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은 올리고 세금은 숨겼다…의식주 41개 업체 무더기 세무조사

계란·가공식품·프랜차이즈·배달앱 등 탈루 혐의 1조원
국세청 "차명계좌·거짓계산서 정밀 검증…엄정 대응"

국세청 전경. (국세청 제공) 2020.9.9 ⓒ 뉴스1

(세종=뉴스1) 전민 기자 = 원재료비 상승 등을 핑계로 가격을 올려놓고 뒤로는 거짓 세금계산서를 주고받거나 원가를 부풀려 세금을 탈루한 사업자들이 무더기로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게 됐다.

계란 생산농가부터 가공식품·외식 프랜차이즈, 배달·패션 플랫폼까지 국민 먹거리·생필품 물가와 맞닿은 업종이 총망라됐고, 탈루 혐의 금액은 약 1조 원에 달한다.

국세청은 담합·독과점 등 불공정 행위를 비롯해 원가를 부풀려 최종 소비자에게 물가 부담을 떠넘긴 시장 교란 사업자 41개 업체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14일 밝혔다.

국세청에 따르면 이들은 원재료비 상승 등 대외 불안 요인에 원가 절감으로 대응하기보다 오히려 가격을 높이고, 거짓 세금계산서를 수취하거나 원가를 허위로 계상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의도적으로 축소했다.

조사 대상은 △장바구니 부담을 키운 농축산물 유통업체 23개 △원가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한 가공식품·외식 프랜차이즈·배달 플랫폼 16개 △지배적 지위에서 가격을 올린 패션 플랫폼 2개 등이다.

41개 업체는 규모별로 중견기업 8곳과 중소기업 33곳으로 나뉘며, 이 중 코스피 상장사도 2곳 포함됐다.

계란 '금란' 뒤에 숨은 탈세…농축산물 유통업체 23곳 덜미

먼저 계란 생산농가(양계 농장) 11곳이 도마에 올랐다. 계란이 '금란'으로 불릴 만큼 가격이 치솟은 가운데, 인위적으로 가격 상승을 부추긴 생산자단체는 앞서 담합 행위로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와 7월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각각 제재를 받았다.

국세청은 이와는 별개로 이들 농가의 원가 계산이 적정한지를 들여다봤고, 그 결과 조사 대상 11곳이 3~5년에 걸쳐 업체당 20억~70억 원, 합산 400억 원 넘는 수익을 축소 신고한 것으로 파악했다.

계란 매출이 대부분인 한 영농조합법인은 거래처에 계산서 없는 무자료 거래를 요구해 10억 원대 수입금액을 탈루했다. 실제 근무하지 않는 사주 부모·배우자에게는 급여 명목으로 5억 원대 법인 자금을 유출했고, 특수관계법인에는 병아리를 시가보다 낮게 넘겨 2억 원의 이익을 나눠줬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받은 보조금 1억 원은 수입금액에 넣지 않고 소득을 줄여 신고했다.

다른 업체는 농·어민의 축산소득 비과세 규정을 악용해 배우자 명의로 실체 없는 양계장을 차려 매출을 분산한 뒤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참깨·파인애플·돼지고기 등을 수입하며 할당관세 혜택을 받아 온 유통업체 12곳도 조사받는다.

0%의 할당관세율로 돼지고기를 들여온 한 업체는 대표자 자녀 명의의 유령 사업자를 매출처와의 거래 중간에 끼워 넣어 유통 마진을 챙긴 뒤 단기간에 폐업시켜 할당관세 혜택만 가로챘다.

참깨를 수입하는 다른 업체는 저율관세할당(TRQ) 물량을 추가로 확보하려 위장 업체를 세워 매출을 분산했고, 이 위장 업체로부터 실물 거래 없이 참깨 등을 50억 원어치 매입한 것처럼 거짓 계산서를 받아 매입원가를 부풀렸다. 사주는 해외여행 등에 쓴 법인카드 사용액 1억 원을 법인 비용으로 처리했고, 배우자는 유출된 법인자금으로 아파트를 취득했다.

