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물가와의 전쟁 '총력전'…에너지·원자재에 컴퓨터·통신비까지 조준
중동 전쟁에 물가 상승세…최고가격제 없었으면 3월 물가 2.8%↑
공공요금 동결·PC 무상 지원·통신비 경감·학원비 관리 강화 등 추진
- 임용우 기자
(세종=뉴스1) 임용우 기자 =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총력전에 나섰다. 석유 최고가격제 지정 등을 통해 에너지 가격 상승을 억제하면서도 나프타 등에 수입규제 특례를 적용한 데 이어 컴퓨터, 통신비 등 필수재 관리에도 착수했다.
정부는 최근 반도체 호황으로 메모리 가격이 치솟은 만큼 정부·공공기관 등이 사용하던 PC를 취약계층에 무상으로 전달한다. 또 모든 데이터 요금제에 안심 옵션을 의무화하고 2만 원대 5G 요금제 출시를 추진한다. 통신사 요금 개편으로 연간 3700억 원 이상의 절감 효과가 발생할 전망이다.
이번 정부의 대책은 중동 전쟁 여파로 올해 물가 상승률이 3%를 넘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필수재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다.
전문가들은 필수재 가격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동시에 통신비 완화 조치가 소비자물가 상승 폭을 둔화시킬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를 열고 이같은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가 필수재까지 관리 범위를 넓힌 것은 물가 상승 압력이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보다 2.2% 상승하며 중동 사태에도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중동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10달러 안팎까지 치솟고, 국내 휘발유 가격은 7일 기준 리터(L)당 1968원을 기록하면서 물가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달 석유류는 최고가격제 시행에도 전년보다 9.9% 상승하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인 2022년 10월(10.3%)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강기룡 재경부 차관보는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만약 석유류 가격이 지난해와 동일한 수준이었다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대 후반이었을 것"이라며 "최고가격제를 시행하지 않았다면 지난달 물가 상승률은 2.8%를 기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나프타 등 수급 불안이 가중되면서 공업제품 가격도 상승해 물가 부담을 키우고 있다.
지난달 에너지 물가지수는 2015년 1월, 공업물품 물가지수는 1985년 1월 이후 각각 최고치를 기록했다.
공산품 분야에서는 폴리에틸렌(PE) 등 나프타 파생 원료 가격이 20~50%, 페인트 용제는 55% 각각 상승했다.
이 같은 추세에 최근 해외 투자은행(IB)과 국내외 기관들은 물가 전망을 잇달아 상향 조정하고 있다.
주요 IB 8곳이 제시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지난 2월 말 평균 2.0%에서 3월 말 2.4%로 0.4%p 상승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7%, 아세안+3 거시경제조사기구(AMRO)는 2.3%로 각각 직전 전망보다 0.9%p, 0.4%p 상향 조정했다.
이에 정부는 물가 집중관리품목 43개를 선정하고 매일 가격 동향을 점검하고 있다. 먹거리, 휘발유 등 필수재부터 오피스텔 관리비, 통신비 등 체감되는 품목에 대한 물가 안정 대책도 잇따라 발표했다.
정부는 이미 매점매석 금지고시가 시행되고 있는 요소·요소수 외에도 의료용 주사기, 레미콘 혼화제 등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될 경우 즉시 금지고시를 시행할 방침이다.
한때 사재기 열풍이 불었던 종량제봉투는 일부 지역에서 물량 부족이 확인됐다. 이에 정부는 지자체 간 여유 물량을 조정하고 납품 소요 기일을 기존 10일에서 1일 이내로 단축하기로 했다.
명태 정부 비축 물량을 오는 13일부터 6월 30일까지 방출하고 고등어 수입선을 다변화한다.
계란은 신선란 2차 수입 359만 개를 추진하는 한편, 가칭 '가격검증위원회'를 4월 중 신설해 산지 가격 적정성을 검증할 계획이다. 닭은 최대 40% 할인 지원, 마늘은 정부 비축 물량 1800톤을 추가 공급한다.
