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혜택 약발 끝났나…환율 1470원 뚫리자, 또 기업 탓한 정부

트럼프·엔저·서학개미 '3중 파고'에 속수무책…보름 만에 제자리
관세청 "수출대금 미회수 전수조사"…시장선 컨트롤타워 부재 지적도

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2026.1.6/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세종=뉴스1) 전민 기자 = 정부가 달러·원 환율 안정을 위해 '서학개미 세제 혜택' 등 고강도 대책을 쏟아냈지만, 환율은 불과 보름 만에 다시 1470원 선을 돌파했다. 사실상 정책이 통하지 않는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다.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약화된 가운데, 트럼프발(發) 지정학적 리스크와 일본의 '엔저' 공포, 여기에 식지 않는 서학개미의 매수세까지 겹치면서 3중 악재가 환율을 밀어올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당근'인 세제 혜택이 효과를 내지 못하자, 다시 고환율 책임을 기업으로 돌리며 무역기업 외환거래 전수조사에 나서는 등 '채찍'을 꺼내들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외환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정학 리스크에 '킹달러' 귀환…엔저 동조·서학개미 가세

13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달러·원 환율은 전일 대비 5.3원 오른 1473.7원에 마감하며 1470원 선을 돌파했다. 정부의 고강도 수급 대책으로 한때 1430원대까지 밀렸던 환율이 보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환율을 다시 밀어 올린 건 대외 악재다. 미 노동부가 발표한 12월 실업률이 4.4%로 전월(4.5%)보다 개선되는 등 미 경제지표가 호조를 보이자, 연준(Fed)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약화됐다.

여기에 '트럼프 리스크'가 기름을 부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체포와 그린란드 매입 야욕을 드러내고, 반정부 시위가 격화된 이란에 대한 군사 개입 가능성까지 시사하면서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폭발했다. 이에 달러 인덱스는 연초 98선에서 99선 초반까지 치솟았다.

이웃 나라 일본발 악재도 원화 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조기 총선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확장 재정'을 예고하자, 엔화 가치가 급락하며 원화까지 끌어내리고 있다.

전날 달러·엔 환율은 장중 158.199엔까지 치솟으며 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엔화가 약세면 원화도 약세"라는 프록시(대리) 베팅 심리가 작동하며 원화 매도세가 거세지는 양상이다.

내부 수급도 꼬일 대로 꼬였다. 정부는 서학개미의 국내 복귀를 위해 '양도세 면제' 카드까지 꺼냈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연초부터 지난 9일까지 국내 개인 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은 19억4200만 달러로, 2011년 통계 집계 이후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전년 동기 대비 43%나 급증한 수치다. 정부의 유인책보다 미국 증시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크게 작용한 결과다.

당근 안 통하니 채찍…전문가 없는 컨트롤타워 지적도

환율 방어선이 속절없이 무너지자 당국은 '당근'에 이어 '채찍'까지 꺼내 들며 총력전에 나섰다. 관세청은 이날 고환율 대응 전국 세관 외환 조사 관계관 회의를 열고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등 총 1138개 사를 대상으로 불법 외환 거래를 집중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수출 신고액과 은행 수령액 간 격차는 1685억 달러(약 247조 원)에 달한다. 환율 상승을 기대하며 수출 대금을 해외에 쌓아두는 이른바 래깅(Lagging) 물량을 국내로 환류시키기 위해 기업들의 거래 내역을 꼼꼼히 살피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앞서 정부가 발표한 '법인세법상 해외 자회사 배당금 익금불산입률 100% 상향' 조치가 기업의 자발적인 자금 반입을 유도하기 위한 당근이었다면, 이번 관세청의 전수 조사는 채찍인 셈이다. 정부는 최근 고환율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반복적으로 기업에 책임을 돌린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시장에서는 정부 경제팀 내에 외환 전문가가 없다보니 컨트롤타워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외환 관리 책임자인 구윤철 부총리는 예산과 정책 조정을 중심으로 경력을 쌓아 실무에서 외환시장을 다룬 경험이 거의 없다. 이억원 금융위원장,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 등 주요 인사들도 금융·성장 정책이 주전공이다.

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에서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안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2026.1.11 ⓒ 로이터=뉴스1 ⓒ News1 김경민 기자
고강도 대책에도 수급이 개입 압도…당국 부담 가중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환 당국의 정책 수단은 사실상 '진공 상태'에 빠졌다. 쓸 수 있는 카드는 다 썼고, 남은 건 구두 개입과 미세 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 정도뿐이기 때문이다.

외환당국은 4월부터 시작되는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 따른 자금 유입에 기대를 걸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여전히 원화 가치가 펀더멘탈 대비 과도하게 절하된 상황이라며 "단호하고 일관된 정책적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지만, 뾰족한 수가 안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당국의 개입 부담만 커지고 있다. 실제 지난달 당국은 미세 조정과 국민연금과의 통화 스와프 등 대규모 시장 안정화 조치를 단행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280억 5000만 달러로, 전월 말(4306억 6000만 달러) 대비 26억 1000만 달러 감소했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달러화 외 주요 6개 통화 중 엔화를 제외한 모든 통화가 12월에 절상됐던 만큼, 환율 효과분을 제거한 실질 감소분(개입 추정액)은 39~4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 같은 대규모 시장 개입이 지속된다면 외환보유액 관리에도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환율 상승이 정부의 통제 범위를 넘어선 구조적 수급 쏠림 탓이 크다고 진단한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달러 수급 불안과 원화 약세 기대 심리를 당국의 시장 개입이 이기지 못하고 있다"며 "올해 들어 국내 코스피 지수는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원화 가치는 가장 큰 폭의 약세를 보이는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달러·원 환율이 전고점을 또다시 뚫고 올라가기보다는 완만하게 하락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결정적인 변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정책 개입 강화에 따른 연준의 움직임이다.

박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개입 강화로 달러화는 상반기 중 완만한 약세 흐름을 보일 것"이라며 "정부의 외환 수급 개선 대책이 시차를 두고 효과를 내고, WGBI 가입에 따른 국채 매입 확대 등으로 수급이 개선되면 흔들리는 환율도 점차 하향 안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min7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