이익은 부풀리고 세금은 해외로…가공식품·프랜차이즈·플랫폼 18곳도

가공식품 업체 12곳도 조사망에 걸렸다. 국세청은 이 업종에서만 2000억~3000억 원 규모의 탈루 혐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제품 가격을 올린 한 종합식품기업은 해외 현지법인의 인건비 50억 원 등을 대신 부담하고 500억 원의 자금을 이유 없이 선급금 명목으로 지원하면서 이자 60억 원을 받지 않는 방식으로 소득을 국외에 유보했다. 국내 관계사의 연구개발비·전산시스템 구축비도 부당 지원했고, 사주는 부친에게 관계사 주식을 무상으로 증여받고도 증여세를 신고하지 않았다.

소스·만두류를 만드는 다른 업체는 퇴직 임원이 세운 특수관계법인에 수수료를 과다 지급하고, 사주 자녀가 지배하는 법인의 물류센터 사용료를 대신 내주는 방식으로 이익을 빼돌렸다. 사주 자녀가 본부장으로 있는 해외 현지법인에는 투자금 명목으로 거액을 보내 역외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도 확인됐다.

외식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3곳도 포함됐다. 전국에 가맹점 2000여 개를 둔 한 업체는 사주의 개인 지출을 가맹점주 지원 비용으로 둔갑시켰고, 사주 자녀가 지배하는 법인에 유원지 내 직영점을 무상으로 넘긴 뒤 재료를 저가에 공급해 손실을 떠안기까지 했다.

고기류를 취급하는 다른 가맹본부는 사주가 직원 명의로 차명 가맹점을 운영하면서 매출원가를 다른 가맹점 평균보다 10% 이상 부풀려 소득을 과소신고했다. 이 업체 사주는 수억 원짜리 슈퍼카 3대를 법인 명의로 사들여 사적으로 썼고, 인테리어 협력업체에서 받은 감리비·리베이트도 신고 없이 챙겼다. 사주 배우자는 별다른 소득 없이 5억 원을 증여받아 아파트를 현금으로 사고도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한 출혈경쟁으로 소비자 가격 인상을 불러온 배달 플랫폼 1개 업체도 조사 대상에 올랐다.

국세청은 이 업체가 막대한 프로모션 비용을 음식점·슈퍼마켓 등 입점업체에 수수료와 광고비 형태로 떠넘기면서 거둔 이익에 주목했다. 조사 대상 기간 국내에서 낸 이익은 1조 원대에 이르는데, 이 돈을 해외 지배주주에게 배당이 아닌 자본거래 형태로 이전하면서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게 국세청의 판단이다. 해당 세액은 1000억 원대로 추산됐다. 해외 관계사에 경영지원 성격의 업무지원 용역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부가가치세 매입세액을 부당 공제받은 혐의도 확인됐다.

패션 플랫폼 업체 2곳도 조사를 받는다. 이들은 압도적인 플랫폼 이용률을 앞세워 입점업체에 높은 수수료율을 적용하거나 기습적으로 가격을 올려온 것으로 파악됐다.

국세청은 변칙 회계로 매출을 고의 누락하고, 특수관계법인에 광고비·용역비를 과다 지급하거나 재고자산을 고가에 매입하는 방식으로 원가를 부풀린 혐의를 확인했다. 이 중 한 곳은 법인 명의로 고가 아파트를 빌려 사주가 개인적으로 거주한 사익편취 행위도 드러났다.

국세청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6월까지도 같은 명목으로 네 차례에 걸쳐 117개 업체를 세무조사해 3195억 원을 추징한 바 있다. 이번 조사는 추석을 앞두고 이어가는 물가 관련 기획 세무조사의 연장선이다.

국세청은 재료비·유통비용 등 가격 인상의 명분이 된 생산 원가의 적정성과 거래처와의 정상 거래 여부, 법인자금 유출로 부를 축적한 사주 일가의 재산 형성 과정을 중점적으로 검증할 방침이다.

차명계좌를 통한 수익 은닉이나 거짓 세금계산서 수수, 명의대여 등 고의적인 조세포탈 혐의가 드러나면 즉시 조세범칙사건으로 전환해 대응하기로 했다.

이성글 국세청 조사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그간의 물가 관련 세무조사를 통해 탈세와 물가 상승 간 연결고리를 확인한 만큼 이번 탈세 혐의자 또한 철저히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민생회복을 위한 범부처적 물가 안정 노력에 발맞춰 실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탈루 행위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엄정 대응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min7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