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협상 결렬에 호르무즈 '안갯속'…유가·석화 공급망 비상
이란 "미국 변화 없이 호르무즈 상황 변화 없다"
전쟁 전부터 취약했던 석화 가격 구조…전쟁 변동성 직격탄
- 김승준 기자, 이정현 기자
(세종=뉴스1) 김승준 이정현 기자 =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다시 커지고 있다. 원유 시장 변동성 확대 우려 속에 나프타와 비닐·플라스틱 등 석유화학 공급망 전반으로 파장이 번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 정부는 평시 월평균 수입 물량의 60~70% 수준의 대체 원유를 확보해 단기 수급에는 대응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갈등 장기화 우려로 원유 수급 부담이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중동 리스크가 고착화될 경우 나프타 등 석유화학 원료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비닐·플라스틱 등 중간재 공급망에도 불확실성이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21시간 진행된 미국과 이란의 마라톤협상은 결국 서로의 평행선만을 확인한 채 종료됐다.
협상 결렬 후 이란의 준관영 언론 타스님 통신은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합리적인 합의안에 동의하지 않는 한, 호르무즈 해협의 상황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달 전쟁 발발 후 한때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설 정도로 치솟았다. 이달 10일 전후로 미국·이란이 출구전략을 논의하며 국제유가는 100달러 안팎으로 내려왔다. 최근 전쟁·협상 상황에 요동쳤던 유가는 이번 협상 결렬로 다시 불안정해질 전망이다.
한국 정부는 국내 원유·나프타 수급은 단기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4월에는 5000만 배럴, 5월에는 6000만 배럴 규모의 대체 원유가 확보돼 평시 월평균 수입 물량의 60~70% 수준이 뒷받침되고 있으며, 정유공장 가동률도 평시의 9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나프타 수급도 국내 생산분 수출 금지 조치와 대체 물량 확보 노력에 따라 평시의 80~9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나프타 분해 장치(NCC) 가동률을 크게 낮추거나, 일부 설비의 경우 생산을 중단하는 '셧다운'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나프타 수급 물량 자체는 받쳐주지만, 가격 상승으로 생산할수록 손해가 나는 구간이 길어지면서 가동률 저하와 셧다운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다.
전쟁 이전에도 중국발 공급과잉과 저가 경쟁 속에 국제 원유·나프타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았음에도 한국 석유화학 업계는 이미 수익성 악화와 구조조정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조용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석유 화학 업계의 수익성이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에서 (전쟁 전에) 업계 구조 재편이 이뤄지는 상황이었다"며 "(전쟁 후) 셧다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가동이 기업 활동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 동북아 국제 나프타 가격은 전쟁 전 톤(t)당 600달러대에서 전쟁 후 1000달러 안팎을 오갔다. 위기를 겪던 석화 산업에 직격타로 작용한 것이다. 반대로 기존에 과잉 생산된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 유분 가격은 재고 부담과 수요 부진 탓에 더디게 움직이면서, 나프타 가격만 앞서 급등하는 구간이 길어졌다.
실제 NCC 업계의 핵심 수익 지표인 동북아 에틸렌–나프타 스프레드는 전쟁 직후 톤당 100달러에도 못 미치는 수준까지 떨어져, 통상 손익분기점으로 여겨지는 250달러를 크게 밑돌았다.
중동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나프타 수급 우려가 확산하자, 나프타를 원료로 하는 에틸렌·프로필렌 가격이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일부 업체들이 에틸렌·프로필렌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면서 비닐·플라스틱 원료 가격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에틸렌·프로필렌 가격이 뛰면서 에틸렌–나프타 스프레드가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는 날도 생겼지만, 변동성이 크고 일시적일 수 있는 상황이라 NCC 기업들이 셧다운 설비 재가동이나 가동률 상향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조용원 연구위원은 "경기가 좋지 않아 수요가 상승하기보다는 향후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에 관련 원자재 가격이 올라간 것이 아닌가 싶다"며 "수요가 갑자기 증가하거나 구조적으로 상황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조달 리스크에 따른 일시적 영향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또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영세·소규모 업체가 많은 플라스틱 가공 산업에서는 이윤 폭이 더 줄어들어 생산 차질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공급망 점검 결과, 나프타 유관 주요 품목인 수액제 포장재, 주사기류, 의료용 장갑 등은 현재 평시 수준의 재고와 원료 공급이 유지되고 있다. 다만 포장재 가격 상승 및 원료 공급 감소 우려가 제기된 만큼 정부는 산업부·식약처·중기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민생 밀접 품목에 대한 안정적 공급 방안 마련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seungjun24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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