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프타 수출 막았지만 '산 넘어 산'…대체물량 확보 여부는 안갯속

구윤철 "비축유 활용·대체국 확보 총력…러시아산 수입 협의 중"
제재 완화에도 신뢰성·운송기간 난제…석화업계 재고 2주에 가동률 뚝

플라스틱과 고무 비닐 등의 원료인 에틸렌·프로필렌을 만드는 데 쓰이는 나프타(납사) 수출이 오늘(27일)부터 전면 금지된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종량제 봉투가 놓여져 있다. 2026.3.27 ⓒ 뉴스1 김성진 기자

(서울·세종=뉴스1) 전민 한재준 김승준 기자 = 정부가 나프타(납사) 수출 통제에 나서며 수급 안정에 나섰지만, 이와 별개로 실질적인 대체 물량 확보 여부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중동산 공급 차질이 장기화하면서, 당장 다음달은 버틸 수 있더라도 근본적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수급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나프타는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화학물질의 원료로, 플라스틱·비닐·합성고무 등 전방 산업 전반에 쓰이는 '산업의 쌀'이다. 전쟁 전까지 국내 수입 나프타의 54%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들어왔으나,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해협이 사실상 막히면서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중동에서 나프타를 적재한 선박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 국내에 당도하기까지 약 23일이 소요되는 만큼, 해협이 당장 뚫린다 해도 수급 정상화는 4월 말 이전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보유한 나프타 재고는 2~3주 분량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수출 틀어막기는 시작…공급 확보는 '첩첩산중'

2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3일 나프타를 경제안보 품목으로 지정하고 27일부터 '나프타 수출제한 및 수급 안정을 위한 규정'(고시)을 시행했다.

고시에 따라 원칙적으로 국내 생산·보유 나프타 수출은 금지되고, 산업통상부가 생산·배분 등 시장에 개입할 수 있게 됐다. 수급 불안이 지속될 경우 단순 플라스틱·비닐 품귀를 넘어 전자·자동차 등 전방 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다만 수출 통제만으로는 수급난 완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유사가 생산한 나프타 중 수출 비중은 약 11% 수준이다. 이달 1~25일 수출된 나프타는 약 19만 9636톤으로, 전쟁 이전 월평균 국내 소비량(약 400만 톤)과 비교하면 수출 금지로 확보할 수 있는 물량은 많지 않다. 나프타는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해 만들어지는 만큼, 원유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 생산량 자체가 줄어 수출 제한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도 가동률을 낮추며 버티기에 들어간 상태다. LG화학은 23일부터 연산 80만 톤 규모의 여수 2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1공장에 재고 물량을 집중하고 있다. 롯데케미칼 여수공장은 정기 보수 작업을 3주 앞당겨 27일부터 실시했다. 여천NCC는 프로필렌 전용 공장 가동을 멈추고 NCC 가동률을 60%까지 낮췄다.

LG화학·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 등 주요 기업들은 고객사에 불가항력 선언 가능성을 이미 통보한 상태로, 업계에서는 4월 중순을 지나면 NCC 가동률이 30~40%대까지 낮아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3월 초보다 물량이 확보되면서 가동 기간이 늘어나고 있다"면서도 "5월 수급은 지금부터 확보되는 물량을 봐야 한다"고 밝혔다. 상황이 더 악화할 경우 수급 조정 명령에 나설 수 있다고도 했다.

25일 여수산단내 NCC 2공장 모습. 2026.3.25 ⓒ 뉴스1 김성준 기자
러시아산 도입·비축유 방출 추진…실현까지는 '아직'

수출 통제가 임시방편에 그치는 만큼 핵심은 대체 물량 확보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대안은 러시아산 나프타 도입이다. 미국이 러시아산 석유류 제품에 대한 제재를 한 달간 한시적으로 완화한 데 따른 것으로, 정부는 미국 재무부와 협의해 러시아산 나프타 수입 시 2차 제재가 없고 위안화·루블화·디르함화 등 달러 외 통화로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이날 "러시아든 다른 나라든 정부가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 나프타 물량을 확보하겠다"며 "지금 검토 중이고 일부 협의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프타 가격 상승에 따른 생활물가 우려에 대해서는 "쓰레기봉투는 정부가 판매 가격을 정해놔 국민 부담이 적겠지만, 비축유 활용과 사용 분야 우선순위 조정 등을 통해 최대한 가격이 오르지 않도록 촘촘하게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실제 도입까지는 여러 걸림돌이 남았다. 해상에 떠 있는 공해상 물량이 많아 거래업자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한 달이라는 제재 완화 기한 내에 대금 지급과 입고까지 마무리하기 빠듯하다는 점이 걸림돌로 꼽힌다.

EU의 2차 제재 불확실성도 아직 남아 있어 정유사들은 수입을 섣불리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KB증권은 수입 가능한 러시아산 나프타 총량을 22만~25만 톤으로 분석했는데, 이는 한국의 2~3일 치 수요에 불과해 도입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존에 정부가 확보했다고 밝힌 UAE발 나프타 선박의 국내 도착·공급 일정도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기업이 계약해서 들어오는 것으로 영업상 비밀"이라며 구체적인 입항 시점을 밝히지 않았다.

정부는 4월 중순 비축유 방출도 계획하고 있다. 비축유를 정유사가 정제하면 나프타 생산이 가능하며, 정부 비축유는 중질유 비중이 높아 나프타 생산 측면에서 비교적 유리한 성상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공정에서도 원유 배합과 증류·후처리 공정 가동 조건을 조정하면 휘발유·경유 수율을 다소 줄이는 대신 나프타 생산량을 늘리는 '스윙 운전'도 가능하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정부는 수출 금지 조치에 이어 대체 수입선 확보에 필요한 운임·조달비 지원, 금융 지원 등을 통해 석유화학 업계를 지원할 방침이다.

이번 중동 사태를 계기로 청와대와 정부는 나프타 비축 체계 구축 검토에도 나섰다. 나프타는 비축 체계 밖에 있어 이번과 같은 외부 충격 발생 시 수급 차질로 곧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현행 제도상 비축 품목은 원유·휘발유·등유·경유·중유·항공유·프로판·부탄으로 한정돼 있다.

청와대와 정부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유사업법)과 관련 시행령·고시를 개정해 나프타를 비축 품목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나프타는 경제안보 품목이 아니어서 비축 필요성까지 고려하지 않았지만 이번 중동 상황이 정리되면 법 개정 검토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에도 비축 체계 구축을 위한 제도 개선이 추진된 바 있으나 석유화학 업계의 부담을 이유로 무산됐다. 다만 이번에는 업계에서도 비축 체계 구축을 먼저 요청하고 있어 추진 동력이 이전보다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6일 한국석유공사 서산 비축기지 간담회에 참석했을 때도 석유화학 업계에서 국가 차원의 나프타 비축 체계 구축을 제안한 바 있다.

빗장을 걸어 잠근 수출 제한은 단기 처방일 뿐, 추가 원유 물량 확보와 대체 수입선 안착을 거쳐 산업계가 온전히 정상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다.

산업부 관계자는 "기업들로부터 보고를 받아 위험한 상황이 감지되면 수급 조정 명령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min7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