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1400원대 환율, 펀더멘털 괴리…연금·개미 해외투자 재검토 필요"

"수출·내수 양극화 심화…'K자형 회복' 지속가능하지도, 완전하지도 않아"
"올해 성장 상·하방 불확실성 커…다양한 지표 보며 통화정책 정교 운용"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2025 한국은행총재 외부포상 시상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News1 김명섭 기자

(세종=뉴스1) 전민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026년 병오년(丙午年) 신년사를 통해 고환율과 'K자형 회복' 등 한국 경제의 불안 요인을 짚으며 정교한 정책 대응을 예고했다. 특히 1400원대 후반의 환율에 대해 "경제 기초여건(펀더멘털)과 괴리가 크다"고 진단하며 국민연금과 '서학개미'의 해외투자 재검토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총재는 2일 배포한 신년사에서 "지난해 우리 경제는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내수 회복이 더뎠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재는 최근 1400원대 후반까지 오른 환율 수준에 대해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과 비교해 과도하게 높은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환율 상승의 배경으로는 △한미 간 견조한 성장세 차이 및 금리 격차 지속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국내 증시의 만성적 저평가 현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등을 구조적 요인으로 꼽았다.

다만 "달러화 대비 원화의 약세 폭이 상대적으로 커진 것은 지속적으로 늘어난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가 외환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초래하여 단기적으로 환율 상승에 큰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 총재는 또한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규모와 시기, 그리고 환헤지 운용전략 등이 국내외 시장에 지나치게 투명하게 드러나면서, 환율 절하 기대가 한 방향으로 쏠려 국내외 다른 경제주체들의 투자 향방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커졌다"며 국민연금 해외투자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도 언급했다.

아울러 "거주자의 지속적인 해외투자 확대가 거시적으로 우리 경제 성장과 국내 자본시장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검토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고환율에 따른 물가 자극 가능성도 경계했다. 이 총재는 "높은 환율 수준이 지속될 경우 물가 상승압력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팬데믹 이후 높아진 생활물가 수준이 서민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며 "통화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유통구조 개선 등 구조개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물 경제와 관련해서는 'K자형 회복'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K자형 회복이란 경기 침체 후 회복 과정에서 수출 등 특정 부문은 성장하고 내수 등 다른 부문은 부진해져 양극화되는 현상을 뜻한다.

이 총재는 "글로벌 반도체 경기에 힘입어 올해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보이는 IT 부문을 제외할 경우, 성장률은 1.4%에 그치고 부문 간 회복 격차가 커 체감 경기와는 괴리가 클 것"이라며 "이러한 'K자형 회복'은 결코 지속 가능하고 완전한 회복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이 1.8%로 잠재성장률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면서 "신산업 육성을 통해 성장 기반을 다변화하는 등 구조전환 노력을 지속함으로써, 특정 부문에 편중된 성장·회복 패턴이 반복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경제 전망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주요국 경기 흐름과 글로벌 교역 여건 변화에 따라 성장률이 상방과 하방으로 크게 열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통화정책 운용에 있어서도 신중한 접근을 시사했다. 이 총재는 "성장의 상하방 리스크와 물가, 수도권 부동산 가격 등 금융 안정 리스크가 혼재된 상황"이라며 물가, 내수 회복 속도, 부채 증가 추이 등 다양한 경제지표를 종합적으로 점검하며 통화정책을 정교하게 운용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규모 대미(對美) 투자와 관련한 리스크 관리도 언급했다. 이 총재는 "연간 2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자금이 원화 약세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며 "매년 기계적으로 200억 달러가 대미 투자 자금으로 유출되는 것이 아니며, 한국은행은 정부와 함께 외환시장 안정을 훼손하는 어떠한 결정에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 원칙은 분명히 지켜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min785@news1.kr