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 "변화된 목표, 이젠 신인이 아니니까요"(인터뷰①)
- 장아름 기자
(서울=뉴스1스타) 장아름 기자 = '충무로 신성' 혹은 '충무로 블루칩'. 배우 김고은을 대표하던 수식어는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김고은 역시 첫 출연 드라마 '치즈인더트랩' 이후 배우로서의 책임감을 더욱 실감하기 시작했고,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던 지난 날과 달리 "관객들이 내 연기에 설득당했으면 좋겠다"거나 "연기의 기복을 없애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갖게 됐다. 다만 지난 2012년 데뷔작 '은교' 이후 줄곧 지속해왔던 "도전해야겠다는 자세"는 변하지 않았다.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작품을 선택해가기 보다, 지금 20대 때 할 수 있는 작품과 역할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김고은은 자신의 지난 5년을 두고 "후회가 없는, 잘한 선택"이라고 이야기했다. 대중이 바라는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 보다, 스스로의 발전과 성장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를 보내려 했다. 그런 고민을 따라 작품을 선택했고, 그러다 보니 매 작품 마다 도전의 연속으로 여겨지던 시기를 지나오게 됐다. 영화 '계춘할망'(감독 창) 역시 김고은의 도전과 맞닿아 있던 작품이었다. 대선배 윤여정과 호흡을 맞춘 '계춘할망'에는 계춘을 향한 비행 청소년 혜지의 감정선을 매순간 관객을 설득시키고 싶었던 김고은의 진심이 반영됐다. "이젠 신인이 아니니까"라는 김고은의 고백에서 새롭게 감지된 고민과 각오가 그의 다음을 더욱 궁금하게 한다.
Q. '계춘할망' 출연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A. 처음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너무 가슴이 아플 것 같아 망설였다. 전작에서 감정 소모를 워낙 많이 했기 때문에 밝은 캐릭터를 하고 싶기도 했었다. 그러다 시나리오를 단숨에 읽고 방안에서 오열을 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감정일 것 같더라. 할머니와도 계속 같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감정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작품을 하겠다고 했다.
Q. 제작보고회 당시에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다 눈물을 보였다.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유독 애틋한 것 같다. 할머니를 VIP 시사회에 초대하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A. 그때 왜 울었는지 진짜 모르겠다. (웃음) 난 청룡영화상에서도 신인상을 받을 때도 안 울었다. 울면 창피하잖아. 하하. 거기서 갑자기 눈물을 흘릴지는 진짜 몰랐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영화를 찍을 때도 눈물 연기는 세 테이크 이상은 안 가려고 한다. 오열신을 찍으면 벌에 쏘인 것처럼 부어오른다.
Q. '계춘할망'에서는 후반부에 혜지가 우는 신이 많았다. 그런데 혜지가 계춘과 시장에서 재회하는 장면에서는 의외로 담담한 감정선이더라. 눈물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이 느껴졌다.
A. 영화를 찍으면서 '내가 우는 게 맞는 걸까'라는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할머니와 손녀의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감정들을 다수가 느껴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진짜 신중해졌다. 자칫 내 연기가 과장돼 보이거나 보는 이들의 감정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그랬다. 그래서 정말 고민하면서 한 신, 한 신을 찍었던 것 같다.
Q. 혜지는 김고은에게 어떤 인물이었나.
A. '계춘할망'에서 혜지라는 인물을 처음에 맡았을 때 이 친구의 성격에 대해 많이 고민을 했다. 혜지에 대해서는 '비행 청소년'이라는 단어로 표현됐지만 '혜지가 어떤 아픔을 가진 것일까 그리고 왜 밖에 나가게 됐을까'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해서 접근하려 했다. 그래서 비행 청소년과 관련한 다큐멘터리와 자료들을 한동안 많이 찾아보기도 했다.
Q. 감정 소모가 많은 작품이 아닌, 밝은 역할에 도전하고 싶었다고 했는데 혜지 역시 감정 소모가 많은 작품이었다. 역할을 위해 어떻게 연기에 접근해 가는 편인가. 혹은 현장에서 본능적으로 연기를 하는 편인가.
A. 난 준비 단계 때 가장 치열한 편인 것 같다. 감독님하고 캐릭터 분석하고 얘기를 많이 나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분석에 해당되는 부분은 완벽하게 해결하고 들어가야지, 현장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장에서는 변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너무 벗어난 감정이 아닌 이상 준비 단계에서 분석한 감정에 충실하려고 한다. 윤여정 선배님과 연기를 하면서는 주고 받는 감정이 너무 좋았다. 너무 좋은 감정이 오니까 리액션을 하게 되는 것 같았고, 좋은 감정의 연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Q. 이번 작품에서는 대선배인 윤여정과 호흡을 맞췄다. 윤여정이 캐스팅 당시 김고은을 먼저 언급했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A. 정말 모르겠다. (웃음) 윤여정 선생님께서 내 이야기를 먼저 하셨다고 하시길래 진짜일까 싶었다. 워낙 앞에서는 말씀을 안 하시는 분이시다 보니까 그 이유를 지금까지도 모르겠더라.
Q. 대선배인데 호흡을 맞추면서 조심스럽거나 어려운 점은 없었을까.
A. 사실 없었다. 선생님이 직설적이라고 생각하신 분들이 많은데 그것도 맞긴 하지만, 옆에 있다 보면 따뜻한 분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선생님의 말씀 안에 정이 느껴지더라. 사실 내가 어른들과 함께 있는 것에 불편함을 별로 안 느끼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그래서인가. 연기를 편안하게 잘했던 것 같다.
