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홀로 남은 김정관, 3500억 달러의 무게

국종환 경제부장
국종환 경제부장

(서울=뉴스1) 국종환 경제부장 = "터프한 협상가(Tough negotiator)"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에게 붙인 이 수식어는 당시만 해도 김 장관에게 꽤나 인상적인 평가였다. 김 장관 역시 "살면서 가장 터프한 인물에게 받은 평가"라며 웃었다.

하지만 지금 그 수식어는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미국을 상대로 그 '터프함'을 실제 협상력으로 증명해야 할 시험대가 눈앞에 놓였기 때문이다.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의 막판 조율을 위해 미국을 다녀온 김 장관이 지난 13일 귀국했다. 그러나 협상의 종지부는 아직 찍히지 않았다. 핵심 쟁점을 둘러싼 한미 간 마지막 줄다리기는 이번 주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마지막 사인을 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타결을 앞두고도 결과를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가 마주한 숫자는 3500억 달러다. 한미 무역 합의에 따라 한국이 약속한 대미 투자 규모다. 전략적 투자 2000억 달러와 연간 200억 달러의 송금 한도라는 큰 틀 아래 첫 사업의 세부 조건을 확정해야 한다. 미국이 원하는 속도와 한국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사업성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야 하는 협상이다.

3500억 달러의 첫 단추를 끼워야 할 순간, 협상을 함께 이끌던 핵심 인사들의 자리에는 공백이 생겼다.

관세 협상부터 대미 투자 틀까지 함께 다듬었던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과 김용범 전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차례로 물러나면서, 막판 협상 테이블에는 김 장관이 홀로 남았다.

미국은 속도를 원한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충 등으로 커지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의 자본과 기술을 빠르게 끌어들이려 한다. 한국 역시 한미 경제안보 관계와 관세 합의의 후속 이행을 생각하면 미국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다.

하지만 투자 판단은 외교 일정에 맞춰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백억 달러가 들어가는 사업의 수익성과 위험 배분이 불분명하다면 그 부담은 결국 기업과 국가 경제로 돌아온다.

그래서 이번 협상에서 봐야 할 것은 투자액보다 조건이다. 누가 위험을 부담하고, 누가 수익을 가져가며, 사업성이 흔들릴 때 누가 책임질 것인지다. 김 장관이 귀국길에도 '상업적 합리성'과 기존 투자 한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김 장관의 이력은 관료와 기업 현장을 아우른다. 행정고시를 거쳐 재무부와 기획재정부, 한국은행을 경험한 정책통이면서 두산경영연구소 대표와 두산에너빌리티 마케팅 총괄 사장을 지낸 현장형 인사다. 정책을 만드는 관료의 책상과 실제 투자 판단이 이뤄지는 기업 현장을 모두 경험했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 과정에 참여하며 해외 시장에서 정부와 기업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도 경험했다. 정책적 명분과 기업의 손익계산서를 함께 읽어야 하는 이번 협상에서 그의 이력은 분명한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제 그 경험을 협상장에서 어떻게 발휘하느냐가 중요하다.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 거부할 수도 없지만, 정치·외교적 시한에 쫓겨 경제성이 떨어지는 사업까지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속도와 실리 사이에서 얼마나 설득력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느냐가 이번 협상의 핵심이다.

이번 주 1호 프로젝트가 발표된다면 시장의 시선은 투자 규모와 사업 내용에 쏠릴 것이다. 그러나 더 꼼꼼히 봐야 할 것은 숫자 뒤의 조건이다. 1호 프로젝트로 유력시되는 텍사스 발전 프로젝트가 어떤 구조로 추진되는지, 원전 8기 건설 구상이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특히 수익과 위험을 나누는 특수목적법인(SPV) 구조가 어떻게 설계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한국 기업의 수익성이 확보됐는지, 사업 위험은 적절하게 배분됐는지, 미국 측의 요구에 상응하는 반대급부가 있는지가 관건이다.

3500억 달러는 한 번에 집행되는 돈이 아니다. 앞으로 수년에 걸쳐 구체적인 프로젝트로 전환될 장기 약속이다. 첫 사업에서 만들어지는 조건과 선례는 뒤따를 투자의 방향과 기준이 될 수 있다. 이번 협상이 단순히 발전소 하나를 정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다.

jhku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