될까를 놓고 힘들어했는데, 지금은 연기자로서 쭉 한길을 가기로 목표를 설정했어요. 그리고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연기력을 갖추는 게 인생 2막의 목표입니다."

eujene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