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다시 세입자 돈과 정부 보증으로 지을 순 없다[박선영의 경제 인사이트]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편집자주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거시·금융 경제학자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등 주요 경제·금융 정책기관의 위원회와 자문기구에서 제도 설계와 정책 평가에 참여해 왔다. '경제 인사이트'에서는 학술 연구와 정책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숫자 이면에 놓인 경제의 논리를 독자에게 차분하고 명료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특히 환율·금리·자산시장부터 금융규제, 디지털 금융과 통화 질서에 이르기까지 주요 경제 이슈를 데이터와 이론에 근거해 분석하고, 정책 결정이 시장과 가계에 어떠한 경로로 전달되는지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에서 '빌라'로 불리는 연립·다세대·다가구주택은 2018년 한 해 3만 5006가구가 준공됐다. 아파트 준공 물량의 90.1%였다. 지난해 이 숫자는 4858가구로 줄었다. 아파트(4만 9973가구)의 9.7%다. 7년 만에 서울 주택시장의 한 축이 10분의 1로 접힌 것이다.

원인으로는 공사비 급등과 전세사기 여파가 나란히 거론된다. 절반만 맞는 진단이다. 건설공사비지수가 2020년 초 대비 33.5% 오른 것은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공급은 휘청이면서도 굴러가는데 빌라만 유독 멈춘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빌라는 짓는 돈의 회로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세입자가 최종 대주였던 시장
서울의 한 빌라 밀집 지역. (뉴스1DB) ⓒ 뉴스1 구윤성 기자

빌라는 선분양을 하지 않는다. 건축주는 상호금융권에서 토지비와 공사비를 단기로 빌려 건물을 올리고, 준공하면 전세 세입자를 들여 그 보증금으로 건설대출을 갚아 왔다. 금융의 언어로 말하면 전세보증금이 건설자금의 상환재원, 즉 테이크아웃이었다. 이 회로의 끝에서 빌라를 최종적으로 떠받친 대주는 은행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담보·무심사·무이자로 건설자금을 댄 세입자였다.

왜 이런 기형이 필요했는지는 간단한 셈법으로 드러난다. 서울 도심에 빌라 한 세대를 짓는 원가가 토지 지분을 포함해 3억 원이라 하자. 시장의 자본이 이 사업에 들어오려면 최소 조달금리를 웃도는 연 5% 안팎, 즉 연 1500만 원(월 125만 원)의 순임대수익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이 집에 세들 수요층이 감당할 수 있는 월세는 70만~80만 원 선이다. 임대수익률로는 2%대, 임대료가 대출 이자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정상적인 금융의 논리라면 도심 빌라 신축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사업이다.

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것이 전세였다. 준공과 동시에 원가의 9할에 이르는 보증금이 일시금으로 들어와 건설대출을 통째로 갚아 주면, 임대수익률이 몇 퍼센트든 사업성과 무관해진다. 이자를 낼 대출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전세는 높은 도심 땅값과 낮은 월세 지불능력 사이의 유격을 세입자의 무이자 신용공여로 메워 온 보이지 않는 보조금이었고, 빌라 공급은 택지의 함수가 아니라 전세가율의 함수였다.

이 보조금이 공짜처럼 보였던 것은 위험에 가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입자가 인수한 신용위험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반환보증이 연 0.1%대의 보증료로 덮어 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 제도의 급소를 한 문장으로 지적했다. "보증료율에 보증위험이 반영돼 있지 않다." 실제로 전세가율 90%를 넘는 고위험 구간의 사고율은 평균의 3배가 넘었고, 2021~2024년 전체 보증사고 금액의 약 70%가 이 구간에서 터졌다. 위험이 3배면 보험료도 그만큼 비싸야 하지만 요율표는 그 차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위험을 헐값에 인수해 주는 보험이 있는 곳에서 위험한 사업이 번창하는 것은 필연이다.

청구서는 예정된 수순으로 도착했다. HUG의 보증사고액은 2021년 5790억 원에서 2023년 4조 3347억 원, 2024년 4조 4896억 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대위변제도 2024년 한 해 4조 원에 육박했다. 갚아 준 돈은 제대로 돌아오지도 않아 회수율은 2023년 14.3%, 2024년 29.7%에 그쳤고, HUG는 13년 만의 적자 뒤 수조 원대 손실을 쌓았다.

이 대차대조표에는 뚜렷한 비대칭이 있다. 세입자는 건설비의 9할을 대고도 등기부에 오르지 못한다. 소유자는 1할을 댄 건축주이고, 세입자 손에 남는 것은 무담보 반환채권뿐이다. 상승기의 이익은 건축주가 가져갔다. 신축 빌라는 비교할 시세가 없어 전세가와 매매가를 부풀리기 쉽고, 건축주는 보증금으로 대출을 털어 개발이익을 실현한 뒤 전세를 낀 집을 갭투자자에게 넘기고 떠날 수 있었다. 하락기의 손실은 HUG가 떠안았다. 오르면 건축주가 벌고 내리면 공사(公社)가 물어 주는 구조, 금융의 언어로는 건축주가 국가로부터 풋옵션을 공짜로 받은 구조다. 이런 시장에서 빌라왕이 나온 것은 사고가 아니라 설계의 귀결이었다.