공공요금은 전기 등 중앙공공요금과 택시·시내버스·지하철 등 지방공공요금 모두 상반기 동결 원칙 아래 관리된다. 지난 2일 행정안전부 차관 주재 지방정부 회의를 통해 협조를 요청했으며, 물가 안정에 기여한 지방정부에는 재정 인센티브를 강화할 방침이다.
정부는 내용연수가 경과한 불용 PC의 재활용 비율을 높여 취약계층 지원 사업에 활용한다.
조달청 물품관리시스템을 통해 각 부처의 내용연수 경과 PC 현황을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지원 가능한 PC를 선별한다.
정부가 '사랑의 그린 PC' 및 'AI 디지털 배움터' 사업을 수행하는 지방정부에 PC를 무상 양여하면, 각 지방정부가 기기를 정비해 취약계층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연간 8만여 대의 불용 PC가 발생하는데, 이 중 2만 2000여 대가 폐기된다. 남은 5만 8000여 대 중 무상 양여 비율은 약 25% 수준으로, 이를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이번 대책은 반도체 호황에 따른 D램 가격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해 1분기 3.9달러였던 DDR5 16GB 메모리는 올해 29.5달러까지 상승했다.
이에 따라 주요 제조사의 PC·노트북 판매가격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지난달 컴퓨터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보다 12.4% 상승하며 지난 2월(10.8%)에 이어 2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세를 이어갔다.
강 차관보는 "젊은 계층은 노트북이나 PC 없이 학업 활동을 하기 어렵다"며 "여력이 된다면 구매하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저소득층 학생 대상 PC·노트북 구매 지원 단가를 상향하고 지원 규모도 확대한다.
저소득층 가구 학생들이 충분히 지원받을 수 있도록 추가경정예산에 포함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4조 8000억 원을 활용해 각 시도교육청의 지원 확대를 유도한다.
최근 가격 상승세를 반영해 1인당 지원 기준 단가(104만 2000원) 상향도 추진한다.
민생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는 가계 통신비 경감에도 나선다.
저가 요금제에서도 데이터를 끊김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 안심 옵션(QoS)을 의무화하고, 저가 5G 요금제 출시를 추진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통신 3사의 모든 LTE·5G 요금제에 요금 인상 없이 약 400Kbps 속도로 데이터를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약 717만명이 혜택을 받아 연간 약 3221억 원의 통신비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만 65세 이상 어르신에게는 음성·문자를 무제한 제공하도록 요금제를 개편한다. 약 140만명이 혜택을 받아 연간 약 590억 원 절감 효과가 예상된다.
특히 2만 원대 5G 요금제가 출시된다. 약 2만 7000원대 요금으로 250MB 기본 제공 후 QoS 방식으로 데이터 이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된다.
연령별 혜택은 별도 요금제 가입 없이 일반 요금제 가입 시 자동 적용된다.
정부와 통신 3사는 요금제 개편을 상반기 중 마무리할 계획이며, 향후 알뜰폰(MVNO)에도 적용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학원비 관리도 강화된다. 정부는 학원 교습비를 초과 징수할 경우 최대 연 매출의 절반 수준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교습비를 거짓 표시할 경우 과태료 상한도 3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상향한다. 또 신고 포상금을 최대 10배 인상해 민간 감시 기능을 강화한다.
교육당국은 올해 1월부터 점검을 실시한 결과 1만 5295개소를 점검해 2394건을 적발했으며, 이 중 교습비 관련 위반은 596건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과징금 신설과 학원법 개정을 상반기 내 추진하고, 현장 점검과 온라인 모니터링을 지속 강화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 대책이 서민, 취약계층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도 통신비 경감 대책은 물가 하락에 일조할 것으로 분석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대책은 서민과 취약계층 맞춤 정책으로 보인다"며 "지금은 취약계층이 소비를 많이 해서 물가가 오르는 상황이 아닌 만큼 최근 가격이 크게 오른 PC 등을 지원하는 것은 맞는 방향이다. 통신비를 낮추면 물가 안정에도 일정 부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통신비는 주요 지출 항목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를 낮출 수 있다면 물가 안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phlox@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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