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쇼크·채권 발작…물가 비상에 한은 '금리 인상론' 고개
기준금리 2.5%인데 3년물 3.2% 훌쩍…시장은 이미 '2회 인상' 선반영
"수요 문제 아닌 공급 충격…인상 땐 내수 꺾인다" 신중론도 팽팽
- 전민 기자
(세종=뉴스1) 전민 기자 = 중동 사태 장기화 우려로 국제유가가 한때 배럴당 120달러 근처까지 치솟는 등 요동치면서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최근 유가가 다시 80달러 선으로 내려오며 숨을 고르고 있지만, 채권시장 등에서는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입 물가 폭등에 따른 2차 인플레이션 충격을 막기 위해 한은이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관측과, 전형적인 공급 측면의 충격인 만큼 경기 침체를 우려해 실제 인상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반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한은이 당초 제시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 2.2%는 브렌트유 연평균 가격이 배럴당 64달러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산출된 수치다.
하지만 이란과 미국의 충돌 이후 브렌트유는 80달러를 웃돌고 있으며, 한때 120달러선을 위협할 정도로 한은의 기존 전제치를 크게 웃돌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두바이유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최지욱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갈등이 3개월 이상 심화해 유가가 120달러 이상으로 치솟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올해 4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 중후반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최 연구원은 이 경우 한은이 연내 기준금리를 1~2회 인상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현 수준의 유가 상승이 한 달간 지속되면 향후 12개월간 전체 물가에 0.22~0.36%포인트(p)의 추가 상승 압력을 줄 것으로 진단했다.
물가 상승에 따른 거시경제 충격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WTI가 100달러를 지속할 경우 휘발유와 경유 가격 상승으로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평균 1.33%p에 달하며, 120달러까지 오를 경우 물가 상승 압력이 2.02%p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한국은 수입 원유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어 실제 수급 차질이 발생할 경우 충격이 더 클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석유류 가격 폭등으로 연간 물가 상승률이 5.1%에 달했던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의 물가 대란이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물가 불안 심리는 채권시장을 강타하며 국고채 금리 급등으로 이어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420%까지 치솟았다. 이후 한은의 국고채 단순매입이 발표되면서 10일에는 3.283%으로 내려왔다.
다만 현재 한은의 기준금리가 연 2.5%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레벨은 시장이 이미 최소 2회(50bp) 이상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가격에 선반영한 수준으로 볼 수 있다.
향후 중동 사태 추이에 따라 언제든지 금리가 다시 튈 수 있다는 우려도 남아있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한은의 단순매입은 금리 상단을 제약하겠지만, 하락 전환 계기가 되기는 어렵다"며 "향후 흐름은 여전히 국제유가 방향성에 크게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다만 한은이 실제 금리 인상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이번 유가 급등이 경제 펀더멘털이나 수요 견인에 따른 것이 아닌, 전형적인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공급 충격'이기 때문이다.
박준우 하나증권 연구원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 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지만, 공급 충격에 대해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이 물가 안정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나, 무리한 금리 인상이 자칫 회복세를 보이는 경제 성장의 싹을 꺾어 스태그플레이션을 고착화할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
특히 최근의 경기 지표 반등이 반도체 등 일부 수출 호황에 기댄 'K자형 회복'으로, 자칫 취약한 내수 부문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 있다.
국제유가가 장중 120달러 근처까지 치솟은 후 다시 80달러 선으로 내려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도 금리 인상 신중론을 뒷받침한다.
민지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4~5주 내에 이란 사태가 일정 부분 진정될 것으로 가정할 때, 단기간 내 공급 측 물가 충격으로 인플레이션이 3%에 근접하더라도 하반기에는 다시 2%대로 둔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의 적극적인 미시적 물가 안정 대책도 한은의 통화정책 부담을 덜어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정부는 유가 급등에 대응해 유류세 인하 폭을 현행 휘발유 7%, 경유 10%에서 법적 최대치인 37%까지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한은이 선제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서기보다는 당분간 중동 사태 상황과 유류세 인하 등 미시적 정책 효과를 지켜볼 것이라는 의견이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유류세 인하 폭이 37%까지 확대될 경우 유가가 120달러까지 치솟더라도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상방 압력이 2.02%p에서 1.62%p로 감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min78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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