Q. 또래 20대 여배우들 중에서 충무로를 대표하는 여배우 선배들과 호흡을 맞춘 배우로는 김고은이 유일하지 않을까. 김혜수, 전도연, 윤여정 등과 작품에서 상대역으로 호흡할 수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A. 시기적인 것도 좋았던 것 같다. 사실 내 마음가짐 안에서 좋은 선배님과 함께 연기하고 싶다는 간절함도 있었던 것 같다. 선배님들이 선택하신 작품이 쉬운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겁을 먹었더라면 성사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 내던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시기라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좋은 선배님들과 만난 건 정말 내게 큰 복인 것 같다.
Q. 대배우들과 함께 연기했기 때문일까. 김고은이라는 배우가 갖는 인상이 또래 여배우들과는 분명 다른 것 같다.
A. 지금까지는 내가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대해 크게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을까에 포커스를 맞추고 온 것 같다. 많은 이들에게 내 연기를 보여드리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부족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발전하고 싶었고 도전의 시간을 지나온 것 같다. 내 기준에서 신인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나기 전이었고 그렇게 5년의 시간을 보내온 것 같다. 후회가 안 되는,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이제 신인이라는 말을 잘 안 써주시더라. 생각이 바뀐 기점은 드라마 '치즈인더트랩' 당시부터였다. 신인이 아니라는 마음가짐으로 작품에 대해 고민하고 책임감을 갖게 됐다.
Q. 데뷔작 '은교' 이후 영화 '몬스터', '차이나타운', '협녀: 칼의 기억', '계춘할망'에서 김고은이 맡은 역할은 모두 상처가 깊고 어두운 인물이다. 이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 이유에는 도전이라는 키워드가 작용했나.
A. 사실 그런 캐릭터들에 애착을 가졌다거나 도전을 하려고 했다기 보다는 한국 영화에서 그렇지 않은 캐릭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밝고 쾌활하고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에 출연하고 싶었는데 찾아봤지만 많이 없었다. 연애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20대 연애 보다 30대 연애 이야기를 더 선호하는 것 같더라. 그러다 기회가 왔던 게 '치즈인더트랩'이었다. 지금 이 나이 때에 할 수 있는 캐릭터에 욕심을 내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이 지나면 못하는 작품들이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Q. 최근 '치즈인더트랩'을 통해 한결 편안한 연기로 대중들과도 많이 가까워진 배우가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은교' 때의 김고은을 잊지 못하는 대중들도 많다. '은교' 때 갇혔다는 말이 아니라, '은교'의 김고은에 여전히 애정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배우에게는 기쁜 일이면서도, 때로는 부담이 될 것도 같다.
A. 나는 그렇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굳이 뭘 바꿔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표작이 있는 게 너무 감사하다. 배우에게 대표작이 있기가 정말 힘들다는 걸 안다. 운이 좋게 첫 작품이 대표작이 됐고, 나를 내던진 작품에서 칭찬을 받아서 감사하다. 하지만 칭찬만 받으려 하면 발전이 없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고 싶었다.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선배님들의 말씀을 실감했다. 카메라가 뭔지 모를 때 감정만 부여잡고 감독님과 3~4시간 이야기하고 해결하고 한 신, 한 신 찍으며 성공한 작품이 너무 소중하다.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게 중요한데 '은교'는 내가 감사한 작품이 됐다. 배우는 현장이 가장 중요한데 그때 보고 들었던 것이 옳았기 때문에 그때 기억을 갖고 나아가려 노력 중이다.
Q. 배우로서 스펙트럼을 넓혀둔 상태다. 그럼에도 갈증을 느끼는 부분이 있나. 향후 도전하고 싶은 장르는.
A. 갈증을 느낀다기 보다 출연하고 싶은 영화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영화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어떤 사건 보다는 두 인물의 감정 교류로 이뤄지는 소소하고 디테일한 감정들이 구체적인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 로코나 멜로도 너무 좋아한다.
Q. 인터뷰 중 "이제 신인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 그때와 지금, 김고은은 어떻게 변화됐을까. 배우로서의 이상향도 변화됐나.
A. 이상향이 크게 바뀐 것은 없다. 지금까지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막연하게 말한 것 같다. 그 이유는 시간이 지나고 영화를 볼 때마다 배우로서 가치나 기준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배우에 대한 가치나 기준이 바뀔 것 같아서 마냥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었다. 지금은 관객들이 내게 설득 당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내 인물에 설득당했으면 좋겠고 말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인물 자체로, 내 연기로 설득할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다만, 해보지 않고 '못할거야'라고 겁을 내기 보다 여전히 도전하고 싶다. 20대는 안정적이고 체계적일 필요가 없는 나이대인 것 같거든. 20대 때 많은 작품에 도전해서 연기의 기복을 없애고 싶다. 지금은 그게 내 목표다.
Q. 배우 김고은이 아닌, 인간 김고은으로는 대중들에게 어떻게 기억됐으면 좋겠나.
A. 나는 인간적인 사람이고 싶다. 딱 갖춰져 있는 모습만 보여주는 배우가 되기 보다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본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보여지는 것을 의식한다면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게 지금 내 고민이기도 하다.
aluem_chang@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