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투자 발표 임박…알래스카LNG 꺼내든 美, '트럼프식 협상술' 우려
트럼프, 한국시간 내일 오전 4시30분 韓 대미투자 내용 발표
韓 '추후 협의' 분류한 알래스카 LNG 다시 급부상 주목
- 이정현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 대미 투자 계획 발표를 앞두고 한국 정부가 아직 '추가 협의' 대상으로 분류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이 주요 투자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언론이 알래스카 LNG 사업에 540억 달러(약 73조 원) 규모의 자금이 투입될 수 있다고 잇따라 보도하면서다.
한국은 알래스카 LNG 사업의 상업적 합리성을 검토한 뒤 최종 참여 여부를 결정한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이 이를 대미 투자 계획에 포함해 발표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한미 협상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트럼프식 협상술'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30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 오후 3시 30분(현지시간, 한국시간 1일 오전 4시 30분) 백악관에서 한국의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직접 발표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통신과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전략적 투자자금을 활용해 미국 내 주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계획을 발표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알래스카 LNG 사업에 약 540억 달러가 투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거론했다.
한국은 지난해 한미 관세 협상에서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에 합의했다. 이 가운데 조선업 분야를 제외한 전략산업 투자금은 2000억 달러다.
한국 정부는 지난 22일 국회 보고에서 대미 투자 1호 사업으로 텍사스주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제시하면서,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 건설과 알래스카 LNG 개발 건은 '추가 협의 대상'으로 분류했다.
알래스카 LNG 사업은 북부 노스슬로프 지역의 가스전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약 1300㎞ 길이의 파이프라인으로 남부 니키스키까지 운송한 뒤 액화해 아시아 등 해외로 수출하는 대형 에너지 인프라 사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업에 꾸준히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해 3월에는 한국과 일본 등이 사업 파트너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고, 같은 해 8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한국·일본과의 합작 투자 구상을 언급했다. 올해 9월에도 한국과 일본이 알래스카에서 연료와 석유를 수송하고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아시아 수출 시장을 겨냥한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고 대규모 투자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업 추진의 유인이 크다. 반면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막대한 초기 투자비와 장기간의 사업 운영에 따른 불확실성이 있어 '사업성 검증'이 선행돼야 할 과제다.
문제는 알래스카 LNG뿐만이 아니다. 미국 측이 한국 정부가 아직 최종 투자 여부를 확정하지 않은 대형 원전 8기 건설 사업까지 이번 발표에 함께 포함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실제 로이터통신은 알래스카 LNG와 함께 원전과 가스발전 등 여러 대형 프로젝트가 한국의 전략적 투자금으로 추진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경우 미국 측이 한국 정부와 '협의 중인' 사업들을 먼저 대외적으로 공개하면서 투자 프로젝트의 범위를 사실상 넓히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각 사업의 상업성을 따져 최종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는 원칙을 견지하더라도, 미국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사업을 이후 '추가 검토 대상'으로만 돌려놓기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입장에서는 알래스카 LNG 사업이 미국의 대미 투자 발표를 앞두고 재부상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알래스카는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현역 상원의원의 재선 여부가 걸린 주요 선거 지역으로 꼽히는 데, 트럼프 행정부가 알래스카의 대형 에너지 프로젝트를 성과로 내세울 유인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 역시 한국의 알래스카 LNG 투자를 발표하려는 배경으로 알래스카 상원의원 선거를 거론했다.
결국 이번 발표가 단순히 한국의 대미 투자 계획을 공개하는 자리를 넘어, 미국 측이 한국 정부와 협의 중인 대형 프로젝트를 한꺼번에 '발표 카드'로 꺼내는 자리가 될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방식은 처음부터 상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의 요구를 제시한 뒤 강한 압박을 가해 협상판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지난해 캐나다·멕시코와의 관세 협상에서는 25% 관세 부과를 전면에 내세운 뒤 국경·마약 문제에 대한 대응을 요구했고, 일본과의 무역 협상에서는 관세 문제와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었다.
유럽연합(EU)과의 협상에서도 관세뿐 아니라 미국산 에너지·방산 제품 구매와 대미 투자 확대를 함께 요구했다. 기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과정에서도 협정 폐기 가능성을 내세워 상대를 압박한 뒤 최종적으로는 USMCA라는 새로운 틀을 마련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방식이 협상 초기에는 극단적인 요구를 제시해 상대의 선택지를 좁히고, 이후 세부 조건을 조정하는 형태로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이번 대미 투자 협상은 무역법 301조의 공급과잉 조사 결과 발표와도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 대미 투자 1호 사업과 301조 추가 관세라는 두 협상의 시계가 동시에 돌아가면서, 지난해 15%로 합의한 한미 관세 협상의 '2라운드'가 대미 투자 협상과 맞물리는 양상이다.
한국으로서는 투자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를 어디까지 수용할지와 301조 관세가 기존 합의선을 넘지 않도록 막는 두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이번 한미 전략적 투자 협상에서도 이미 합의된 대미 투자 패키지를 기반으로 미국이 텍사스 발전사업에 이어 알래스카 LNG 등 추가 프로젝트를 공개적으로 띄우면서 이 같은 '최대치 압박 후 조정' 방식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외신 보도를 단순한 투자 계획 공개로만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와 투자, 에너지 협력을 연계해 협상해 왔으며, 알래스카 LNG 사업 역시 미국이 한국의 참여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분야다.
대미 투자 발표를 앞두고 해당 사업이 다시 주요 의제로 부상한 만큼, 미국이 한국의 참여를 기정사실화하는 방식으로 협상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외신 보도가 곧 한국 정부의 투자 확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산업통상부는 알래스카 LNG 사업과 관련해 상업적 합리성을 관련 법률에 따라 검토한 뒤 참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가 국회에 보고한 추진 사업에도 아직 포함되지 않은 만큼, 미국 측 발표와 한국의 실제 투자 결정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남아 있다.
미국 측 요구를 수용해 알래스카 LNG 사업을 대미 투자 계획에 포함할 경우 국내 사업 선정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할 가능성도 있다. 투자 재원 배분과 수익 배분 구조, 사업 위험 부담, 한국 기업의 참여 범위 등을 검토해야 하는 데다 현행 특별법이 규정한 상업적 합리성 원칙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관건은 미국이 발표하는 투자 계획과 한국 정부가 실제 집행할 수 있는 투자 사이의 간극을 얼마나 좁히느냐다. 트럼프 대통령이 알래스카 LNG 사업을 다시 전면에 내세울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경제성과 위험을 검증하면서 미국의 요구와 어떤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에 굳이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알래스카 LNG 사업의 경우 우리 정부도 어쨌든 일정 부분 참여하기로 했던 사업"이라며 "결정한 만큼 협의를 이어나가면 되는 문제다. (외신 보도에서)공개된 540억 달러도 단기 투자가 아닌 장기 투자를 얘기한 것으로 보이는 만큼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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