정부가 2023년 5월 보증에 뒤늦게 가격표를 붙인 것, 곧 담보인정비율을 100%에서 90%(공시가 126% 룰)로 낮춘 것은 불가피한 교정이었다. 다만 가격표가 붙는 순간 전세가율 9할의 경제학은 무너졌다. 보증금이 원가의 6~7할로 내려앉자 건축주는 남는 갭을 자기 돈으로 채우거나 장기대출로 전환해야 하는데, 2%대 임대수익률로는 그 대출을 감당할 수 없다. 테이크아웃이 소멸했고, 착공이 멈췄다. 그것이 준공 4858가구라는 숫자의 정체다.

보증 확대는 답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열린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 뉴스1 허경 기자

공급 절벽이 확인되자 시장 일각에서는 익숙한 요구가 되살아나고 있다. 반환보증 기준을 다시 완화하고 전세대출 보증을 늘려 빌라 전세 수요부터 살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병의 원인을 처방전에 적는 격이다. 보증 확대는 위험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가격표를 다시 떼는 것이고, 공짜 풋옵션을 재발행하는 것이다. 그 결말의 견적서는 이미 받아 봤다. 대위변제 조 단위, 회수율 20~30%. 세입자를 다시 최종 대주의 자리에 앉히는 정책은 다음 빌라왕을 위한 무대를 설치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전세를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가 아니라 "전세가 하던 일을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다. 건설대출을 회수하는 길은 둘이다. 준공 주택을 팔아 갚는 엑시트(매각 청산)와, 건설대출을 장기대출로 갈아타는 테이크아웃(대출 전환)이다.

지금 단계에서 먼저 작동시켜야 할 것은 엑시트다. 준공 시점에 확실한 매수자가 있으면 건설대출 상환이 보장돼 상호금융의 돈이 다시 돌고, 신축 빌라의 고질병인 가격 불투명성이 기관 매수자의 실사와 매입가격을 통해 교정되며, 소유와 운영이 영세 건축주에서 기관으로 넘어가 임대의 질과 장기성도 확보된다. 정부가 확대 중인 신축매입임대는 기능적으로 국가가 이 엑시트를 대신 맡은 것으로 방향은 옳다. 다만 LH와 재정이 무한정 사 줄 수는 없다. 소규모·비표준 자산인 빌라를 묶어 장기 기관자본이 살 수 있는 포트폴리오로 바꾸는 집합화 장치, 곧 지역 단위 임대리츠와 설계·시공·임대관리의 표준 인증이 뒤따라야 공공 매입에서 민간 장기자본으로 바통이 넘어간다.

테이크아웃, 곧 건설대출을 장기대출로 갈아탄 뒤 월세 수입으로 갚아 나가는 방식은 그다음 단계다. 건축주가 집을 팔지 않고 계속 보유하며 세를 놓는 소규모 임대 생태계를 되살리려면 결국 필요한 금융이다. 그러나 지금은 월세 수입이 대출 이자에도 못 미치는 탓에 어느 은행도 이런 대출을 내주려 하지 않는다. 이 길이 열리려면 공적 보증이 다시 등판해야 하되, 서는 자리가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세입자가 진 빚에 보증을 씌워 위험을 키웠다면, 앞으로는 임대사업이 벌어들이는 월세에 보증을 씌워 은행이 안심하고 장기대출을 내주게 하는 것이다. 물론 보증료는 위험만큼 제값을 받아야 한다.

엑시트든 테이크아웃이든 피해 갈 수 없는 관문이 하나 있다. 도심 땅값과 임대수익률 사이의 유격이다. 이 유격을 메우지 않으면 기관은 사지 않고 은행은 빌려주지 않는다. 전세라는 보이지 않는 보조금이 사라진 자리에서 정책이 쥔 카드는 셋뿐이다. 용적률이라는 공간 보조금으로 가구당 토지비를 낮추거나, 토지분 재산세·취득세 감면으로 임대운영의 순수익을 지키거나, 토지임대부로 전환해 토지는 공공이 보유하고 민간은 건물만 지어 운영하게 함으로써 토지비 부담 자체를 들어내는 것이다. 셋 다 공짜가 아니다. 그러나 비용이 드러나 있어 국회와 지방의회가 심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용을 숨겼다가 조 단위 대위변제로 청구받는 보증 확대보다 정직하다.

서울 빌라 준공 4858가구라는 숫자는 청년과 저소득층 주거 사다리의 첫 칸이 부서지고 있다는 경고다. 그러나 급하다고 부서진 사다리를 옛 못으로 다시 박을 수는 없다. 세입자의 돈으로 짓던 빌라를 이제 누구의 돈으로 지을 것인가. 그리고 전세가 몰래 대 주던 보조금을 어떤 이름의 예산으로 대체할 것인가. 이 두 질문에 답하는 것이 비아파트 대책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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