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값 잡는 '최고가격제'…과거 연탄·코로나 키트에도 적용

석유사업법 23조 근거 '부당이득 전액 환수'…위반 시 형사처벌
'지역·유종별 핀셋' 지정 가닥…李 대통령 "위기 악용 폭리 엄단"

미국과 이란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상승하고 있는 4일 서울 서초구 경부고속도록 만남의광장 주유소에서 시민들이 주유를 하고 있다. 2026.3.4 ⓒ 뉴스1 김도우 기자

(세종=뉴스1) 전민 기자 = 중동 사태로 인한 불안 심리가 커진 가운데 유류 가격을 기습적으로 올린 주유소들에 대해 정부가 '최고가격제'(정부가 판매 가격 상한을 정하는 제도)라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5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는 중동 불안 고조 이후 휘발유·경유 급등세에 대한 최고가격제 도입이 논의됐다.

이 대통령은 하루 만에 주유소 석유류 가격이 리터(L)당 200원 넘게 오르기도 한다는 보고를 받고 "국민들이 겪는 국가적인 어려움을 이용해 자기 이익만 보겠다는 태도는 공동체의 일반 원리에 어긋난다"며 강력한 제재 방안을 주문했다.

이에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석유사업법 제23조에 따라 가격이 급등하는 경우 최고가격을 지정하도록 돼 있다"며 "가격을 점검해 지나치게 높은 곳은 고시를 통해 최고가격을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위기 악용한 부당 이득 챙기기 용납 못 해"

이날 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위기 상황을 틈탄 가격 인상 행태를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돈을 벌겠다고 혼란을 주는 것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격 담합이 아니더라도 위기 상황을 악용해 독자적으로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행위를 제재할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관련 제도를 신속하게 점검하고 필요하다면 새로 만들 것을 지시했다.

정부는 가격 통제와 함께 담합 등 불공정 행위 단속도 병행한다. 구 부총리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담합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며 "가격이 높은 주유소가 담합으로 인정되면 가격 재조정 조치도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역시 전국 지역 사무소를 가동해 신속한 조사와 제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중동상황 관련 경제분야 합동 비상대응을 보고하고 있다. 2026.3.5 ⓒ 뉴스1 이재명 기자
과거 연탄 등 예외적 운영…코로나19 키트 부족 때도 적용

최고가격제는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물가안정법)과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유사업법)에 근거를 둔 강력한 시장 개입 수단이다. 물가안정법 2조는 정부가 국민 생활 안정을 위해 특정 물품의 최고가격을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해 얻은 부당이득은 전액 환수할 수 있다.

물가안정법 시행령 등에 따르면 구체적인 최고가격 지정 권한은 주무부처인 산업통상부 장관에게 있다. 시장 상황을 반영해 구체적인 가격 상한액을 결정하고 이를 고시하면, 그 시점부터 지정된 상한액을 초과해 판매하는 행위가 전면 금지된다.

다만 최고가격제는 역으로 공급 부족이나 품귀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부가 가격 상한선을 강제할 경우 수익성이 악화한 주유소들이 판매 물량을 줄이거나 영업을 축소해, 오히려 유류 공급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 경제 원리에 배치되고 부작용 우려가 큰 만큼 실제 발동 사례는 드물다. 구 부총리는 "과거 석탄이나 연탄 등에 대해 아주 예외적으로 운영한 사례가 있다"고 언급했다.

과거 정부는 서민 연료인 연탄 가격을 통제하기 위해 최고가격제를 도입한 바 있다. 특히 1988년부터 2003년까지 15년간 단 1원도 올리지 않고 최고가격을 동결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2022년 초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 당시 자가검사키트에 대한 최고가격제가 전격 도입된 바 있다. 당시 키트 수요가 폭증하며 품귀 현상과 가격 폭등이 일자, 정부는 공중보건 위기대응 관련 법을 발동해 약국과 편의점 등의 키트 판매 가격을 개당 6000원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한시적으로 시행했다.

전국 일률 통제 아닌 '지역·유종별 핀셋' 지정 가닥…"신속 검토"

다만 전국 주유소에 일률적으로 최고가격을 강제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고려해 핀셋 형식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이 대통령은 "최고가격 지정을 일률적으로 전국적으로 하면 문제가 될 테니 지역별, 유종별로 현실적인 최고가격을 신속하게 지정하라"고 했다.

정부는 긴급 물가 점검을 거쳐 구체적인 제재 기준을 마련할 방침이다. 구 부총리는 국무회의 이후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 회의'를 주재하고 최고가격 지정에 대한 속도전을 예고했다.

구 부총리는 "석유류 등 일부 업종에서 국가적 위기 상황을 틈타 과도하게 가격을 인상해 폭리를 취하는 것은 민생을 좀먹는 몰염치한 행위"라며 "산업통상부 등 관계 부처는 석유사업법상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액 지정을 신속히 검토해 달라"고 촉구했다.

min7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